저주를 불러오는 사람들
반공자유-교양영어(5): Building 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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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자인 神의 자리를 찬탈하고 스스로 절대자로 군림하게 되면 대재앙이 반드시 따른다. 도덕적 절대자라는 착각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선악 기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실현 불가능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면서 사람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악마가 되는 것이다. 절대 정의를 약속하면서 가장 불의한 악마가 되는 것이다.
Building Utopia (The Economist Mar 5th 2020)

 
*해설:
천지를 창조하신 神(신)은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에덴에 살게 하였다. 에덴은 지상낙원이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먹고살기 위해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복락을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평생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저주를 받으며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영원히 추방되었다. 인간은 이렇게 불완전하다. 지상낙원에 살게 하여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상실할 만큼 인간은 결함이 많은 존재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키고 관리를 하여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모자라는 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유토피아의 건설과 향유는 도달 불가능의 꿈일 뿐이다.

古代(고대)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은 神에 근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을 파멸로 전락시키는 비극적 결함(hamartia: tragic flaw)을 가지고 있다. 테베의 왕 Oedipus의 부친살해처럼 숙명적인 것, 트로이 전쟁의 영웅 Achilles의 발꿈치처럼 육체적인 것 등이 있으나 고대의 영웅들을 전락시키는 가장 치명적인 결함 중의 하나는 오만(hubris)이었다.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과신하여 영웅들이 오만하게 되어 인간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神의 영역을 넘볼 때 비극이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자인 神의 자리를 찬탈하고 스스로 절대자로 군림하게 되면 대재앙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만이 지나쳐서 神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하게 되면 자제력을 잃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도덕적 절대자라는 착각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선악 기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러면 인간은 사람을 죽이고도 “하늘을 보고 땅을 봐도 한 점 부끄러운 것 없다”라고 확신한다. 악마가 되는 것이다. 남미의 해방신학 추종자들처럼 정의의 이름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살상한다. 神父(신부)나 수녀도 叛軍(반군)이 되어 사람을 향해 총질한다. 실현 불가능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면서 사람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악마가 되는 것이다. 절대 정의를 약속하면서 가장 불의한 악마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죄를 짓는 죄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절대자인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신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악마의 덫에 걸리지 않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스토옙스키의 “그리스도가 진리를 벗어난 것으로 증명되더라도, 그래서 진리가 진실로 그리스도 밖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래도 그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겠다”는 진리라고 하겠다. 유토피아에의 유혹을 뿌리치는 진리의 방패가 될 것이다.


5-1-26
IN MARCH 1983 Ernesto Cardenal, then Nicaragua’s minister of culture, found himself on the broiling tarmac at Managua airport, waiting for the pope. John Paul II had no love for the left-wing Sandinista regime, but the minister—a priest as well as a revolutionary, for all his collarless shirt and black beret—was eager to see him. As the pope approached, he knelt and pulled off his beret for a blessing. What he got was a finger-wagging lecture. “You must sort out your affairs with the church,” the pope told him. Twice.

The photograph of the incident showed him smiling, as if he agreed. But he did not. He felt the pope did not know what true Marxism was. In his experience, Christ had led him to Marx, and the Gospels, with their message of social justice, had led him to communism. The link was obvious, direct. As the crowd that day was yelling out regularly, in case the pope should miss it, “Entre crístianismo y revolución, no hay contradicción.”

1983년 3월, 그때 Nicaragua의 문화부장관인 Ernesto 大主敎(대주교)는 교황을 기다리면서 Managua 공항의 타는 듯이 뜨거운 활주로에 있었다. 교황 John Paul II는 좌익 Sandinista정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애정도 없었지만 장관은―칼라(collar) 없는 셔츠와 검은 베레모에도 불구하고 혁명가이면서 성직자인―교황을 만나기를 갈망하였다. 교황이 가까이 왔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축복을 받기 위해 베레모를 벗었다. 그가 받은 것은 叱責(질책)하는(finger-wagging) 훈계였다. “당신은 교회와 관련된 일을 잘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교황은 그에게 말하였다. 두 번이나 말하였다.

그 사건 사진은 그가 마치 동의하는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었다. 그는 교황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느꼈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그를 Marx에게로 인도하였고 사회정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福音書(복음서: the Gospels)는 그를 공산주의로 이끌었었다. 그 연결 관계(link)는 명백하고 직접적이었다. 그날 군중들은 교황이 그것(the link)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교와 혁명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라고 규칙적으로 함성을 지르고 있었던 것처럼.
 

5-2-27
Many years before in Solentiname, in a remote southern corner of Lake Nicaragua, he had worked to prove that slogan true. He arrived there in 1967, after Trappist training under Thomas Merton at Gethsemani, to start a contemplative community. Almost at once it became something else. He had grown up as a rich boy, in a mansion at the other end of the vast lake. Here, though, he was among poor fishermen and farmers who had never before been sent a priest. His union with God in meditation would mean nothing unless he involved them as equals. He therefore set about it.

Gradually, a Christian-Marxist Utopia grew up by the edge of the lake. The campesinos were taught to share and live communally. He then encouraged them to paint and they produced, untaught, bright, primitive pictures of the lake, its birds and flowers, that looked like paradise. This, he would tell them, was the perfect world they were aiming for. Creation was evolution; the universe was incomplete, but they would assist its progress. At Solentiname he set up workshops for all to be creators: painters, sculptors, dancers, poets. A library was built, full of Marxist books. Visitors from abroad came to buy pictures and to see his principles in action.

여러 해 전에 Nicaragua湖(호) 먼 남쪽 끝에 있는 Solentiname에서 그는 그 함성(slogan)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Gethsemani에서 Thomas Merton 밑에서 수도사(Trappist) 수련을 한 후인 1967년에 그는 그곳에 도착하여 黙想(묵상)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거의 동시에 그 공동체는 다른 것이 되었다. 그는 그 광대한 호수의 다른 쪽 끝에 있는 莊園(장원, mansion)에서 부잣집 아들로서 성장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한 번도 神父(신부)를 파송 받은 적이 없는 가난한 어부와 농부들 가운데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명상 속에서 神(신)과 결합(union)하는 것도 그들을 그와 동등한 사람으로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시작하였다.

점차적으로, 그 호수의 가장자리에서는 기독교 마르크스주의 유토피아가 자라나게 되었다. 그 농민들(campesinos)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그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권장하였고 그들은 배우지도 않은 채 천국처럼 보이는 호수에 대한 밝고 원시적인 그림과 호수의 새들과 꽃들을 그렸다(produced). 이것이 그들이 목표하고 있는 완벽한 세계라고 그는 그들에게 말하곤 하였다. 창조는 진화였다: 우주는 미완성 상태 이지만 그들이 우주의 진보를 돕게 될 것이었다. Solentiname에 모두가 화가, 조각가, 무희, 시인 같은 창조자가 되기 위한 강습소를 세웠다. 공산주의 서적으로 가득 찬 도서관도 세웠다. 해외로부터 방문자들이 와서 그림들을 구입하고 그의 원칙이(principles) 실천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5-3-28
Liberation theology, the “option for the poor”, was then current all over Latin America, but his was sharper-focused. At Solentiname Sunday mass became a free-form discussion, everybody sitting in a circle for Gospel readings which the campesinos would comment on, and he would explain. Why was the good news of Jesus’s birth given first to shepherds? Because the poor and oppressed needed it most. What about the parable of the mustard seed? That was the seed of change they all carried in them. What was the Kingdom of God? That was a place where everything was turned upside down, as when you flipped a tortilla. The Kingdom of God was revolution. It was the overthrow of the right-wing Somoza regime that had ruled Nicaragua for decades—those tyrants who barged through his poems, swanning round in their chocolate-biscuit palace, guarded by goons with machineguns, who would kill a man as casually as they smoked a cigarette.

“貧者(빈자)를 위한 선택권”인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서 유행하고 있었지만 그의 해방신학은 더욱더 선명한 것이었다. Solentiname에서는 일요 미사(mass)는 농민들이 둘러 앉아 논평을 하며 복음서 讀會(독회)를 하는 자유토론회가 되었고 그는 해설을 하였다. 예수 탄생의 좋은 소식이 왜 먼저 양치기들에게 전달되었을까? 가난하고 압제받는 사람들이 그 소식을 가장 원하였기 때문이다. 겨자씨 비유 이야기는 어떤가? 그것은 그들 모두가 지니고 있는 변화의 씨앗이었다. 하나님의 왕국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당신들이 tortilla(둥글고 납작한 큰 빵)를 확 뒤엎을 때처럼 모든 것을 顚覆(전복)시키는 나라(place)였다. 하나님의 왕국은 혁명이었다. 그것은 Nicaragua를 수십 년 동안 지배해온 Somoza우익 정권의 전복이었다―그의 詩(시)를 난폭하게 다루고(barge through), 담배를 태우듯이 예사로 사람을 죽이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폭력배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화스러운 궁전에서 한가하게 노닐던 그런 독재자들(을 전복하는 것이었다).
 

5-4-29
He had written that way for a long time. Hate alternated with love, especially, in his early “Epigrams”, in lyrics addressed to girls his pleading kisses could no longer reach. Later, both God and rebellion took him over. In the 1950s he supported a coup, yelling for liberty in the street, but fled when it failed. His long poem “Hora 0” (Zero Hour) eulogised Augusto César Sandino, the Sandinistas’ model, as a figure like himself, no soldier, no politician, leading with grim serenity a ragged, shoeless army against the yanquioccupation in the 1920s. Feeling at last that he had to foment armed struggle, in 1977 he sent some would-be martyrs from Solentiname to attack a guard post in the town of San Carlos. In revenge, Anastasio Somoza’s troops destroyed his island Utopia.

Yet all was not lost. In two years the Somocistas themselves had been toppled, and Nicaragua had the rulers he had hoped for. Surprisingly—since he was a man devoted to solitude and simplicity, to Neruda, Whitman and Pound’s “Cantos”—he was one of them. His post as minister of culture, Nicaragua’s first, gave him a chance to do nationally what he had achieved in miniature before.

그는 그런 식으로 늘 글을 써 왔었다. 증오와 애정이 교차하였으며 특히 초기 풍자시(Epigrams), 그의 소원 키스가 도달할 수 없는 소녀들에게 부쳐진 시(lyrics)에서 그러하였다. 그 후 神과 반역행위 둘 다가 그를 사로잡았다. 1950년대에 그는 거리에서 자유를 외치며 무력기습(coup)을 지원하였지만 그것이 실패하였을 때 도주하였다. 그의 長詩(장시) “Hora 0”[零時(영시)]는 Sandinistas(니카라과의 공산주의 반란군)의 모델인 Augusto César Sandino를 자신처럼 군인도, 정치인도 아니면서 1920년대에 미국 점령에 대항해서 남루하고 신발도 없는 군대를 이끌었던 인물로 찬양하였다. 마침내 무장투쟁을 선도해야 된다고 느끼면서 1977년 그는 Solentiname 출신 미래의 순교자(농민들)들을 San Carlos라는 마을에 있는 수비대 진지를 공격하도록 파견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Anastasio Somoza의 군대는 Utopia 섬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전부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2년 뒤에 Somoza정권(the Somocistas)이 스스로 붕괴하고 Nicaragua는 그가 소망하였던 지배자들을 가지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고독과 소박함과 Neruda(칠레의 시인)와 Whitman(미국의 시인)과 Pound(미국시인)의 “Cantos”(장편 시집)에 빠져 있었다(devoted)―그도 그 통치자들 중의 하나였다. 문화부장관(Nicaragua의 첫 번째)으로서의 그의 직위는 그에게 전에 그가 매우 작은 규모(miniature 축소판)로 성취하였던 것을 전국적으로 실행할 기회를 그에게 주었다.
 

5-5-30
For nine years he tried, establishing cultural centres and poetry workshops all over the country, restoring Solentiname, launching a literacy drive and selling the Nicaraguan revolution abroad. His white hair and black beret made him its symbol, seemingly mild, until he raised his oracular voice in poems. But there was never enough money in the ministry. Besides, many thought his poetry workshops were not so much classes for the common man as propaganda mills, where the only poetry taught had to be like his: simple, direct, and with the raw howls against dictatorship that typified his “Psalms”. (“Their lying radios roar into the night/Their desks are strewn with criminal intentions...”) That charge was hard to counter. He too was wildly ardent, then.

9년 동안 그는 전국에 걸쳐 문화센터와 詩 강습소를 설립하고 Solentiname을 복구하고, 문자해득 운동을 착수하고 Nicaragua 혁명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노력하였다. 그의 백발과 하얀 베레모는 그를 외견상 온건한 혁명의 상징으로 만들었으며 마침내(until) 그는 그의 詩에서 神託(신탁)적인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문화부(ministry)에는 한 번도(never) 돈이 충분한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 강습소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교실이기보다는 선전 공장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곳에서 가르쳐지는 시는 그의 시와 같은 것이어야 했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그의 “찬미가”의 특징인 독재에 반대하는 생생한 울부짖음을 가진 (그런 시였다). [“그들의 거짓 방송은 밤 속으로 울부짖고/그들의 책상은 범죄 의도의 서류(intentions)로 덮여 있었다…”] 그런 비난(그의 시에 대한)은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때 난폭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5-6-31
Eventually the fervour cooled. No one seemed able to adopt either Christianity or Marxism fully in practice; the creeds were equal in that, too. The Sandinistas’ beautiful revolution turned dynastic under Daniel Ortega and his wife, who in 1988 eased him out of the ministry. By 1994 he had left the movement; in 2008 he condemned it as a thieving monarchy. And his priestly life, too, had gone. He had been stripped of his sacramental functions in 1984, soon after his airport scolding, because he refused to leave the government. Only a year ago did he get them back.

That loss he dealt with in his own way, through books and the practice of poetry. He was ever Trappist; in his bare room he needed only a bed, a shelf, a crucifix and a desk. He retreated to Solentiname where God, he said, slept with him in his hammock by the lake. But he wrote less about politics now, and more about the wonders of the cosmos: the stardust that made humans universal, the flowering of galaxies, the poignancy of messages sent to uninhabited planets. His favourite reading was scientific journals. There he tracked the discoveries that showed creation ever greater, evolving slowly, despite many a slip, towards a perfect revolution—as Marx taught and as Christ taught, both alike.

마침내 그 열정은 식게 되었다. 아무도 기독교나 마르크시즘을 실제로 실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신념(기독교나 마르크시즘의)도 그런 점에서는 같았다. Sandinistas의 아름다운 혁명은 Daniel Ortega와 그의 아내의 통치하에서 王朝(왕조)적으로 변하였고 그들은 1988년에 그를 문화부에서 추방하였다. 1994년 그는 혁명운동에서 떠났다. 2008년에 그는 그 운동을 전제군주제도라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의 성직생 활도 끝나있었다. 그는 공황에서 질책을 받은 후에 정부에서 떠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1984년 聖事(성사) 수행업무(functions)도 박탈당했었다. 1년 전에야 그는 그 업무(them=functions)를 되돌려 받았다.

그 손실을 그는 詩作(시작)과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방식대로 처리하였다. 그는 언제나 수도사였다. 그의 텅 빈 방에서 그는 침대와 선반과 성상과 책상만 필요할 뿐이었다. 그의 말로, 神은 호숫가에 있는 그의 그물침대에서 그와 함께 잠을 자는 Solentiname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에 대해서는 보다 더 적게 쓰고 우주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더 많이 썼다. 인간을 우주 보편적인 존재로 만드는 星雲(성운), 은하수의 피어남, 인간이 살지 않는 행성으로 보내는 메시지의 매서움[poignancy: 슬픔과 후회에 대한 예민한 느낌을 환기시켜주는 자질](에 대해서 많이 썼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는 과학저널이었다. 거기에서 우주창조(creation)가 많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혁명을 향해 천천히 진화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발견들(과학적)을 추적하였다. 마르크스가 가르치고 예수가 가르쳤던 것처럼. 그리고 둘 다 똑같이.

[ 2020-08-04, 11: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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