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포기하세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서른 세 살 무렵 국회의원이 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 년 정도 일한 적이 있었다. 그 국회의원은 입지전적인 자신의 성공을 내게 자랑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머나먼 곳인 울진의 가난한 집에서 자란 그는 시골 고등학교에서 고려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되고 좋은 법조인 집안의 딸과 결혼을 했다. 야망이 있던 그는 고향 법원의 판사로 지망해서 정계로 갈 터전을 마련했다. 시절이 그를 도왔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권력은 새로운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그 다음에도 실패가 없이 또 당선됐다. 그는 사십대에 핵심 상임위원장이 됐다. 그는 정계의 거물이 됐다. 그는 나와 함께 있을 때 더러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내게 항상 국회는 끝이 아니고 자신에게 로마로 통하는 길일 뿐이라고 했다. 그의 꿈의 마지막은 대통령이었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법대 일학년 시절 아주 가까웠던 친구가 있었어. 우리들은 꿈도 똑같았지.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나는 경상도를 장악하고 전라도 출신인 그 친구는 호남을 장악하고 서로 힘을 합쳐 이 나라를 다스려 보자고 말이야. 나는 그 목표를 거의 이루어 가는데 그 친구는 나이 마흔 살이 넘은 지금까지 고시 낭인으로 암자의 뒷방에서 공부하는 거야. 그 친구 부인이 명문여대를 나오고 예뻤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삶이 힘이 들었는지 겨울밭에 버려진 배추처럼 시들어 있더라구. 안됐어, 정말 안됐지.”
  
  그때 나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극명하게 비교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인식했었다. 성공한 그 국회의원은 그 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이따금 텔레비전에는 비서실장이 되어 대통령과 머리를 대고 얘기하는 그의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실질적인 권력의 실세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대통령이 그를 차기 대권후보로 마음에 점 찍어 두고 있다는 정치면의 해설기사도 드문드문 떠올랐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 같은 왕의 재목도 만들고 그 궁전의 문지기도 있었다. 인간도 그 재질에 따라 용도가 달랐다. 그를 보면서 나는 삼십대 초에 이미 내가 바라볼 길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그와 같은 정력도 리더십도 없었다. 그는 싫은 사람도 티를 내지 않고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게 정치인의 달란트인 걸 알았다. 그는 끊임없이 상승하려는 권력의지가 있었다. 나는 피라미가 상어가 되는 꿈을 꾼다고 그게 될까? 하면서 내 주제를 자각했었다.
  
  그의 사무실을 나오고 삼십 오 년 가량이 흘렀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의 이름이 신문의 정치면에서 사라졌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세월이 흘러 그 의원도 나이 팔십대가 된 것 같다. 선거 때가 되면 그가 가족 몰래 아직도 출마를 하려고 한다는 소리가 전해오기도 했다. 권력의 맛을 보면 대부분이 그걸 잊지 못한다고 했다.
  
  나 역시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됐다. 뒷골목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면서 법률서류를 써 주기도 하고 변론을 하면서 그 품값으로 밥을 먹고 남는 시간은 책을 읽기도 하고 더러 여행도 하면서 살아왔다. 삶의 황혼인 요즈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노인이 되어 좋은 점은 관념적인 이론이나 지식으로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세월 속에서 나의 몸으로 느끼고 나의 영혼이 만난 행복을 반추해 보는 것이다. 남이 하얀 손으로 쓴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남없이 세상에서는 장군이나 의원 같은 계급장으로 상징되는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 행복할 것 같았다. 실제로 마약에 취하듯 순간 그렇게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현인들은 그런 모습을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정도라고 한다. 참 진리를 알 수 없는 소나 말이 콩과 풀을 많이 주면 좋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행복은 어떻게 올까? 행복은 행복을 단념했을 때 오는 것 같았다. 그러면 고통이란 무엇이었을까? 행복을 추구하다가 못 얻는 것이었다. 행복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 고통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행복을 단념하고 나를 포기하면 그 다음에 뭐가 올까.
  
  
[ 2020-08-08, 16: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까마귀     2020-08-16 오후 12:43
국회를 벗어나 청와대에서 대통령 바로 다음으로 높은 자리까지 갔으니 성공한 것이군요.
감옥에 가거나 언론에 오르내리며 세상사람들에게 욕을 먹지도 않았으니
제 기준엔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白丁     2020-08-09 오전 9:51
김대중 집권 후 초대 비서실장으로 영호남 지역감정 탈피를 위한 대단한 탕평인사인양 벌인 쑈. 전두환 정부에서 영화 누리고 김대중에 붙어서 비서실장으로 2인자 권좌 누린 처세술의 고수. 박지원이나 다를 바 없는 자.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