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통조림과 아버지의 老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내가 쓴 만큼이 번 게 아닐까?>
  
  내 또래의 친구들이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지 십년들이 넘어간다. 대학교 동기들은 아직도 꾸준히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 모임에는 가급적 참석을 하려고 노력한다. 힘든 시절을 같이 하고 추억을 같이 하고 아픔을 함께 한 구들목같이 따뜻한 게 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고 나서는 나름대로 또다른 에너지들이 충만했었다. 텃밭을 가꾸고 피아노를 배우고 서예를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백발에서 남은 윤기마저 빠져나가니까 그것도 다 시들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늙음은 내남없이 모두 가난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이는 음식점도 처음에는 호텔의 별실이었다가 뒷골목의 작은 밥집으로 변한다. 사회 명사를 초청해 얘기를 듣고 사례비를 주다가 그 다음은 친구들 개개인의 일생을 말하는 자리로 변한다. 한 친구가 메뉴판을 들고 음식을 고르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친구들 눈치를 보면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자제하는 표정이었다.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가격인데도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거의 다 대기업이나 은행에 들어가 임원이나 사장까지 오른 후 사회생활을 마친 친구였다. 일개미 같이 충실하면서 아이들 교육비를 대고 결혼을 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동면을 앞둔 벌레처럼 껍데기만 남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들 평등하게 가난해지고 지위도 없어지는 것 같다.
  
  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쓸쓸하게 지냈던 아버지도 돈이 없었다. 친구들도 점차 죽거나 병이 들어 거의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 역시 몸이 불편해서 친구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 혼자 냉수에 밥을 말아서 꽁치통조림을 반찬으로 먹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어느새 그런 아버지의 형뻘이 되는 나이가 됐다. 그런 게 싫어서 전문직인 변호사를 택했다. 그러나 그것도 끝이 있다는 걸 몰랐다. 변호사 중에서 최고의 수입을 올리며 잘나가던 선배가 있다. 고위직 법관 출신인 그가 부탁하면 꼬였던 사건도 거의 다 해결이 됐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그를 모르는 판사들이 돋아나왔다. 어느 날 그 선배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한 달 용돈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법원장을 두 번이나 한 고등학교 동기인 변호사도 로펌의 구석방을 공짜로 빌려 쓰면서 몇 달에 사건 하나라도 했으면 한다고 소망을 얘기했다.
  
  늙어서도 돈은 수시로 생활을 위협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전집으로 남은 조병화 시인의 노년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호숫가의 고향으로 낙향해서 혼자 사는 시인은 먼저 저세상으로 간 부인의 빈 방을 보면서 공허해 하고 있다. 그는 삶의 노잣돈이 떨어져 가는데 설마 죽음의 천사가 때를 놓치시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돈이 많은 부자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은행에 수백억의 예금이 들어있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그 돈을 단 일원도 쓰지 않았다. 냉기가 도는 방에서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명절이 되어 지점장이 선물로 보내는 조기나 닭튀김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젊은 시절 판자집에 살면서 막노동으로 출발했던 그 노인은 돈을 모으는 것만 알았지 쓰는 걸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 노인은 병에 걸려 죽음이 닥쳐오자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불 지르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돈에 속았다는 것이다.
  
  부자인 친구가 있다. 그에게 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남보다 돈이 조금 많을 때는 시기와 질투를 받았지만 천배 만배 부자가 되고부터는 모두들 자기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기가 죽는다고 했다. 돈은 인정받고 존경받는 힘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쓸 수 없다고 했다. 나의 시각에는 그도 가난한 사람이었다.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싸구려 등산용 조끼를 입고 값싼 불량품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노년의 돈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본다. 자기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모자람도 남음도 없이 살다가 가는 게 가장 적정한 게 아닐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족하고 산다. 세상을 떠날 때는 바늘 하나도 지니고 가지 못한다. 있는 사람도 모든 것을 뒤로 남긴 채 떠나야 한다. 나는 요즈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변두리의 작은 땅을 처분했다. 그 돈으로 평생 물건을 살 때 손을 쉽게 뻗지 못하던 병을 고쳐주려고 하고 있다. 손자 손녀에게 가지고 싶은 건 다 말하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뭐든 해주겠다고 말이다.
  
  동창들에게 밥을 살 때 내면에서 피어나는 훈훈하고 따뜻한 기분은 돈으로 비교할 수 없다. 땅 그 자체나 은행의 예금잔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쓴 만큼 번 것이라는 생각이다. 빈 손으로 가는 인생 가지고 있는 걸 써야 이익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 2020-10-18, 23: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이중건     2020-10-20 오전 8:20
또 좋은 말씀! 돈보다 귀한 것 배우고 갑니다. 감사 감사!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