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야? 난데 방금 애 났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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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된 손녀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초등학교 육학년인 외손녀가 중학교를 배정받기 위해서 지원서를 썼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요즈음은 주말에 외손녀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서 고기를 사주는 게 나의 낙 중의 하나다. 어제 저녁 식당에서 손녀에게 물어보았다.
  
  “너 세상에 태어날 때 일 기억 안 나지?”
  “당연히 안 나지. 할아버지.”
  
  “할아버지하고 처음 인사할 때 기억도 전혀 없지?”
  “당연하지.”
  
  “할아버지가 그때 모습을 내일 아침 글로 써서 너한테 선물로 보내면 어떨까?”
  “좋지 할아버지.”
  “알았어.”
  
  
  
  
  손녀가 세상에 나오고 할아버지가 되던 순간을 스냅사진처럼 글로 만들어 두면 나중이라도 손녀에게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가에서 지난 일기를 펼쳐 들고 손녀가 세상에 나온 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천팔년 이월 십이일 밤이었다. 나는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서린 바람을 맞으며 강남역 부근을 산책하고 있었다. 투명한 공기 속에서 빨강 파랑 노랑 네온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부우’하고 주머니 속에서 진동을 했다. 폴더를 여니 뉴욕병원의 분만실에 있어야 할 딸이 액정화면에 나타났다.
  
  “아빠야? 난데 방금 애 났어.”
  “아니 산모가 이렇게 전화해도 돼?”
  내가 놀라서 물었다.
  
  “별로 힘들지 않던데? 병원에 와서 두시간 만에 났어.약간만 아프던데. 딸을 낳았는데 삼키로그램이야. 눈이 뚤벙뚤벙한 게 나를 닮았어.”
  “그래 내 딸 수고가 많았다.”
  
  내가 할아버지로 인생의 톱니바퀴가 한 단계 앞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딸과 사위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두 달 후 딸 내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외손녀를 보기 위해 사돈 부부가 사는 도곡동의 아파트로 갔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두 달이 되는 손녀는 엄마 침대 귀퉁이에서 분홍색 면 옷을 입고 자고 있었다. 곰 인형 정도의 크기였다. 얼굴이 가려운지 잠결에 짧은 팔로 얼굴을 부비려고 하고 있었다. 둥글게 튀어나온 이마에 짱구였다. 손가락이 길쭉하다. 커서 제법 키가 크려나 보다. 밤 아홉 시가 넘으면 우유를 먹으려고 깬다고 해서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추어 왔다. 그 옆의 딸이 풀어진 퍼머머리가 흘러내리고 실내용 면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제 딸이 엄마가 된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비누를 묻히고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손을 닦았다. 이십팔년 전 병원 신생아실에서 딸을 처음 만날 때의 모습이 기억 저쪽에서 아스라이 떠올랐다. 딸과의 첫인사였다.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쪽 눈을 찔끔 감고 있었다. 그 딸이 자라서 다시 딸을 낳고 엄마가 된 것이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자고 있던 손녀가 눈을 부스스 떴다. 눈을 뜨고는 허공 쪽에 시선을 던지고는 한참을 무엇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딸이 갓난 아이를 안고 아파트의 거실로 나왔다. 아기가 정신이 들었는지 눈이 제법 시원하게 커져 있었다. 또록또록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다.
  
  “아빠, 아기가 요람 속에서 음악 감상하는 모습을 보세요.”
  
  딸이 그렇게 말하고 거실 구석에 있는 요람 속에 눕혔다. 요람의 천정 쪽에는 푸른하늘과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그린 둥그런 판이 붙어 있었다. 그 요람 안의 작은 하늘에 아주 작은 새끼 곰 세 마리가 줄에 매달려 있었다. 딸이 요람 구석에 있는 스위치를 켜자 음악이 나오면서 요람위의 쟁반 같은 판이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음악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손녀는 물결같이 잔잔히 울려 퍼지는 성스러운 멜로디를 들으면서 작은 곰 세 마리가 빙빙 도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손녀의 눈에 천국에라도 있는 듯 환희가 떠올랐다. 손녀의 영혼은 지금 셋째 하늘에 와 있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손녀의 눈빛이 그렇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손녀가 아름다운 이 세상을 소풍 온 듯이 잘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손녀는 지금 일정이 바쁘다. 한 달에 한 권 영어소설을 읽어야 하고 매주 한국문학 한 권을 소화해야 한다. 매일 꾸준히 수학 문제를 푼다. 이 세상이 어쩌면 요람속에서 환희를 가지고 보았던 천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손녀의 마음 속 우주에 천국을 담고 살아가기를 기도해 본다.
[ 2020-11-12, 22: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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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바로서야     2020-11-13 오전 9:29
어린 손녀가 벌써 영어 소설을 읽고 문학책도 읽는 다니 엄청 똑똑하고 귀엽게 보이네요^^ 손녀 손자의 귀여움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행복이지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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