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의 첫 제자(弟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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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앞집에 살던 아이가 들어섰다. 이제는 머리가 벗겨지고 골 깊은 주름이 진 오십대의 아저씨였다. 그래도 나는 그의 속에서 초등학교 사학년이던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로 돈을 받고 몇 명의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이었다. 말하자면 제자인 셈이기도 하다. 그 아이는 일찍 아버지가 죽고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살았다. 그때 좀 더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지 못한 게 가시같이 양심을 찌른다. 그런데도 몇 년에 한번씩 찾아주는 게 고맙기만 하다. 나는 그를 데리고 사무실 근처의 설렁탕집으로 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어?”
  “건물 청소용역을 맡아서 살아왔어요. 손이 딸릴 때면 봉고를 몰고 성남 노동시장에 가서 잡부를 데려다 써요. 그런데 잡부들을 데리고 아파트 청소를 하러 가서 배치하고 한참 후에 가서 슬며시 보면 도대체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시간이 되면 새참이나 달라고 하구요. 그 사람들 왜 가난하고 그런 운명인지 알 것 같아요.”
  
  그는 그 바닥일에는 훤한 것 같았다. 종업원이 와서 설농탕이 담긴 뚝배기 두 그릇을 ‘탁’ 소리가 나게 놓고 갔다.
  
  “그동안 살아온 건 어떻고?”
  내가 물었다. 그를 키운 할머니는 청상과부로 평생 아들 하나를 키웠다. 인정이 많은 분이었다. 그 집 창문으로 내 공부방이 항상 보인다고 했다. 대학입시 때였다. 그 집 할머니는 고기 한 근을 사서 슬며시 우리 집 쪽대문 아래 밀어넣고 갔다. 공부하는 나를 먹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그 집도 고기 구경을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 인정이 오고갔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저는 할머니와 외삼촌 밑에서 자랐죠. 저는 처음부터 청소용역을 했는데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해서 작은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어요. 그런데 아이엠에프 때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그 아파트마저 날아갔죠. 그 후로 셋방에서 애 둘을 키우고 있어요. 큰 놈은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고 작은 놈은 중학교 삼학년이에요. 워낙 돈이 없으니까 이제는 건물청소를 맡기는 곳도 점점 줄어들어요.”
  
  “요즈음은 외삼촌 댁에는 더러 가?”
  내가 물었다. 그의 외삼촌은 인정 어린 좋은 사람이었다.
  
  “살기가 힘이 드니까 자격지심이 생겨서 그런지 외숙모한테 눈치가 보여요. 그래서 한 삼 년 간 가지 않았어요.”
  
  그와 점심을 먹으면서 나의 기억 저 편에서 어린 시절 자랐던 신설동의 골목들이 떠올랐다. 바로 옆 낙산 자락에는 판자집들이 게딱지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밤이면 달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소리치고 싸우는 소리들이 개구리 소리같이 들려왔다. 그 아래 열 평의 대지에 작은 개량한옥집들이 달라붙어 있는 동네에 살았었다. 작은 안방은 두 사람만 마주앉아 있어도 꽉 차는 느낌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 같았다. 이웃 통장 할아버지집 마당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다. 나는 그 집에 가서 종종 우물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우물 위로 하늘이 내려와 있고 흰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냉기 서린 우물 주변에서 톡 쏘는 냄새가 나기도 했었다. 우리 앞집의 앞에는 작은 방에 일곱 형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한 이불에 다리들만 넣고 형제들이 살았다. 어머니는 그 집 맏아들이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우리 집 방을 빌려주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이런 유언을 했었다.
  
  “내가 함경도에서 서울로 시집을 와서 젊은 색시였을 때 엄마와 둘이 살던 앞집 꼬마가 있었어. 내가 밥을 하고 있으면 부엌으로 자주 놀러 왔는데 정이 들었어. 지금은 노인이 됐을 텐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죽고 나면 찾아서 돈을 좀 주거라. 내 선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 앞집 꼬마가 나를 찾아온 제자를 키운 외삼촌이었다. 내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작은 용돈이 담긴 봉투를 그의 외삼촌에게 주면서 죽은 어머니의 선물이라고 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맑고 투명한 눈물을 보았었다. 가난해도 서로 그렇게 의지하고 날개를 부비고 살아가는 게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어머니처럼 나도 가난한 나의 첫 제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었다.
  
[ 2020-11-13, 22: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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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바로서야     2020-11-14 오전 10:13
살아온 인생사 얘기에 힘들게 살아오던 추억이 되재겨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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