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만에 친해진 지리산 도사(道士) <1>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지리산을 다녀왔다. 산 속에 도사(道士)가 살고 있다고 했다.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산 속의 폐농가를 사서 십일 년째 혼자서 명상을 하면서 살고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거기서 글을 쓰면서 벌써 다섯 번째 수필집을 쓰고 있다고 했다. 법정 스님처럼 산 속에 살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거처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를 한번 만나보면 어떤 영혼의 울림을 교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누구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친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포도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익어가듯 우정도 그렇다고 하지만 그 말에 꼭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짧은 순간이라도 영혼의 결이 같으면 스며드는 수채화 물감처럼 금세 하나가 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의 벽을 넘어 오랫동안 사귄 친한 사람처럼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의외로 인연은 쉽게 맺어졌다. 학연이 먼저 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왔다. 같은 대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정이 통하는 그런 학풍의 대학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산속의 도사라기보다는 산 속에 은거하는 사회적 거물이었다. 거대한 공중파 방송국의 기자로 입사해 정치부장을 지나 보도국장을 하고 지방방송국의 사장을 거쳐 전체 방송국의 사장 후보로 올랐던 사람이었다.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그 혼자서만 출입증을 빼앗긴 저항적인 인물에게 권력이 거대 지상파 방송의 총 지휘를 맡길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인물인 것 같았다. 그는 삼십삼년의 방송국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 속의 한 폐가를 사서 십년이 넘게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중간에 사람을 넣어서 그와 만나고 싶다고 할 때였다. 그는 세상 인연을 정리하고 있는 중인데 더 이상 사람과 사귀기 싫다는 뜻을 전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나는 문을 두드렸다. 나와 다른 분야에서 삼십 년이 넘게 일한 그의 보물창고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나와 종교가 다른 그의 십여 년에 걸친 참선 수행과 명상에서 그는 무엇을 얻었는지 알고 싶었다. 각자 다른 인생길을 걷다가 밤이 오는 길목에서 잠시 스치는 인연 같았다.
  
  그와 지리산 자락에 혼자 떨어져 있는 허름한 주막 같은 집에서 만났다. 의외로 우리는 삼십분 만에 친해졌다. 영혼과 영혼이 교류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말문이 열렸다. 그 속에서 그가 깨달은 것들이 폭포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세상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보도국장을 하고 방송사 사장을 했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과도 친했고 정치부 기자니까 막소리도 했어요. 권력하고 가깝다고 우쭐거리기도 하고 거대 방송국 세 개의 국장끼리 합쳐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려는 야심이 있는 때도 있었죠. 정치쪽으로 오라는 러브콜도 있었고. 회사에서 내 아래 있었던 뉴스앵커나 기자들이 국회의원들이 많이 됐죠.”
  
  언론인 출신들의 모임에 합류해 보면 퇴직 후에도 대화의 소재는 왕년에 대통령 후보들과 지냈던 정치의 뒷얘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의 다음 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젊은 기자 시절부터 이 지리산이 나를 부르더라구요. 시간만 나면 배낭을 꾸려 지리산을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참선 수행을 하고 고승들을 만나고 불경들을 연구하는 거였죠. 삼십삼년간 근무한 방송국을 퇴직하고 산에 혼자 들어와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우리집에 데리고 가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지리산 일대에서 재래식 화장실인 집은 나 혼자뿐이니까.”
  
  “그런 수행 생활을 하면서 뭔가 찾아냈어요?”
  나는 그의 정신세계가 야곱의 사다리 어디까지 올라가 있는지 궁금했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이 단층집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그게 이층집인 걸 발견했어. 계단을 살짝 올라가 봤어. 그 고요한 이층에 뭔가가 살고 있는 것 같았어. 분명히 어떤 놈이 살고 있었단 말이야.”
  
  “그 놈의 정체가 뭔데?"
  “설명이 불가능해. 이름 지을 수도 없고. 그놈이 명상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내 안 깊숙이 있는 거야.”
  
  그는 ‘참 나’ 내지 진아(眞我)와 만난 행복한 사람 같았다. 그가 만난 진아란 성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영적 친구를 만나고 섬진강이 들려주는 소리와 비유를 들으면서 며칠 여행을 하느라고 블로그의 글을 올리지 못했다. 여러 블로그 이웃들이 걱정하며 소식을 물어주는데 감사하다.
  
  
  
  
[ 2021-07-28, 14: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