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앞에 드러나지 말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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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家訓)>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집안의 가훈을 접하는 수가 있다. 한 명문가와 관련된 소송을 맡는 기회가 있었다. 백년 전 한 조선인 청년이 부(富)를 이루었다. 탐관오리가 횡행하던 시절 그는 근면한 노동으로 재산을 일구었다. 그는 후손들에게 부탁하는 글을 남겼다. 특이한 것은 남의 앞에 드러나지 말라는 것이다. 관직을 맡거나 정치를 하지 말라는 뜻이 들어 있었다. 그는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라고 했다. 그 다음은 절약이었다. 그는 대지주가 됐을 때 손자들 보는 앞에서 수채구멍에 걸린 밥알을 물에 씻어서 입에 넣으면서 가르쳤다. 그 집안은 험난한 한국 역사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부자로 백 년이 넘는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그 집안의 자손이 나와 고교 동창이었다. 그 집 며느리인 친구 부인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시집을 오니까 재벌 회장인 시아버님이 끼니 때마다 반찬이 세 가지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반찬이 남지 않아야 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밥도 반찬도 조금씩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내가 먹을 게 없더라구요. 배가 고팠죠. 한번은 화가 나서 광을 열어봤어요. 그랬더니 글쎄 육포가 가득한 거예요. 이럴 수가 있나 싶었어요.”
  
  그렇게 말했던 그 집 며느리는 이제 칠십 고개를 앞에 둔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이학봉씨가 살았을 때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그 집안의 사람들이 괜찮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한 분을 찾아가 국회의원을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분은 사양을 하더라구요. 우리 집안은 원래부터 드러나는 걸 싫어한다면서 양해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 집안은 좀 달랐어요.”
  
  집안마다 가훈을 통해 면면히 내려오는 정신적 유전자가 있었다. 그 집안을 보면서 우리 집안을 생각했다. 조선시대 평민이었고 수백 년 동안 어쩌면 노비보다도 못한 쫓기는 역적 신세였던 것 같다. 시조라고 하던 분은 영월에 살던 평민이었다. 그는 어느 날 귀양을 왔던 왕이 살해되어 버려진 걸 보았다. 권력을 잃은 죽은 왕을 동정만 해도 역적이 되는 세상이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죽은 왕의 시신을 묻어주었다. 그냥 연민으로 그렇게 한 것 같다. 그 사실이 보고되자 그에게 목숨의 위험이 닥쳤다. 그는 아들과 함께 산 속으로 도망가면서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다.
  
  “선한 일을 했다고 그런다면 벌을 달게 받겠소”
  
  그 후 조상들은 산 속에서 이백 년을 숨어 살았다. 나는 그 사실을 조상이 전해 준 귀한 정신적 유산으로 영혼에 새기고 있다. 신문사 사진기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4·19 시위 때인데 말이야. 태평로 길거리로 나왔는데 잠시 적막감이 흐르더라구. 그런데 이상한 광경을 봤어. 경찰관 한 명이 누군가를 향해 카빈총을 조준하고 있는 거야. 누구를 쏘려고 하나 봤더니 길 건너편의 구두닦이 소년이었어. 회사에 구두를 가지러 오는 아이였어. 잠시 후 ‘딱’ 하고 총소리가 나더니 그 소년이 개구리같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힘없이 바닥에 나가 떨어지는 거야. 그걸 찍어야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나는 골목에 숨어서 벌벌 떨었어. 나는 비겁했어.”
  
  아버지의 고백이었다. 글로 쓴 가훈은 없지만 조상과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변호사로 살아왔다. 내 책상 앞 벽에는 십자가에 처절하게 매달린 예수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예수는 내게 바른 일을 하고 받아야 하는 세상의 벌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자식이나 손자 손녀에게 전해야 할 가훈을 한 마디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뭘 추구하고 살아왔을까.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소같이 쉬지 않고 뚜벅뚜벅 인생을 걸어온 것 같다. 혼자 일을 하고 한밤중에는 방안에서 혼자 되새기면서 혼자를 살아온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양심에 거리낌이나 찜찜하면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건 내 속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소리이자 인생의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당당하고 편하다. 즐겁거나 슬플 때 또 위험이 닥쳤거나 고독할 때 항상 내면에 있는 그 분께 물어보고 행하라고 하고 싶다.
[ 2021-10-10, 22: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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