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형제같던 그와 헤어진 이야기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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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맺어진 형제의 인연>
  
  노숙자들을 돌보는 그는 살아있는 성자(聖者) 같았다. 전과자 출신인 그 자신이 광야에 버려진 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기저기서 쌀을 구해다 감옥에서 나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잠자리를 안내해 줬다. 그는 그들과 함께 고통도 나누었다.
  
  칼바람이 전선줄을 울리며 지나가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그는 차에 치어 버려진 노숙자를 병원에 데리고 간 후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입원비 보증을 서 달라는 부탁이었다. 입원 절차를 밟아주고 중환자실에 있는 노숙자를 만났다. 정신은 또렷한 상태였다. 나는 소송으로 돈을 받아 나중에 비용을 정산하자고 했다. 그 노숙자는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그를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나중에 저 놈이 돈을 챙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 노숙자는 변호사인 나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선의에 대한 차고 메마른 배신의 태도였다. 그런 세상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 추운 날 변두리 병원에 와 있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 병원에서 나와 노숙자를 데려간 그와 함께 근처의 국밥집 탁자에 마주 앉았다.
  
  “도대체 저런 사람을 왜 도와줘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앞에 있던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님은 저 사람을 보고 도우시나요? 저는 하늘에 계시는 그 분을 보고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건 상관없어요. 위를 보고 하는 거죠.”
  
  그 순간 나는 숨막힐 듯한 감동을 받았다. 앞에 앉은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소년 시절 광산의 막장에서 노동을 했다. 폭력범이 되어 감옥에서도 살았다. 그는 돈도 없는 가난뱅이였다. 나보다 나이도 어렸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미 높은 경지에 간 것 같았다. 그는 나를 형같이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평생을 그와 형제같이 지내기로 결심했다.
  
  세월이 흘렀다. 가장 낮은 곳에 있던 그는 높이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사회의 기부가 그에게 몰렸다. 그가 이끄는 단체의 건물이 솟았다. 그는 사회 명사가 됐다. 방송에 출연하고 여기저기 강연에 나가고 신문이나 잡지기사의 주인공으로 소개됐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를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입에서 점점 하늘에 계시는 그분의 얘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보는 내게 장관을 만난 얘기며 부자하고 친구같이 지낸다는 것들을 자랑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보니까 나랑 똑같아요. 친구같이 지내요. 내가 부탁하면 잘 들어줘요.”
  
  그의 영적인 수준이 다시 세상 밑바닥으로 내려와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끄는 단체에서 그는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밥을 얻어먹는 노숙자들은 그를 칭송하는 기도를 들으며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그는 더 이상 내게 형제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의문이 있을 때 백년 전 살았던 현자인 노인의 영혼을 불러 물어보곤 한다. 그 노인은 자기의 목소리를 백 년 후의 누군가 열심히 들어줄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성자 같던 그가 왜 그렇게 됐습니까?’
  내가 마음으로 물었다.
  
  ‘자아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는 우리는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오.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형제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오.’
  
  ‘기독교는 형제주의 아닙니까?’
  ‘나는 형제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주의라고 생각하오. 우리 각자가 직접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 것이오. 그 결과로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하오. 인간끼리의 관계를 중시하는 건 대개 자기가 남의 도움을 받고자 원하기 때문이오. 그리스도가 빠진 형제주의는 사실은 이기주의요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형제의 인연은 맺어지는 것이지.’
  
  그 단체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났다. 단체를 운영하던 형제 같던 사람들이 우상이 된 그와 적이 되어 폭력적인 말까지 오고 갔다. 나는 조용히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단체도 더이상 찾아가지 않았다. 수십 년을 친구같이 형제같이 지냈던 그와의 관계도 그분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 2021-10-12, 21: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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