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같이 사라진 친구 여동생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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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좋다>
  
  몸이 불편한 친구의 여동생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이혼을 하고 노년에 강가에 혼자 살고 있다. 세 살 차이인 그 여동생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 했던 것 같았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친구의 여동생은 믿음이 깊고 문학책도 많이 읽었다고 친구는 자랑을 했었다.
  
  영안실로 들어가기 위해 강남성모병원의 시신 안치실 앞을 지날 때였다. 어머니의 죽음이 떠올랐다. 어머니를 그 병원의 시신 안치실 서랍같은 스테인리스스틸 판에 모실 때 너무 추울 것 같았다. 인간은 때가 차면 하나님이 데려가신다고 했다. 그래도 죽음과 이별은 슬펐다.
  
  나는 잠시 후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영정사진 안에서 인자하게 생긴 한 여인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주변의 공기가 환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갈 때마다 영정사진에서 독특한 느낌을 체험하곤 한다. 갑자기 암으로 죽은 선배는 울고 있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웃기던 밝은 사람이었다. 법정 스님이 타고 있는 불 옆에 있는 영정사진을 보았었다. 수필집을 통해 안 분이다. 생전에 보지 못했다. 영정사진 속의 그는 어떤 감정도 없이 무심한 얼굴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가면 입구의 전광 안내판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일부러 한번씩 보곤 한다. 울고 웃고 무심히 외면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내게 뭔가 한 마디씩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문을 마치고 접객실 탁자에 친구와 마주 앉았다.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동생이 혼자 운전하면서 고속도로를 가고 있었어. 그런데 뒤에 오는 버스가 졸음운전을 한 것 같아. 앞에 있는 차를 추돌하고 연쇄적으로 앞차와 부딪치는 반응이 일어났는데 내 동생이 운전하는 차 앞에 트럭이 있었던 거야. 내 동생이 차 사이에 끼어 즉사했지. 가서 보니까 미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죽은 것 같아. 다른 운전자들은 부상만 입었는데 내 동생은 죽었어.”
  
  왜 하나님이 그 여동생만 데려가셨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친구가 말을 계속했다.
  
  “내 여동생은 교사로 정년퇴직을 했어. 선생님들이 받는 연금에 정말 감사하던 애였지. 그 돈으로 주위에 무리하다 할 만큼 넉넉하게 베푸는 걸 봤어. 어려서부터 참 많이 책을 봤는데 퇴직하고 나서도 그랬어. 몇 달씩 살아보겠다고 외국을 다녔어. 그러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나가지 못했는데 그게 풀리면 영국으로 갈 예정이었지. 자식도 다 잘 키워놨고 나름대로 잘 산 인생이었어. 어려서는 어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중학교 때부터 어머니 대신 가난한 살림을 돌보고 막내동생을 자식같이 돌보아야 하는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야.”
  
  그 집안의 처절한 가난을 나는 친구로부터 얘기 들었었다. 그런 속에서도 공부에 뛰어나 명문대학 영문과에 합격한 여동생이었다. 늦은 밤 나는 가로등 불빛만 바닥을 묵묵히 비추고 있는 적막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초대받지도 않았는데 이 세상에 왔다가 허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거기에 어떤 한탄이 있을까마는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짧은 걸 인식한다. 친구의 여동생처럼 연기같이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백년 전 살았던 현자 노인의 책을 들추고 그와 만났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죽음도 삶도 슬픔도 기쁨도 병도 건강도 이득도 손해도 실패도 성공도 적도 동지도 내게 있었던 모든 일들은 모두 다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나의 생애는 전부 그 분의 계획대로 마련된 생애였소. 슬퍼할 아무것도 없소. 나에게 많은 슬픔을 안겨준 사람도 나에겐 필요했던 것이오. 병석에서 지낸 많은 시일도 내게 필요했고 내 곁을 떠나간 제자, 나를 배반한 친구, 그들도 내게 필요한 것이었소. 나는 내 생애의 종말을 맞아 말하오. 만사 만물 어느 하나도 좋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수많은 인간들이 마치 매트리스 속의 아바타 같은 느낌이 든다. 스스로의 의식을 가지게 한 첨단로봇같이 인간은 약간의 자유의지를 가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나의 운명도 보이지 않는 그 분이 설계하고 작동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다 좋다 하고 받아들임이 어쩌면 깨달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1-10-21, 16: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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