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에서 이겨야 최종 勝者가 된다!
한국 보수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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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선거 음모론, 陣營논리, 한글 전용, 명문고 폐지, 자유통일과 자주국방 포기
 ⊙ 윤석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소양 부족해서 역사전쟁에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
 ⊙ “유엔의 이름 아래 싸운 첫 전쟁에서 죽은 영국 병사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선 아무도 잊히지 않는다”(영국 런던 성베드로성당의 韓國戰 戰死者 추모 글)
사진=조선DB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즉위 7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6월 초, 나는 런던에 있었다. 러시아 영공 통과 금지로 대한항공 여객기(보잉 777-300)는 인천을 이륙, 중국 북부를 가로질러 중앙아시아로 들어갔다가 터키, 흑해, 헝가리, 독일, 프랑스, 도버 해협을 지나 14시간 만에 런던 교외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다음 날 시내로 나가 서점에 들렀다. 역사책이 많은 데 놀랐다. 세계를 경영했던 나라답게 책의 주제도 범(汎)세계적이었다. 영국인의 역사관(歷史觀)은 ‘악당으로부터도 배울 게 있다’는 식이다. 영국 왕의 대관식(戴冠式)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유명인사들의 공동묘지이기도 하다. 16세기 유럽의 패권(覇權)국가 스페인의 무적(無敵)함대를 무찔러 잉글랜드의 독립을 지켜낸 엘리자베스 1세의 석관(石棺) 앞 바닥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메리와 엘리자베스의 무덤 옆에서 기억하라. 종교개혁 시대에 신앙의 다름에 의하여 갈라졌던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양심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스코틀랜드 여왕이었던 메리(천주교)는 엘리자베스 1세(성공회)에 의하여 처형되었지만 무덤은 붙어 있다.
 
 
  죽어서 마주 보고 있는 찰스 1세와 크롬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엘리자베스 1세의 석관. 사진=퍼블릭 도메인
  웨스트민스터의 가장 좋은 자리엔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王政)을 폐지, 공화정(共和政)을 열었던 올리버 크롬웰의 무덤이 있었다. 현재는 표시만 남아 있는데,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는 복귀하자 아버지를 처형하는 데 관계하였던 이들의 명단(이를 블랙리스트라 했다)을 만들어 잡아 죽이는 한편 크롬웰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屍身)을 꺼내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해골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떠돌다가 1960년에야 모교(母校)인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마당에 묻혔다.
 
  웨스트민스터 맞은편 국회의사당 경내엔 크롬웰의 동상이 서 있다. 길 건너편 건물 외벽에는 찰스 1세의 얼굴 조각상이 붙어 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끼리 노려보는 형국이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 이후 지속된 왕권(王權)과 의회 권력의 피비린내 나는 오랜 대결이 1688년의 이른바 명예혁명에 의하여 마무리된 뒤에도 영국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928년이었다. 한국은, 영국에서 발전시킨 민주주의를 이어받아 변용(變容)한 미국 민주주의를 이승만(李承晩)을 매개로 하여 수입한 셈이 된다.
 
 
  ‘하나님 앞에선 아무도 잊히지 않는다’
 
  한국과 영국의 인연은 김일성 남침 때도 계속된다.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 등 영연방(英聯邦) 국가는 약 6만 명을 파병, 1078명이 전사, 4909명이 부상당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바울 성당 지하엔 넬슨 제독과 웰링턴 공(公)의 무덤이 있다. 나폴레옹에게 이긴 두 장수의 무덤 사이 벽에는 한국전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의 글판이 있었다.
 
  “유엔의 이름 아래 싸운 첫 전쟁에서 죽은 영국 병사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용기와 인내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세계의 국가들과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기도한다. 한국 1950~1953. 하나님 앞에선 아무도 잊히지 않는다.”
  (REMEMBER THE BRITISH SERVICEMEN WHO DIED IN THE FIRST WAR FOUGHT IN THE NAME OF THE UNITED NATIONS. THANK GOD FOR THEIR COURAGE AND ENDURANCE AND PRAY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AMONG THE PEOPLES AND NATIONS OF THE WORLD. KOREA 1950-1953. Not one of them is forgotten before God.)
 
  “하나님 앞에선 아무도 잊히지 않는다”는 한때 한국전을 ‘잊힌 전쟁’으로 불렀던 세론에 던진 메시지로 읽혔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그런데 오늘을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역사의 해석권을 장악한 사람이 권력투쟁의 최종 승자(勝者)가 된다는 것이다.
 
 
  두 번 아찔했다
 
  2020년 총선(總選) 이후 보수(保守) 진영에 유포된 부정선거 음모론은 보수를 분열시키고, 보수를 웃음거리로 만든 데 그치지 않았다. 지난 대선(大選) 때는 윤석열(尹錫悅) 후보를 낙선(落選)시킬 뻔했고, 지난 지방선거 때는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를 낙선시켰다(대표적 음모론자 강용석 후보가 5만 표를 가져갔다). 음모론은 투표에 대한 비관론과 무용론(無用論)을 확산시켜 투표율을 떨어뜨린다. 박빙(薄氷) 싸움에선 보수 후보에게 치명적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나는 두 번 아찔했다. 2월 23일이었다. 정부 측에서 회사로 연락이 왔다. 자영업자이니 방역지원금을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오전에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적어내니 오후에 바로 300만원이 입금됐다. 그 전에는 100만원을 받았는데 300만원이 들어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투표 직전에 약 330만 명의 자영업자들에게 1인당 300만원씩 10조원이 뿌려졌다. 10조원이면 100억 달러다. 330만 명의 자영업자, 배우자가 있으면 660만 명, 직원 한 사람을 포함하면 1000만 명이다.

  이틀 뒤 여론조사기관에 근무하는 보수 성향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이재명(李在明)의 지지율이 급상승, 윤석열과 붙어버렸다고 알려왔다. 전주(前週)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6%p 이기는 걸로 나왔었는데 소상공인들이 이재명 지지로 많이 넘어간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4일부터 거의 모든 뉴스가 전쟁으로 뒤덮였다. 2월 25일 TV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가 실수를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경력 6개월짜리 정치인이라서 괜히 푸틴을 자극해 이런 전쟁을 불렀다고 했다. 거기에 윤석열 후보가 대응을 잘했다. 이재명 후보는 영웅적으로 싸우는 젤렌스키를 비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말을 넘기면서 두 후보 간 격차는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陰謀論의 自害
 
황교안 전 총리 등 보수 일각의 ‘사전투표 반대’ 캠페인은 투표율을 떨어뜨려 윤석열 후보를 낙선시킬 뻔했다. 사진=조선DB
  두 번째는 3월 9일. 그 무렵 여론조사를 매일 점검했다. 선거 당일인 3월 9일이 되니 3월 8일자 여론조사가 들어오는데 7~12%p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이긴다고 예상됐다. 그런데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0.6%p 차로 윤 후보가 겨우 이기는 걸로 나왔을 때의 충격!
 
  그 원인은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국민의힘이 조사를 해서 유권자들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다. 이하는 나의 추측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사전(事前)투표 반대 운동의 영향이다. 뒤늦게 ‘부정선거 음모론 전도사’로 변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신문 광고를 통해 ‘사전투표를 하면 표를 도둑맞는다, 그러니 당일투표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거기에 넘어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당일투표만 하라고 하면 3일 중 하루만 투표하라는 이야기인데 투표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데 이른바 소쿠리 투표라는 사건이 벌어졌다. 투표 시간이 따로 정해진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때, 투표한 용지를 선관위가 소쿠리에 담아서 관리한 것이다. 거의 전 언론이 머리기사로 부실관리를 난타했다. ‘봐라, 사전투표는 부정이다. 본 투표는 하나 마나다’라는 음모론자들의 말발이 세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10%p 차로 이긴다는 장담을 했는데 당일투표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한테는 안 가도 좋다는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 윤석열 후보는 ‘제발 나를 믿고 사전투표해달라’고, ‘나부터 사전투표하겠다’고 목이 터져라 호소했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10%p 차로 이길 수 있었는데 사전투표 반대론자들 때문에 떨어질 뻔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연극을 열심히 하면 실제가 된다
 
  요사이 한국 정치판을 보면 연극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7막이라 했다. 첫째 역할은 젖먹이, 두 번째는 말 안 듣는 학생, 세 번째는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 네 번째는 용감한 군인, 다섯 번째는 근엄한 심판자, 여섯 번째는 축 처진 노인, 마지막에 다시 젖먹이로 돌아간다.
 
  한 기자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물었다.
 
  “어떻게 배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까?”
 
  레이건이 즉답한다.
 
  “아니 어떻게 대통령이 배우가 안 될 수 있습니까?”
 
  한국 사람들도 지난 70여 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연극을 해온 것이 아닐까? 연극도 열심히 하면 실력이 된다.
 
  〈순교자〉라는 영문 소설을 쓴 김은국씨는 1960년대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많이 있을 때 미국 잡지사의 의뢰를 받아 한국에 와서 르포를 썼다. ‘오 마이 코리아’라는 글인데 대학생 동생과 장교인 형이 격론을 벌이는 걸 소개한 뒤 이런 요지의 결론을 내린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민주주의라는 연극을 하고 있다, 건국된 지 20년밖에 되지 않은 나라가 감히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부르짖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싸우는 장교도 있다. 그런데 너무나 열심히 한다. 그렇게 하면 세월이 흘렀을 때 진짜 민주주의를 실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3월 9일 선거 때 외신기자들이 눈여겨본 부분이 있다. 3월 10일 새벽 3시쯤 KBS가 ‘윤석열 당선 확실’이라는 소식을 화면에 내보냈다. 직후 이재명 후보가 나와서 깔끔한 승복 연설을 했다. 미국 기자들이 특히 놀랐을 것이다. 죽일 듯이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승부가 나니까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는 트럼프보다 훨씬 낫다고. 사실 아닌가? 트럼프는 지금도 부정선거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미국 공화당원 중에 트럼프가 부정선거로 낙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0%이다. 전체 미국인의 30%가 속고 있다. 음모론이 이렇게 무섭다. 그래서 승복연설 순간만큼은 이재명 후보가 근사하게 보였다.
 
 
‘김일성 惡靈’과 ‘이승만 정신’의 싸움
 
2021년 6월 4일 제막된 국정원 원훈석은 신영복의 글씨체로 되어 있다. 사진=청와대
  3월 9일 선거는 체제 대결, 즉 이념 대결 면에서는 보수가 최종적으로 이기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사회주의 독재냐, 자유민주주의냐의 대결에서.
 
  그런데 남북한 싸움이 이념 대결뿐인가. 이념보다 더 큰 민족사적 정통성의 대결이 남아 있다. 남북 간의 대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나는 민족사적 정통성 싸움을 이념 대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라가 삼국통일 한 이후에 한반도에는 하나의 민족통일 국가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대원칙이 만들어졌다. 1민족 1국가여야 한다는 것. 즉 민족사적 정통성 싸움, 누가 적자(嫡子)고 누가 서자(庶子)냐의 대결에선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이념 대결에서 이기더라도 역사전쟁에서 지면 지는 것이다.
 
  남북한 대결의 핵심은 민족혼, 즉 영혼의 대결인데, ‘김일성 악령(惡靈)’과 ‘이승만 정신’의 싸움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원조(元祖) 이승만, 수령주의(首領主義)의 원조 김일성의 대결에서 문재인(文在寅) 정권은 노골적으로 김일성 편에 섰다.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면 그건 자신의 사상 아닌가? 작년, 국정원 정신을 새긴 원훈석(院訓石)을 세울 때 신영복의 글씨체를 썼다. 김일성의 악령이 국정원 안마당에까지 들어가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이라고 썼는데 그렇다면 그 국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국민은 인민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 아닌가? 원훈석을 새로 만들 때는 이승만 글씨체로 했으면 좋겠다.
 
 
  李承晩을 입에 올리지 않은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써준 것 같았다. 자유민주주의, 진실, 정의, 자유, 세계시민, 국제주의. 한국 문제는 국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국제적인 흐름에서 해결해야 한다 등등.
 
  취임사에서는 두 개가 빠졌다. 20대 대통령으로 선서를 하고 연설을 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그 수호를 다짐하는 이야기를 해야 될 것 아닌가. 1948년 8월 15일 건국(建國)의 의미,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한미동맹을 이야기할 때는 산파(産婆) 역할을 한 이승만, 트루먼, 아이젠하워를 기억해야 하는데 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승만을 내심으로 존경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겁내는 것 같다. 전두환(全斗煥)의 잘한 점을 얘기했다가 혼난 일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5·18 기념일 행사 참석차 광주(光州)에 갈 때는 장관 전원, 여당 국회의원 전원, 수석비서관까지 다 따라갔다. 국가 지도부가 거기 다 모였다. 만약 이때를 노려 김정은이 핵미사일로 때렸으면 국가 지도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참수(斬首)작전의 기회를 적에게 주는 이런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나?
 
  합참의장을 지낸 11명이 건의한 게 있다. ‘대통령이 국방부로 들어가고 그 옆에 국방부, 합참이 같이 있으면 한 방에 날아가는 수가 있다. 국가 지도자가 국군 지휘자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 안보 위해 요인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과거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1983년 10월 9일 한글날 버마(현 미얀마)에서 김정일이 지령한 아웅산 테러로 17명의 한국 정부 장·차관급 엘리트가 사망했다. 이기백 합참의장은 크게 다쳤지만 후송되어 살았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안내를 맡은 버마 외무장관이 지각해 출발이 늦어졌는데 가다가 펑하는 소리가 들려서 차를 돌렸다. 대통령과 합참의장이 같이 갈 뻔했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암살 시도가 일곱 번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對北) 강경 정책을 펴면 김정은이 그를 죽이겠다고 안 나서겠나? 김정은은 출퇴근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암살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까? 하루 두 번씩 같은 동선(動線)으로 출퇴근하니 암살 준비도 치밀하게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안보는 대통령의 안전이다. 박정희·전두환 두 사람이 요행수로 살아난 기억이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두고 박수 치고 있나? 보수 지식인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더 문제이다.
 
 
  保守의 병폐, 陣營논리
 
지난 5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5·18기념식에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시민”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선DB
  진영(陣營)논리는 한국 보수에 있어서 큰 문제점이다. 진영논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전쟁과 선거 때. 평시에 정책을 두고 진영논리를 적용하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은 배신자가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군이 주관한 2015년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자유세계 지도자로서 유일하게 참석했다. 그때 보수 지식인들이 반대했나? 성명서 하나라도 냈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당시 해경(海警) 경비정이 빨리 출동했다. 우연히 그 근방에 있다가 30분 만에 도착했다. 173명을 구했다. 미국 같았으면 해경정장은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바다도 배도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 같은 기자들과 정치인들이 해경만 두들기니 결국 그해 5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나는 해경 해체는 정권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때 야당, 지금 민주당은 속으로 좋아했다. 보수 지식인들이 제2의 해군인 해경 해체에 반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지금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용산 시대를 열겠다. 청와대는 조선총독관저였고 경무대였다. 여기서 비롯된 권위적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었다.’
 
  총독관저 이야기는 왜 나오나? 이 글만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초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법시험 9수를 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런 독서와 생각이 자신의 교양으로 숙성되어 요사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념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지식적 체계로 정립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 역사의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자유민주주의라는 나무를 심으려 해도 뿌리가 박히지 않는다. 아스팔트 위에 나무를 그냥 꽂아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관이 약하면 좌익 선동에 넘어간다. 윤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푸대접하면서도 광주로 국가 지도부를 다 데리고 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자랑스럽게 불렀다. 연설 마지막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진실, 정의, 자유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시민입니다.’
 
  이게 맞나? ‘광주시민은 진실, 정의, 자유를 사랑할 때 대한민국 국민이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야지 거꾸로 된 것 아닌가?
 
 
  韓民族의 챔피언은 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소양이 부족해서 남북전쟁의 주전장인 역사전쟁에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쟁점은 민족사의 정통성이 어디 있느냐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한민족의 챔피언이 누구인가’이다. 한민족의 챔피언이 김일성이라고 믿는 세력과 대결해야 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민족의 챔피언은 이승만이다”라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지 못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역사적 소양과 완벽한 이념 무장을 가지고 있던 분은 이승만·박정희 두 분뿐이다. 보수 대통령으로 알려진 사람 중에서도 이야기해보면 계속 북한을 국가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핵미사일 방어 훈련을 안 했는데, 이런 심리 아니었을까?
 
  ‘김일성 수령의 손자가 쏘는 핵미사일에 고이 맞아 죽어야지 어딜 감히 방어망 만들고 대피훈련 하느냐. 무엄하도다.’
 
  농담이 아니다. 주사파(主思派) 운동권 출신들은 자기들끼리 모이면 ‘김일성 수령’이라고 할 것 아닌가? 김일성 세력과 역사전쟁에서 이기려면 보수 지식인들이 많이 참전해야 한다. 중세(中世) 유럽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다. 중세 기독교 신정(神政)체제하에서 숨 막혀 하던 당대의 지식인들이 과거를 돌아보니 ‘그리스·로마라는 위대한 문명이 있었다. 로마로 돌아가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중세 지식인들이 여기서 영감(靈感)을 얻고자 그리스·로마를 연구했듯이 우리는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을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역사전쟁에서 이기려면 대한민국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라의 三國統一, 감동의 스토리텔링
 
  백제, 고구려, 신라가 싸우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는데,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감동적 업적이다. 가장 작은 나라가 나당(羅唐) 동맹을 맺어 백제, 백제를 응원하러 온 일본, 고구려를 차례로 누르고, 신라를 앞세워 한반도 전체를 속국(屬國)으로 만들려던 당과도 7년 동안 싸운 끝에 쫓아내고 한반도를 민족의 보금자리로 확보했다. 당시 당은 전성기의 세계 제국이었다. 이런 강대국과 손잡고 뭘 하려다가는 먹혀버리는데, 이용해 먹고 버린 영악하고 비장한 자주정신!
 
  한반도가 안정되니 동북아시아에 약 300년의 평화가 왔다. 당, 신라, 일본은 불교라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공유(共有), 고대사(古代史)의 황금기(黃金期)를 열었다. 한민족이 처음으로 일류국가가 됐던 때이다. 그 교훈을 살리면 두 번째로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대한민국 건국과 비견되거나 더 장엄한 스토리다. 삼국통일을 주도한 세 인물은 세계적 수준이었다. 김춘추(金春秋)의 목숨 건 외교, 김유신(金庾信)의 자주적 상무(尙武)정신, 문무왕(文武王)의 통합과 관용의 정치. 신라의 삼국통일, 그 연장선상에서 한민족의 정통성은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역사전쟁의 중요성을 간파한 북한 정권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고 주인공들을 역적으로 몰면서 외세(外勢)에 맞섰다며 고구려-발해-김일성 세력에 정통성이 있다고 우긴다. 이런 반(反)신라 종족주의(種族主義)에 넘어가는 멍청한 보수 지식인들이 꽤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여기서 우리가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전기(傳記), 영화, 드라마, 문학으로. 《삼국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같은 한국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재미로 읽다 보면 이승만·박정희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 김일성 3대는 민족 반역자임을 저절로 알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윤석열 연설에는 통일이 없다!
 
  6·15선언, 10·4선언, 4·27선언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게 ‘우리 민족끼리 자주 통일하자’는 반역의 맹세이다.
 
  민족 반역자와 민족 공조하자는 자도 민족 반역자라는 공식을 들이대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설 자리는 이단(異端) 세력 쪽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金), 노(盧), 문(文)만이 민주정부라고 했었다. 그가 말하는 ‘민주’가 ‘인민민주주의’의 그 ‘민주’라는 자백과 다름없다.
 
  대한민국 헌법 1조, 3조, 4조를 합치면 ‘평화적 자유통일’을 하라는 명령이다. 대한민국의 존재 목적이, 국가 의지가 자유통일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에서 늘 빠지는 게 ‘통일’이다. 헌법 제66조로부터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의 수호를 명(命) 받은 대통령이 통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보수 지식인부터 이제는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원래 북진(北進)통일, 승공(勝共)통일이라 하다가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 평화통일 시대로 넘어갔다. 북한은 평화적으로 적화(赤化)통일 하자는 거고 우리는 평화적으로 자유통일 하자는 건데 이제 정권도 바뀌었으니 이런 말장난은 끝내고 ‘자유통일’이라고 통일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우리보다 나은 게 적화통일이어도 통일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신라가 삼국통일 할 수 있었던 힘은 통일 의지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단결한 덕분인데, 국민 통합도 자유통일을 최고 가치로 할 때만 이뤄질 수 있다.
 
 
  한국 保守의 반성문!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한국 보수 세력은 이 기회에 좌익 득세를 불러들인 여러 실수를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이승만·박정희가 추진한 한글 전용 정책으로 한국어의 일부인 한자(漢字)를 말살, 국어가 망가져버렸다. 모국어(母國語)가 반신불수(半身不隨)인데 국민교양과 분별력이 온전하겠나? 좌익 선동이 먹히는 근본 조건은 한글 전용이다.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를 29명이나 배출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상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이 과학 분야이다. 이는, 표의(表意)문자 한자(漢字)와 표음(表音)문자 가타카나를 혼용(混用), 사고력(思考力)과 표현력이 풍부해진 일본인의 실력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명문(名門) 고등학교를 없앤 것도 단견(短見)이었다. 국가 엘리트는 대학이 아니라 감수성이 순수한 고등학생 시절에 그 바탕이 만들어진다. 평준화(平準化)에 홀린 박정희 대통령의 큰 실수였다.
 
  오늘날 한국은 한미 동맹에 의존하다가 자주국방 의지를 포기하고 말았다. 1996년에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군사 전문기자를 만났더니 이렇게 충고하는 것이었다.
 
  “한국 수도(首都)에 미군이 주둔하는데, 그게 오래 지속되면 국민정신이 타락한다. 우린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미국 도움은 받지만 미군을 불러들이진 않는다.”
 
  자주국방 측면만 본다면 김일성 세력은 신라를 닮았고 한국은 백제와 비슷하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위험하게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행복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150개국 중 9등)이고 위험을 피하려는 한국인은 물질적 조건에 비하여 불행도가 높은 편이다(60등 내외). 운명을 피하는 사람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이들의 차이일 것이다.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생들은 숙명을 거부한 위대한 한국인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下野)한 해에 태어난 윤석열 대통령의 성패(成敗)는 역사전쟁에서 결정될 것이고, 이승만 정신으로 무장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보수가 자주국방을 포기한 타락이 자유통일 포기로 연결되었다는 데 대한 준열한 반성이 요구된다.⊙
[ 2022-06-25, 15: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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