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단 단장, “韓日관계 꼬이는 것은 문화의 차이 沒理解 때문”
한국인과 일본인은 사상의 바탕이 다르다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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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월13일) 아침 朝鮮日報(조선일보)를 보니, 在日(재일) 대한민국 민단의 呂健二(여건이) 단장은 주일특파원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양국이 상대방의 문화·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은 서로의 잘잘못은 물에 흘려보내는 문화”라며 “전쟁에서 서로 죽이던 관계라도, 사죄할 때 한 번 받아들이면 모든 걸 흘려보내고 재차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섬나라라는 지형적인 특성 탓에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문화라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 장기처럼 상대편 말을 잡으면, 자기편 말로 다시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게 섬나라라는 설명이다.
  呂 단장은 “이런 문화가 세계에서도 통용된다고 믿는 일본인들로선 식민지 시대를 사과했는데도 한국이 왜 ‘물에 흘려보내지’ 않고 계속 사죄를 요구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며 “일본인들 사이에 ‘한국은 이상한 나라’라는 분위기가 생기는 이유”라고 했다.
  
  呂단장은 일본 문화의 특성을 쉽게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양국 간 주요 철학사상을 이루는 儒學(유학)적 배경의 차이를 들여다 봐야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한국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에 민족의 전통적인 天(천)의 개념을 보탰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天의 개념이다. 한국 고대사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天孫(천손)사상, 동학을 창시한 崔濟愚(최제우)의 ‘人乃天(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다)’사상이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한마음의 상태에서 서로 돕고 협조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착하다”는 孟子(맹자)의 성선설이 성립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仁義(인의)를 중시하는 성선설적 사고를 한다. 성선설적 사고는 하늘 관념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법보다 仁義나 道理(도리=하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비난받지 않는다. 비록 법을 위반하더라도 인의도리에 맞는 길이라면 이 길을 택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이 때문에 조선 건국을 반대하다 李芳遠(이방원)의 손에 죽은 鄭夢周(정몽주)가 조선 유학의 宗匠(종장)으로 떠받들어진 것이다. 임금 世祖(세조)를 거역하고 강제로 몰려난 상왕 端宗(단종)을 복위시키려다 발각돼 사형당한 사육신이 萬古(만고) 충신으로 대접받는 나라가 한국이다. 범죄행위를 한 부모를 자식이 고발하면 그 자식을 처벌한 곳이 한국이었다. 자식의 고발이 합법적일지는 모르나 도리에는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 조선시대에는‘綱常(강상)을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했다.
  일본은 荀子(순자)의 성악설적 사고의 기준아래 禮(예), 秩序(질서), 법을 중시한다. 성악설적 사고는 인간이 중심이다. 일본 유학의 특징은 한국과 이처럼 對蹠的(대척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일본 유학에는 한국의 유학과 달리, 天의 개념과 仁義道理 개념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天 대신 인간 위주, 仁義 대신 禮 위주가 되었다. 이러한 정서는 주자학이 임진왜란 때 姜沆(강항•1567~1618)에 의해 전수된 이래, 日本에서 변화되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이다.
  天 사상이 없는 사람들의 관심은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일본 유학이 인간 사회에서의 질서를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이러한 사상적 특징이 생겨난 원인 가운데 환경적 요소가 가장 크다. 일본에서는 지진이 빈발한다. 지진이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지진에 대한 공포를 갖고 산다. 지진이 나면 바로 피난갈 수 있도록 비상식량을 준비해야 한다. 습도가 높아서 목욕하지 않으면 감기에 걸린다. 햇빛이 나오면 곧 이불을 말려야 한다. 날씨의 변덕이 심하여 맑은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도 한다. 때문에 말린 이불이 비에 젖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한다. 여름에는 수도 없이 태풍이 몰아친다.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우선 확보돼야 하는 것은 당연히 육체적 삶이다. 육체적 삶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연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늘 눈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 육체적 삶을 확보하는 것은 자연과 싸우는 것 뿐 아니라, 인간끼리도 서로 싸워야 한다.
  따라서 인간사회는 서로 투쟁하는 장소로 생각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일본인들에게 高度(고도)의 정신적 삶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육체적 삶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인의 정서에서처럼 인간의 본성을 악한 존재로 파악한다면 인간관계는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가족 관계처럼 만들어 간다. 예컨대 몇몇 사람이 모여 하나의 단체를 형성하면 그 중에서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 그가 부모의 역할(親分=오야붕)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자식의 역할(子分=꼬붕)을 한다.
  일단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가 형성되면 오야붕은 부모처럼 나머지 사람을 보살피고, 꼬붕은 오야붕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된 뒤에야 안심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이러한 관계는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도 성립한다. 집단과 집단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야붕과 꼬붕 관계를 만듦으로써 그들은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과 조직이 부딪치면 두 조직의 오야붕끼리 싸워 진 쪽의 오야붕 혼자만 割腹(할복)한다. 진 쪽의 꼬붕은 과거를 물에 흘려보내고 이긴 쪽의 꼬붕이 되어 새로운 오야붕에게 충성을 맹서한다. 새 오야붕은 새 꼬붕들의 생활을 책임진다. 도꾸가와 막부를 연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강)도 할복한 영주의 아들이었다.
  이처럼 상이한 철학적 배경을 가진 한일 양국의 문제는 일반 국민들이나 그들의 지지를 먹고사는 정치인에게 맡겨놓으면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국의 학자들이 양국의 차이점을 연구하고 교류하여 양 국민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 2023-03-13, 11: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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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dn     2023-03-14 오후 6:07
조남준 군의 명백한 해설에 감탄한다
그러나 석학의 군의 결연한 애국적 주장이 없음에 한탄한다.
   무학산     2023-03-13 오후 2:51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 차이를
사상사적으로 풀이해 주신
趙南俊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런 기사를 조갑제닷컴 아니고는
어디서 읽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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