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전 히로시마에서 만난 재일동포 '朴 會長'에 대한 추억

문무대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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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廣島)가 G7정상회의 개최로 뉴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외의 안내로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탑을 참배한 것은 재일동포는 물론 국민의 가슴에 뭉클함을 안겨줬다.
  
  78년 만에 이뤄진 추모행사였다. 필자는 1964년 6월 하순 대학생 신분으로 일본수산업 현황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일행은 5명이었다. 일정 가운데 '히로시마 평화공원'도 포함돼 있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기 7개월 전이었다. 당시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절대자의 조각상'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었을 뿐 재일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는 공원 밖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원폭의 무서움을 직접 체험한 유일한 국민"이라고 설명했다.그 뒤 재일 한국인들이 노력하여 공원 경내로 위령비를 옮겨세웠다. 시찰 도중 한국에서 젊은 대학생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중년의 박 회장이란 재일동포 한 분이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불고기로 식사를 대접하면서 '히로시마 재일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얘기도 들려줬다. 같은 원폭 피해자이지만 '평화공원 내 기념비'에는 일본인 희생자들만 있을 뿐 '재일한국인 피해자'는 없다고 했다. 죽어서도 차별받고 있는 '재일 한국인'의 서러운 처지를 눈물 흘리며 하소연했다. 조국이 발전해야 재일동포들이 푸대접을 받지 않을 테니 제발 대한민국이 힘을 키우라고 당부도 했다.
  
  박 회장으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던 우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박 회장은 히로시마역 플랫폼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우리 일행을 전송해줬다. 78년 전 한국 대학생들에게 융숭한 식사 대접과 함께 조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기원했던 당시의 '朴 會長'은 아마도 이번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재일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참배' 모습을 구천(九泉)에서 바라보고 한(恨)을 풀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참배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의미 깊은 역사의 한 장이 됐을 것이다. 일부 못난 정상배들이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기시다 일본총리 내외가 '평화공원 내 한국인 피해자 위령비' 앞에서 직접 윤대통령 내외를 영접한 것은 한·일 두 나라간 우의(友宜)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 격세지감이라고 할 것이다.
  
  국교가 정상화되기 전 당시 부산수산대학생들을 초청한 단체는 한수회(韓水會)였다. 동경수대를 비롯한 일본 국내 수산계열 대학에 재학중인 재일동포 학생들의 친목 모임이다. 회장은 동경수대 어로학과 홍성곤(洪性坤)군이었다. 홍군은 한국인 최초로 동경수대 실습선을 타고 남극(南極)을 실습 항해한 학생이었다. 당시 부산대학생들의 활약상을 보도한 신문 '水産新潮'는 일본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가슴이 따뜻했던 재일동포 '박 회장'의 명복을 빌며 달라진 한·일 관계에 기대를 가져본다.
  
  
  
  
  
  
  
  
[ 2023-05-22, 22: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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