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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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언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사랑하시는 loveth’은 h157 אָהַב ahab 아해브 아헤이브 {aw-hab} or aheb {aw-habe} 이다. love, lover(s), friend(s), beloved, liketh, lovely, loving으로 사용되는 어휘이다. 이 좋은 언어가 우리말 구음에는 과연 남아 있을 것인가? 이 어휘의 시작은 창세기22장 2절에 나온다. Gen 22:2 And he said, Take now thy son, thine only son Isaac, whom thou lovest, H157 and get thee into the land of Moriah; and offer him there for a burnt offering upon one of the mountains which I will tell thee of.
  창세기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해‘명사’ ‘아이’의 잘못.
  아‘명사’ ‘옛말’ ‘아이’의 옛말.
  아‘명사’ ‘옛말’ ‘아이종(나이 어린 종)’의 옛말.
  아해브나 아헤이브나 브와 이브라는 발음이 생략이 된다고 한다면, 아이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이니 어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보다 소중한 사랑이 있겠는가?
  한자로 사랑은愛(애)이다. 愛子(애자)‘발음 : 애ː자’ 파생어 : 애자하다 ‘명사’ 아들을 사랑함. 또는 그 아들.
   
  욕단의 시대와 아브라함의 시대는 약20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아브라함이 그만큼 후 시대이다. 그 전에는 구사하지 않던 어휘인데, 아브라함의 시대에서 이삭의 성장 후에 시험의 시간에 나오는 어휘이다. 에벨의 혈통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한민족은 언문으로 이어온다. 희한하게도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에서 그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명령이 내리기 전에는 사랑이라는 어휘가 없다. 창세기1장 1절부터 창세기 22장 1절까지의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말의 어휘가 없다. 우리말 개혁에도 없다. h157 אָהַב 이 어휘가 없다. 아마도 욕단의 시대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서 사랑을 특정 하는 어휘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선악과 심판, 노아 홍수 심판, 바벨탑 심판 등을 겪으면서 엄하신 하나님을 강조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嚴父(엄부)슬하의 자녀들에게는 부친의 그 엄함에서 사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경외란 말은 있다. 경외함에서 느끼는 사랑을 굳이 아해브라고 특정 지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h157 אָהַב 이 어휘는 하나님이 최초에 사용하신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두려우신 하나님의 그 두려움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특정해내신 어휘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Gen 3:16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thou shalt bring forth children; H1121and thy desire shall be to thy husband, and he shall rule over thee.
  בֵּן Transliteration(음역) ben벤 Pronunciation(발음) bān (Key)(밴) 자식을 밴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가서 그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을 받을 때까지 사랑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창조 시에 주신 본능이다. 그 본능적인 것을 다만 특정 하는 어휘에 담아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것이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해석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이 유달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통제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다만 특정 하는 어휘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의 행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세기22: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사랑이라는 의미의 어휘 중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특별난 사랑은 무엇일까? 부부. 연인 간에 특별난 사랑도 있을 것이고, 친구 간에 특별난 사랑도 있을 것인데 오늘 본문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그 특별난 사랑을 강조한다. 그 사랑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서 통제되어 나오는 사랑이다. 많은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며 이를 오해하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깨버린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친은 엄하게 자식을 다룬다. 그 속에 자식사랑을 담아내는 것이다. 특히 우리시대에 목회자들은 여호와를 경외함과 여호와를 사랑함을 분리하고 경외를 깨는 짓을 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신약성경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라는 말씀은 분명히 있다.
  사도행전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10:35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에베소서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에베소서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히브리서 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9:5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우리가 그간 피력한 앞글에도 이를 강조한 바이지만 생산 현장의 모든 것은 다 공포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포가 없다면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들어져도 하자로 가득할 뿐이다. 기술 산업의 근신 경성이라고 하는 의미는 초정밀분야로 갈수록 더욱 심하다. 한번 실수하면 수 억 수십억이 날아간다. 그 때문에 손실에 대한 공포 때문에 얼마나 조심하는지 상상 초월일 것이다. 모든 공산품이 그런 나름대로의 공포의 산물이다.
   
  모든 존재에서 두려움이 나온다.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도 두려움이 나온다. 지존자에게서 나오는 두려움에 잡혀야 비로소 그분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지존자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그분의 임재의 두려움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 길들여져야 비로소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가 무엇인지 안다. 그분의 임재에서 나오는 두려움의 자리에서 인간은 그분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뜬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임재로만 겪는 경외함에서 나오는 사랑이시다. 그 경외함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오는 경외함으로 전달되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모든 피조물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과 동질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진노아래 있는 것이다. 이를 진노의 두려움이라 한다. 지존자의 본질은 동질이 아닌 것에게 진노하시는 두려움의 본질이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본질을 얻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임을 받으신다. 그 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셔야 인간 속으로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본질로 통제하시는데, 그 본질의 통제를 받는데 온전해지면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동질성이 된다. 그들만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가 아니면 결코 얻어질 수 없는 동질성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임하시면 지존자의 두려움과 非(비)본질에게 드러내시는 진노의 두려움이 함께 임하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로만 임하시는 성령의 통치로 하나님의 본질로만 행하는 자들은 진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다만 하나님의 지존의 두려움에만 갇힌다. 이를 주 안에서라고 한다. 주 안에서란 지존자의 임재의 두려움이 그를 품는다는 의미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동질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요한일서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신데, 그분이 임재하시면 그분으로부터 두려움이 밀려나온다. 지존자의 두려움이시다. 모든 만물에게 각기 두려움을 나오게 만드신 하나님이시니 이는 하나님의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어려 있어 인간에게 분명이 보여 알게 하신다는 의미이시다. 지존자의 두려움을 겪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을 하나님의 본질에서 배운다. 이 두가지의 두려움을 맛본 그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그 두 두려움을 모르면 그의 주시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본질적으로 모르게 된다.
   
  요한계시록1: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 인간은 두려움에 잡혀 그 발 앞에 엎드러져 마치도 죽은 자 같이 된다.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는 요한일서를 쓰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다. 그 사랑을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는 두려움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다. 예수님 생전에도 그분에게서 나오는 그 모든 두려움을 깨닫게 되었고 그 안에서 사랑을 확인하였고 그 후 부활 시에도 그분의 임재와 진노의 두려움과 함께 사랑을 깨달았을 것이고 성령을 받은 후의 나날동안 하나님의 두려움을 깨닫고 그 안에 밀려오시는 사랑을 깨달을 것인데, 밧모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임재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는 두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악마의 독재는 체제보장을 위해 사람만을 죽이는 공포확장 확산이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거기서 하나님의 생명과 행복과 자유와 모든 선한 일과 그 모든 부요를 창출 증산하는 결과를 낸다. 성령은 인간을 각성케 하는 순서가 곧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알게 하심이시다.
  고린도후서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히브리서 12:28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베드로전서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베드로전서 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유다서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로만 임하시는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가 오시는데 그 통제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곧 지존자로부터 오는 임재와 진노의 두려움이시다. 그 두려움이 일으키는 경외함이 없으면 그 공포에 잡히지 못하면 인간은 방종하여 그 불순종을 이기지 못한다. 그 두려움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로 통제를 받는 자들은 그의 임재의 두려움에서 행복을 느낀다. 사랑을 느낀다. 생명을 누린다. 그 두려움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거역하는 자들은 그분의 임재와 진노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누구나 겪는 두려움에 잡힌다. 이를 심판의 두려움이라한다. 물론 임재의 두려움도 거기에 있지만 심판 날의 두려움은 동질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니 이를 다른 말로 진노의 두려움이라 한다. 非(비)본질에게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진노이시다.
   
  로마서5: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심판의 시간은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과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에 있으니 당연히 지존자의 두려움이 가득한 곳이다. 그분이 거기에 임하여 심판하시는 두려움을 드러내시니 곧 진노의 두려움이시다. 심판의 시간에 진노의 공포를 느끼면 이는 곧 성령의 말씀 곧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거역했다는 증표이다. 누구든지 성령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의 본질로만 행동하면 그는 하나님과 동질성이 되는데 동질성은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그 진노를 이긴다. 그분의 심판의 시간에 만일 누구든지 심판의 두려움으로 맞게 된다면 그는 동질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홀로만 지존자이시다.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두려움이 경외심을 일으키신다. 지존자로부터 나오는 임재의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본질은 사랑이시다. 그 임재하심의 두려움에 잡혀 하나님의 본질이신 사랑의 통제를 받아 행하는 자들은 심판 날에 두려움을 그 진노를 몰아내는 하나님의 본질과 동일한 동질성을 누리는 자들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본질과 다르다. 非(비)본질이기 때문에 그분의 심판의 임재 앞에 두려운 것이다.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질이 동일하면 그분의 임재에서 지존자의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사랑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받아야 임하시는 성령의 통치를 따라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받는데 완전해야 한다.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두려움은 그를 언제나 주 안에 가두신다.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은 그로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받게 하시는 성령에게 순종하게 하신다.
   
  심판 날에 진노의 두려움에 잡히면 형벌을 받는다. 둘째 사망 불 못에 던져진다.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누가복음 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사도행전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고린도후서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지존자로부터 오는 두려움에 잡히면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온전하도록 받게 되고 본질의 통제를 받으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임하는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는다. 하나님의 본질과 비본질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 인간은 심판 날에 그 앞에서 두려움을 맞게 된다. 그 두려움에 빠지면 그는 형벌을 영벌을 받게 된다. 그분의 임재의 두려움에 잡혀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받는데 주력하는 자들만 하나님의 본질을 받아 누리게 되는데 이를 동질성이라 한다. 그들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는 성령의 통치로 얻고 성령의 통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로만 얻고 그의 속죄는 성령의 각성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 얻는데, 회개란 곧 그 삶의 운전대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밀려나오는 경외심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본질의 사랑을 누리는 자들은, 그의 심판의 두려움을 그 임재의 두려움 속에서 미리 확인한다. 그 때문에 그 임재의 두려움에 잡혀 죽은 자 같이 되어 그 삶의 그 모든 운전대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바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그의 피로 씻어 성령으로 통치하셔서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받게 하신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시고 생명나무가 되는 이유이다. 그 나무에서 하나님의 본질의 통제를 받는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잠언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언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언 15:16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언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언 19:2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언 23: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잠언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분의 두려움에 잡혀야 한다. 특히 그분의 진노의 두려움을 맛보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기록하신 성경 안에서 보건대 그분의 임재를 통해서 하나님이 두려우신 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 두려움도 동시에 알게 하시는 성령의 각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임재의 두려움과 진노의 두려움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장소가 거기이기 때문이다. 엄부슬하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녀들은 결코 그릇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임재의 두려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그 아헤이브 아해브를 깨달아야 한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 2018-04-15, 14:57 ] 조회수 : 498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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