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金大中의 正體
저   자 : 趙甲濟
펴낸곳 : 조갑제닷컴
판   형 : 신국판
페이지수 : 216 쪽
출판일 : 2009년 9월21일
도서가격 : 10,000 원 
전자도서가격: 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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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단순 교통사고를 ‘암살음모’로, 무고한 운전자를 ‘살인범’으로 몰았던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前(전)대통령. 그의 숨겨진 本色(본색)을 밝힌 趙甲濟(조갑제) 기자의 추적보고 『續·金大中의 正體』(조갑제닷컴, 216쪽, 1만원)가 발간됐다.

저자인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前 월간조선 편집장)는 김대중 前대통령과 여덟 번의 인터뷰를 했다. 총 스무 시간이 넘는 대화였고, 노트에 질문을 준비해 집요하게 캐묻는 趙대표때문에 김 前대통령은 그와 인터뷰한 뒤에 피로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 후의 기사에 대해서는 그가 한 말을 정확하게 기록하였으므로 김 前대통령으로부터 불만의 표시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趙대표는 1987년 大選(대선) 운동기간 중 月刊朝鮮(월간조선)의 기사를 준비하다 김대중 당시 후보가 언급하던 ‘박정희 정권이 트럭을 동원해 김대중씨가
탄 승용차를 밀어 죽이려 했다’는 사고를 조사하게 된다. ‘의문의 죽음을 했다’던 김대중씨의 승용차와 교통사고를 낸 트럭운전사는 무덤 속에 있지 않고, 부산에서살고 있었다. 취재 후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 박정희를 모함하기 위해 무고한 운전사를 ‘살인범’으로, 단순 교통사고를 ‘암살음모’로 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趙대표는 ‘김대중씨의 인격에 대해 최초로 본격적인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대중 前대통령은 朴正熙(박정희)·全斗煥(전두환) 정권에 맨주먹으로 맞섰던 사람이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투옥되었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는 사형선고를 받고 연금도 당했다. 그가 1981년 대법원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아 對南(대남) 적화에 종사하는 反국가단체인 ‘韓民統(한민통)’의 수괴였다는 점 때문이다. 2004년 서울 고등법원은 김 前대통령에 대한 재심 선고 때 광주사태 관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韓民統 결성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인정을 파기하지 않았다.

‘민주투사’로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맞섰던 그는 그런 불굴의 용기를 稀代(희대)의 학살자 김정일 앞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700만 人命(인명)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과 손잡고 연합제·연방제 혼합 통일 방안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유일한 合法(합법)·정통국가인 대한민국을 反국가단체인 북한 정권과 동격으로 놓는 치명적 과오를 범했다.

김 前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 현대그룹을 창구로 하고 국정원을 시켜 4억5000만 달러를 金正日(김정일)의 마카오 내 비자금 계좌 등으로 보냈다. 林東源(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은 2003년 對北불법송금사건 특검수사에서 “金대통령께서는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송금을 하라’고 지시했다”는 요지의 증언했다.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로 보내는 돈이 군사비로 轉用(전용)될 수 있다는 사실, 不法(불법)임을 인식하고도 송금을 지시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서해교전) 때와 2006년 1차 北核(북핵)실험 때는 그의 對北굴종이 利敵(이적)행위로 치닫는다. 국군통수권자가 영해를 침범하는 敵船(적선)에 대해 自國(자국)의 해군에게 “먼저 쏘아선 안 된다”는 지침을 내리고, 主敵(주적)의 핵무장을 “미국이 못살게 굴어” 핵실험을 했다며 옹호했다. 2009년 6월 초순에는 그의 마지막 연설을 통해 李明博(이명박) 정부를 사실상 ‘독재’로 규정하고, 김정일에 대해서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동정하는 한편 국민들이 궐기해 反정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前대통령은 6·15 선언 이전까지는 인권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에 대한 응원도 열심히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탈북자, 납북자, 국군포로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김정일에게 그렇게 많이 갖다 주고도 국군포로를 돌려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정부였다. 그러면서 김정일에 충성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명령을 받아 일본인을 납치한 辛光洙(신광수)까지 北送(북송)시켜주었다. 일본 경찰은 신광수를 국제수배했다. 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양심에 대한 국제수배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 人格體(인격체)안에서 같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좌익이 그의 숨겨진 本色(본색)이었다”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였느냐에 의해 대충 결정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그리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촛불亂動(난동)과 같은 法治(법치)파괴, 6·15선언과 같은 헌법파괴까지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설명하곤 했다. 권력을 잡은 이후 이러한 그의 민주주의觀(관) 때문에 민주투사로서의 그의 역할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09년 8월18일에 他界(타계)한 김대중 前대통령,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한 章(장)이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장의 역사에서 그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독자들은 조갑제 대표의 추적보고 『續·金大中의 正體』에서 ‘40년에 걸친 김대중과 북한의 끈질긴 게임과 거래’, ‘누가 北核(북핵)개발에 돈을 대고 정보를 제공했는가’, ‘기회주의자도 민주주의자도 아니었던 김대중의 정체와 본색은 무엇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었던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머리글 | 국민과 法이 다시 파낸 태극기
1부
1차 北核(북핵)실험 직후 | 金大中(김대중)의 초조한 생존투쟁
-그는 왜 이렇게 초조한가
-人生 말년에 本色을 드러낸 이유는?
-40년에 걸친 金大中과 북한의 끈질긴 게임과 거래, 그 종착역은 어디인가?
2부
2차 北核실험 직후 | 한국판 로젠버그는 누구인가?
-누가 北核개발에 돈을 대고 정보를 제공하였는가?
3부

秘話 金大中과 함께 한 한국 現代史의 뒤안길
-그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민주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이었던가?

4부
國葬파문 : 다시 파낸 태극기
-김대중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였냐에 의하여 대충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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