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
저   자 : 구로다 가쓰히로         
펴낸곳 : 조갑제닷컴
판   형 : 신국판
페이지수 : 436  쪽
출판일 : 2017년 12월 15일
판매가격 : 20,000
수   량 :
* 신청방법 -> 수량을 선택하신 후 '장바구니에 넣기' 를 하시면 됩니다.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이웃나라

한국생활 35년, 최장수 서울특파원으로 활약 중인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기자. ‘독도’ ‘위안부’ 등 한일관계를 둘러싼 역사·영토 사안에 대해 민감한 발언을 던져온 것으로 유명한 일본인이다.

최근 일본에서 ‘반한反韓’ ‘혐한嫌韓’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떨어지고 싶어도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재정립해야 하는가”를 짚어보기 위해 구로다 기자가 집필한 책(《隣国への足跡이웃나라에의 발자취》)의 한국어판 《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436쪽, 2만원, 조갑제닷컴)가 나왔다.

“35년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종내 신경 쓰였던 한국에서의 ‘일본의 발자취’―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일 역사―에 관해 ‘일본인으로서 납득이 가는 점’을 개인사적 관점을 섞어가며 파헤친” 구로다 기자의 ‘체험적 한일 관계사’다.

이 책에는 한국인이 동의할 수 없는 해석이나 사실이 있지만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인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파악하는 데는 의미가 있다.

한국인이 읽기 불편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망한 이우李鍝 전하,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조선조 최후의 왕세자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妃로 죽음을 맞은 이방자李方子 비, 일제시대 총독부의 경복궁 파괴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본인 등 한일 관계사의 뒤안길에서 있었던 사람 이야기가 많다.

“… 역사와 인간에 대한 필자의 따뜻한 생각이 흥미를 돋운다. 특히 북한정권, 조총련, 일본의 언론·다수 지식인들·정부가 합작한 약 10만 재일동포 북송北送에 대한 솔직한 비판이 이 책을 번역·출판하기로 결심한 한 이유이기도 하다. 구로다 가자와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 한국 현대사의 성취에 대한 호감이 그것이다. 원수 사이였던 두 나라의 다수多數가 이 두 가지 점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그래도 ‘날씨는 맑으나 파고는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갑제趙甲濟의 후기中)

책 제목인 ‘날씨는 맑으나 파고는 높다’는 러일전쟁 당시 거제도 앞바다에서 있었던 쓰시마 해전海戰 직전, 일본 연합함대가 타진한 역사적 문장에서 따왔다.●


| 책 속으로 |

이 책은 원래 일본 독자들을 위해 쓴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한일관계사를 다각적이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아주 자극적이고 참고가 될 만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방 후,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1965년) 후,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자 활동을 계속해온 외국인 기자이자 일본인 기자인 나의 ‘역사 인식’을 알 좋은 기회가 되리라. 비판을 포함하여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대하고자 한다. - p20, 한국어판 序文 中

‘헤이그 밀사사건’ 뒤 고종 퇴위 등 일본의 한국 몰아붙이기는 더 가혹해졌다. 그것이 2년 후에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불러일으켰다(1909년). 합병에 소극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라는 ‘방어막’이 사라짐으로써 일본은 이듬해인 1910년, 단숨에 한국합병으로 치달았다. 그렇다면 ‘헤이그 밀사사건’이라는 것은 고종을 위시한 한국 측의 계산과는 거꾸로 가버려, 결과적으로 한일합병을 앞당겼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 p41, 1장 망국(亡國)의 미스터리 中

영토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본 국회의원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씨가 독도박물관 등이 있는 울릉도를 현지 시찰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그런데 한국정부에 의해 김포공항에서 입국 거부되어 그냥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야했던 것이다. 독도를 두고는 어떤 종류의 종교화한 열병적인 반일, 애국 여론을 염려한 한국정부의 과잉 반응이었다. 일본 여당 국회의원의 입국조차 거부하는 것인지라 정상이 아니다. 보통이라면 “부디 현지로 달려가서 우리의 주장을 알아주세요”하고 환영하는 것이 상식이리라. 그 같은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이 한국에서의 독도 문제이다. …이것은 ‘반일 무죄’ ‘애국 무죄’라는 말과도 통한다. “반일과 애국을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건 용납된다”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대일 편협(偏狹) 혹은 대일 장벽(障壁)이다. 거기서는 국제적인 상식이나 법치주의는 통용되지 않는다. - p83, 3장 멀리서 독도를 바라보다 中

이우 전하가 히로시마에서 원폭에 조우하여 타계했을 때, 수행 부관이었던 요시나리 히로시(吉成弘) 중령이 책임감으로 자결했다. …요시나리 중령은 원폭 투하 직후로부터 지옥도(地獄圖)나 마찬가지인 히로시마 시내에서 행방불명된 전하를 찾아 돌아다녔다. 저녁 무렵, 찾지 못한 채 녹초가 되어 사령부로 돌아오자 수용되어 있던 니노시마로부터 연락이 와 달려갔다. 하지만 전하는 응급처치의 보람도 없이 7일 새벽에 이 세상을 떠났다. 요시나리 중령은 7일 밤 쓰야를 마치고, 이튿날인 8일 아침 출관(出棺)한 뒤 전하가 숨을 거둔 육군검역소 임시 구호소의 민가(民家)에서 자결했다. 오른손의 군도(軍刀)로 배를 찌르고, 왼손의 권총으로 머리를 쏜 상태였다. - p135~136, 5장 일본은 한국에 예(禮)를 다했는가? 中

장례 행렬이 돈화문을 나선 직후였다. 연도의 인파 속에서 갑자기 한 명의 노파가 나타나, 아스팔트 도로 위에 무릎을 꿇고 대여를 향해 이마를 바닥에 대고 절을 하는 ‘예(禮)’를 되풀이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우리 왕비’에게 이별의 예를 바쳤던 것이다. 이 같은 풍경에는 나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장례 행렬을 바라보는 내 눈이 한동안 흐릿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해석하자면, 결과적으로는 500년이나 이어진 왕조를 붕괴시킨 한스러운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 왕비를 ‘우리 왕비’로서 예를 다하여 따뜻하게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일본인으로서의 소박한 감격과 감상(感傷)이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방자 비에게는 “한일 간의 가혹한 역사를 짊어지시고, 일본인으로서 이토록 애를 쓰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고 인사하고 싶었다. 또 연도의 한국인들에게는 “망국의 한을 넘어 이국(異國)의 왕비를 이토록 따뜻하게 전송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 p158~159, 6장 이조잔영(李朝殘影) 中

저명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1950년대 이후 일본 독서 세계에서는 여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파 추리소설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작품은 지금도 계속 읽히고 있으며, 팬이 숱하다. …한편으로는 사회파 추리작가답게 전후의 일본 사회를 뒤흔든 여러 사회적, 정치적 사건을 소재로, 그 ‘수수께끼 풀기’에 매달린 작품도 적지 않다. 대표작이 논픽션 작품집 <일본의 검은 안개>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모략 6·25전쟁’이다. 6·25전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모략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 마쓰모토 세이초의 ‘수수께끼 풀기’였다. …그 배경에는 분명히 북한 환상이 있다. ‘모략 6·25전쟁’에서는 전후의 한반도 정세가 시종 북한 칭찬 일변도이며, 한국과 미국은 ‘악’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자료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의 이데올로기 문제다. 왜냐하면 마쓰모토 세이초는 전후의 국제정세에 관해 ‘모략’은 오로지 미국과 한국(즉 제국주의) 측에만 있고, 북한이나 소련(공산 세력) 측에는 있을 리 없다는 식으로 써내려간다. …‘암흑의 남한과 발전하는 북한’, 이것은 전후 일본 사회(특히 그 지식 세계)를 오래토록 지배한 북한 환상의 전형이다. - p315~318, 11장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中

…자유주의 세계로부터 공산권으로의 대량 탈출이라는 ‘북한 귀환’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으로의 대량 귀환이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일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당시 우리 기자 동료 중에서는 조총련계 한국인의 조국 귀환을 ‘아시아판 영광의 탈출’이라고 영웅적으로 미화하는 목소리조차 나왔다. …일단 중단되었던 귀환운동이 재개될 무렵에는, 이미 귀환자가 실제로는 ‘낙원’이 아니라 ‘지옥’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는 정보가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하지만 그 ‘진상’은 우리 일본 미디어에서는 일시적인 악의의 역(逆) 선전정보로 취급하여 다루지 않았다. 이런 ‘태만’이 1971년의 귀환 재개에 있어서도 ‘인도의 배’가 되어 비극을 되풀이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사회주의 환상에서 오는 ‘북한 미화(美化)’라는 동전의 양면으로서, 한국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부정적인 시각도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들 젊은 기자들이랄까, 그 한 사람이었던 나를 사로잡았던 ‘조선’과 얽힌 심정의 배경에는 과거 역사로서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와 통치에 대한 속죄의식과, 소련의 대두와 공산 중국의 탄생이라는 전후 정치상황을 배경으로, 사회주의 환상에서 오는 혁명적 로맨티시즘과 같은 것이 있었으리라 여긴다. …이렇게 해서 ‘밝은 북, 어두운 남’이라는 도식(圖式)이 일본 미디어를 지배한다. 그런 도식이 무너지는 것은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이 확인된 1970년대 후반이며, 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1988년의 서울올림픽 개최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 p337~340, 12장 ‘在日 한국인 조국 귀환’의 비극 中




한국어판 序文 …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 16

01_망국(亡國)의 미스터리_수수께끼의 황제 위임장
      ‘잡상인’도 정보원(情報源)이다 ▶▶▶ 22
      굴러 들어온 황제의 위임장 ▶▶▶ 25
      청일전쟁은 ‘조선전쟁’이었다 ▶▶▶ 29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을 규탄 ▶▶▶ 32
      황제 위임장의 진위를 밝힌다 ▶▶▶ 35
      밀사사건에 격노한 이토 히로부미 ▶▶▶ 40

02_돌아온 러시아 함대_러일전쟁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동서냉전은 서울올림픽으로 막이 내렸다 ▶▶▶ 44
      당당하게 100주년을 위령(慰靈)하는 러시아 ▶▶▶ 48
      개전 전야(前夜) 러시아 함장은 일본 요정에 있었다 ▶▶▶ 51
      전후 첫 일본함대는 부산으로 ▶▶▶ 55
      깨트려져 창고에서 잠자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비석 ▶▶▶ 59
      성역(聖域)이 <언덕 위의 구름> 현장으로 ▶▶▶ 62

03_멀리서 독도를 바라보다_누가 저 섬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나?
      발틱함대는 독도 앞바다에서 괴멸 ▶▶▶ 66
      갈매기는 ‘우르릉 우르릉’ 하고 운다 ▶▶▶ 70
      독도 영유와 한국합병은 관계가 없다 ▶▶▶ 73
      ‘우산(于山)’은 울릉도를 가리킨다 ▶▶▶ 76
      ‘쓰시마도 한국 땅’이라는 대일(對日) 보복 심리 ▶▶▶ 80
      독도수비대 대일 전과(戰果)의 허실 ▶▶▶ 83
      독도의 강치는 왜 절멸했는가? ▶▶▶ 86

04_회화나무는 남았다_민비(閔妃) 암살사건의 통한(痛恨)
      고도(古都) 서울의 외교가(外交街) 정동(貞洞) ▶▶▶ 90
      한국의 ‘로쿠메이칸(鹿鳴館)’에서 암약한 미스 손탁 ▶▶▶ 93
      ‘북의 위협’의 뿌리와 러시아에 대한 불안 ▶▶▶ 96
      일본 외교의 미숙함을 드러낸 왕비 참살(慘殺) ▶▶▶ 99
      경복궁 한쪽 모서리에서 사라진 참극의 그림 ▶▶▶ 103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비난했다 ▶▶▶ 106
      ‘일본영사관의 폭주(暴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109
      조슈 군벌(長州軍閥)에 의한 한국 지배의 인과(因果) ▶▶▶ 113

05_일본은 한국에 예(禮)를 다했는가?_히로시마와 한국의 기연(奇緣)
      민비 암살사건에 가담한 한국인 ▶▶▶ 118
      망명자에 대한 집요한 보복 ▶▶▶ 123
      조선 왕족도 히로시마에서 폭사(爆死)했다 ▶▶▶ 127
      일본 패전의 날에 경성에서 거행된 장의(葬儀) ▶▶▶ 130
      일본의 명예를 지킨 일본인 무관(武官)의 자결 ▶▶▶ 134
      파헤쳐진 재한(在韓) 피폭자 문제 ▶▶▶ 138
      히로시마의 밤에 남은 불가사의한 ‘한국’ ▶▶▶ 144

06_이조잔영(李朝殘影)_한국의 흙이 된 일본 황녀(皇女)
      쇼와(昭和) 천황과 함께 서거한 이방자 비(妃) ▶▶▶ 148
      한일 합동 장례식에 황족도 참석 ▶▶▶ 153
      ‘우리의 왕비’가 되어 ▶▶▶ 157
      낙선재에는 역사의 흔적이 없다 ▶▶▶ 161
      “앞으로는 내가 싸운다” ▶▶▶ 163
      일본 여성의 헌신에 관해 ▶▶▶ 166
      이방자 비를 뒷바라지한 한국 여성 ▶▶▶ 169

07_옛 총독부 청사는 왜 해체되었는가?_‘아리랑’과 ‘감격시대’가 말해주는 것
      고궁 파괴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본인 ▶▶▶ 174
      ‘아리랑’에 새겨진 한일사(韓日史) ▶▶▶ 180
      고속철도 ‘아리랑’은 환상이었다! ▶▶▶ 184
      영화 ‘아리랑’의 필름은 어디에 있는가? ▶▶▶ 188
      역사적인 건조물이 정부에 의해 파괴되다 ▶▶▶ 192
      한국인에게도 ‘희망의 청춘’이 있었다 ▶▶▶ 197
      일본 대중가요 ‘엔카(演歌)’의 원류는 한국인가? ▶▶▶ 200

08_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한국인_한운사(韓雲史)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
      조선학도 특별 지원병은 과감하게 호소했다 ▶▶▶ 204
      “안녕, 일본이여! 나는 용서한다” ▶▶▶ 209
      그 시절, 좋은 일본인도 있었다 ▶▶▶ 213
      베스트셀러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속죄의식 ▶▶▶ 217
      ‘몰랐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 ▶▶▶ 222
      창씨개명에 관한 어떤 오해 ▶▶▶ 226
      소년들은 전투기 ‘하야부사’에 환호했다 ▶▶▶ 229

09_폭발하는 민족감정_고난의 귀환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와 명저 <조선 종전의 기록> ▶▶▶ 234
      ‘종전(終戰)’의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239
      “혁명이다, 혁명이다!” ▶▶▶ 243
      표변하는 한국인들 ▶▶▶ 247
      느닷없이 북에서 밀고 내려온 전쟁 ▶▶▶ 251
      저주 받은 민족, 그 사멸(死滅)의 지옥도(地獄圖) ▶▶▶ 255
      반드시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 ▶▶▶ 259

10_그 아침의 경복궁은 은세계(銀世界)였다_잔류를 지시 받은 일본인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의 회상 ▶▶▶ 264
      박물관 사수(死守), 그리고 성조기 ▶▶▶ 270
      신생 국립박물관은 눈이 쌓인 가운데 오픈했다 ▶▶▶ 275
      한국에서 보내져온 따뜻한 조의(弔意) ▶▶▶ 278
      일본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일 혼혈아 ▶▶▶ 282
      북한군과 한국군을 경험한 잔류 일본인 ▶▶▶ 286

11_6·25전쟁이 시작되었다_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가 저지른 죄
      패전 후의 일본에서도 있었던 보복 피해 ▶▶▶ 294
      6·25전쟁의 ‘쇠 금(金)’ ‘실 사(絲)’ 붐 ▶▶▶ 299
      전쟁 특수로 활약한 ‘소년 아파치’ ▶▶▶ 304
      한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 307
      일본은 제2의 전쟁터가 되었다 ▶▶▶ 311
      저명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북한 환상 ▶▶▶ 315
      김일성을 옹호한 소설 <북의 시인> ▶▶▶ 321

12_‘在日 한국인 조국 귀환’의 비극_북한 환상이 안겨준 것
      소년 시절 추억의 재일 한국인 ▶▶▶ 328
      ‘지상의 낙원’은 지옥이었다 ▶▶▶ 333
      사회주의 환상과 속죄의식의 함정 ▶▶▶ 337
      누가 그들을 ‘지옥’으로 보냈는가? ▶▶▶ 341
      영화 <큐보라가 있는 거리>의 시대적 한계 ▶▶▶ 346
      환상으로부터의 탈출 ▶▶▶ 351

13_흉악 살인범이 민족적 영웅이 되었다_극장형(劇場型) 범죄, 김희로(金嬉老) 사건의 전말
      단순 살인사건인가, 한일 민족문제인가? ▶▶▶ 354
      항일 애국 테러리스트의 ‘귀국’ ▶▶▶ 359
      ‘행복한 생활’에서 ‘방랑 생활’로 ▶▶▶ 362
      라이플총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 ▶▶▶ 365
      “그 자는 예사 인간이 아니다!” ▶▶▶ 370
      서재나 다름없는 독방에서 초밥까지 먹었다 ▶▶▶ 373
      옥중 결혼 아내와의 기연(奇緣) ▶▶▶ 376
      타락한 영웅의 일본에 대한 망향 ▶▶▶ 379

14_김현희(金賢姬)는 왜 ‘마유미’가 되었나?_한국과 일본의 고생은 지정학적인 숙명
      김현희의 일본어는 완벽했다 ▶▶▶ 384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후퇴했다 ▶▶▶ 390
      모략 ‘김현희 가짜설’에 대한 반격 ▶▶▶ 395
      KAL기 사건으로 발각된 일본인 납치사건 ▶▶▶ 399
      국민의 안전보다 국가의 안전? ▶▶▶ 402
      김대중 납치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 406

15_김일성을 이긴 박정희_일본이 한반도에 남긴 유산
      한국과 일본은 왜 오래 국교 회복을 하지 못했나? ▶▶▶ 412
      “좋은 일도 했다”는 것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 417
      국교정상화에 반대한 ‘신(新) 한국인’들 ▶▶▶ 421
      한국에 감사하자? ▶▶▶ 425
      항일 영웅 전설이 북의 권력을 지탱했다 ▶▶▶ 428
      ‘친일’과 ‘반일’이 낳은 역설 ▶▶▶ 430

출판자의 後記 …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 434



| 저자·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1941년 일본 오사카(大阪) 출생. <산케이신문(産經新聞)> 서울 주재 객원 논설위원. 1964년 교토대학(京都大學) 경제학부 졸업 후 <교도통신(共同通信)> 입사. 1978년 연세대학 어학 유학 후 <교도통신> 서울지국장. 1989년~2012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겸 논설위원.
1992년 본·우에다(上田) 기념 국제기자상, 2005년 기쿠치 칸(菊池寬)상 및 일본기자클럽상 수상.
저서에 <한국 반일 감정의 정체><한국인 연구>(角川 one 테마21), <한국인의 역사관>(文春新書), <한국인의 발상>(德間書店), <한국은 어디로?>(海龍社)외 다수. 한국에서는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한국을 먹는다><맛있는 수다> 등.
일본 시사잡지 칼럼 집필과 텔레비전 출연 등으로 활약하고 있음. 한국생활 35년. SJC(서울일본인회) 고문.


| 역자·조양욱曺良旭|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교도통신> 기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국민일보 도쿄(東京)특파원과 편집국 문화부장 및 일본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일본 라디오단파방송 주최 제8회 아시아상, (財)일한문화교류기금 주최 제2회 문화교류기금상 수상.
<일본상식문답>(기파랑),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마음산책), <일본 지식 채널>(위즈덤하우스) 등의 저서와 <조선왕실의궤의 비밀>(기파랑), <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다락원) 등의 번역서가 있다.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