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저를 낳고 도합 다섯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셨다. 어머니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어머니와 동시에 북한 동포를 생각할 때도 그렇다.
<나를 울게 하소서!>
운명을 한탄하네
잃어버린 자유를
이 고통의 사슬 끊어주기를 -
*가사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노래이다.

울 어머니 서경순은 소년단 때부터 가수였다. 6월6일은 북한에서 소년단 절이라 한다. 간략하여 6.6절이라고 한다. 소년단은 소학교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이다. 남한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기간이다.

어머니의 소년단 때는 6·25전쟁 기간이다. 철없는 제가 낭만적인 전쟁 영화를 보고 전쟁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신다. 전장의 한 가운데인 황해도 서흥군이 고향이시다. 특히 미군 비행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하셨다. 서흥읍을 신막이라고 했는데 일제시대부터 철도 기관구가 있어 폭격이 유난히도 심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중국인민지원군>이 장기간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위문 공연을 자주 나갔다고 한다. 이쁘고 노래를 잘해 소년단 가수로 뽑혀 예술 활동한 것이다. 모택동 찬양 노래인 <동방홍>을 정말 멋드러지게 부르셨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의 여동생도 노래를 잘해 항상 공연다녔다.

어머니는 소학교생이지만 어른을 업고 뛸 만큼 신체도 좋으셨다 한다. 한번은 공연기간 숙소에서 자는데 군인 한 명이 덮쳐 안는다. 하지만 얼마나 힘이 센지 그 군인을 밀쳐 내쫓았다고 한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엄격한 군대가 중국 인민 지원군이다. 특히 여성 겁탈은 용서 없이 총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난리 피우며 고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려 온 군인이란 동정심에서였다 한다. 살아난 군인은 따로 만나 무릎 꿇고 감사해 하였다고 한다.

북한에 계신 어머니를 자꾸 생각나게 자극받은 일도 있다. 15년 전 통일 운동 행사장에 함께 한 탈북자 차영주 가수이다. kbs 가요무대에 나갈 만큼 유명했다. 신체가 어머니 같이 좋았고 가수였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도 이런 자유 속에 계셨더라면 저렇게 유명해졌겠는데 하면서-.

또 김정애 탈북 작가의 일대기인 <북극성>을 보면서도 그랬다. 김정애 작가는 꿈 많은 19살에 강제로 시집살이하는 통에 좌절 인생. 무지막지한 돌격대 간부가 자기와 결혼 안 한다고 집에 불을 지른다. 살인 날 것 같아서 이에 못 이겨 아름다운 꿈을 접어야 했던 운명이다. 하지만 탈북하여 자유의 땅에 와서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었다.

19살에 시집간 김정애 작가처럼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우리 아버지 때문이다. 두 번이나 장가갔었고 어머니보다 11살이나 많은 아버지이다. 어머니 부모님이 절대 시집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딸이 뭐가 모자라서 장가갔던 남자에게 보내냐는 것이다. 수없이 통사정해도 안되자 성냥을 들고 이놈의 집 불질러 버린다고 해 허락하였다고 한다.

군(郡) 간부였던 아버지는 고을에서 제일 이쁜 여자라며 미치셨다. 남한 출신인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좇아 월북하였다. 그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죽음의 고비들이었다. 이 고생 끝에 이왕이면 <남남북녀>라고 북쪽 여자를 죽어도 얻는다 했다 한다. 이에 꼼짝 없이 걸려든 북쪽 여자가 어머니이다.

시집과 동시에 가수라는 꿈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19살에 저를 낳고 도합 다섯 자녀를 키우시느라 인생 종 치신 것이다. 배고픈 공산사회 특유함 속에 자녀들을 배부르게 하시느라 모성애를 총동원하셔 우리 다섯을 건강하게 키우셨다.

아버지는 은퇴를 앞두고 자살하셔 단명하셨다. 평등을 굳게 믿었던 공산 북한사회가 아님에 이만저만 낙심하신 것이 아니었다. <정치(공산주의)는 최대의 협잡이야!>가 인생 남기신 유언이다.

그럼에도 아마 여자 문제에서는 한 없으신 인생이라 본다. 남과 북의 이쁜 여자는 다 건드려 보셨기 때문이다. 아들이지만서도 어머니 편에 들어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한다. 두 번 장가, 어머니까지 세 번 장가드신 못된 아버지시여! 어머니께 자유 좀 주시지 이게 뭡네까? 이렇게 욕하고 보니 부메랑이다. 나 역시 아버지와 똑같은 행보로서 누워서 침 뱉고 있다.

어머니가 가장 그립다. 남자 복이 정말 없는 여자이시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놈까지라는 죄 의식 속에 산다. 통일이 되어 꼭 만나 뵙는 것이 소원이다. 사실 연세도 저와 19살 차이이기에 그리 늙은 나이도 아니시다.

그동안 각 방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려 애를 썼다. 산간오지로 추방되어 가셨다고 해 처음에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당시는 대량 아사 직전으로 도시에 있으면 꼼짝 못하고 아사되거나 동사되기 십상이었다. 하느님이 가긍하게 여기셔서 이를 대비하여 사전에 산골에 보내신 줄로 믿는다.

농촌 출신인 어머니는 산골에 가시면 잘 사신다. 워낙 부지런하셔 화전식으로 농사하고 열매나 나물 채취, 화목을 하셔 얼마든지 생존하실 수 있다. 또 남자인 아버지도 당하지 못할 만큼 튼튼하셔 잘 이겨내실 것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워낙 음식을 잘 하셔 식모로 계신다고 하니 더욱 유리하다. 식량이 귀한 북한에서 식모는 여기 교수 박사보다 나은 직업이다. 아무튼 하느님! 꼭 만나게 해주옵서소!

어머니 사진이 없다. 하지만 꼭 닮은 이들이 있어 확보하였다. 박정희처럼 꼭 닮은 배우처럼, 조용필처럼 닮고 노래도 하는 가수처럼 어머니처럼 꼭 닮고 신체도 좋은 분의 사진을 확보하였다. 교회에서 만난 집사님이신데 기꺼이 사진을 저에게 주셨다. 만약 어머니 사진을 확보 못하면 이를 영정 사진으로 삼으려 할 만큼 신통히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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