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국가 원로'처럼 법원과 정치판에 대한 훈계와 비판까지 쏟아내. “법원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결정을 하고 있다. 국민들이 법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신뢰성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 국민이 재판을 불신하는 상황에서 재판의 독립만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이 나라의 '최상위(最上位) 심판관'이 된 것 같다. 윤석열 탄핵 결정 직후 4월 퇴임한 문 전 대행은 이제 '국가 원로'처럼 법원과 정치판에 대한 훈계와 비판까지 쏟아내고 있다.

문 전 대행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가 우리 손을 들어줬다"며 여야(與野)와 좌우 진영의 희비가 엇갈리는 촌극도 벌어지는 중이다.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헌정사의 불행인 '대통령 탄핵' 재판을 주재했던 전직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처신으로서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특히 그가 '이웃'인 법원의 내부 결정에 대해 "잘못됐느니 어떠니" 논평하는 게 옳은 걸까.

문 전 대행은 23일 한겨레신문 아시아미래포럼 행사 강연에서 “국민이 (사법부에 대해) 의심을 제기했는데 ‘재판의 독립’을 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신뢰’에는 ‘신뢰’로 답해야 한다. ‘독립’을 얘기하는 것은 맥락이 다르다. 의심을 해소할 책임은 법원에 있다”고 말했다. 이름만 거명 안 했지,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를 직격한 것이나 다름없다.

구체적으로 내란사건 재판장을 맡고 있는 지귀연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의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그게 어떻게 구속 취소가 되느냐. 여태까지 계속 (구속 기간을) 날짜로 계산했는데 왜 그 사건만 시간으로 계산하는가”라며 “누가 봐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당시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은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본지는 '계엄 탄핵 정국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했지만, 엄격하게 법적 구속 절차 과정을 따지면 그 취소 결정이 꼭 틀린 결정은 아니라고 봤다. 그런데 문 전 대행은 "그게 어떻게 구속 취소가 되느냐"고 문제 삼은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독단적인 법조인처럼 보인다.

그는 내란 재판부가 일반 형사사건을 함께 맡고 있는 점도 지적하며 “내란, 옛날 말로 역모다. 역모 재판을 무슨 일반 재판하고 같이 하느냐"며 “일주일에 몇 번씩 신속하게 재판해야 한다"고 했다.

일반인도 아닌 전직 헌재 소장대행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속도전'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주일에 몇 차례 재판하는 게 정상인가,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졸속 재판은 상관없다는 뜻인가. 재판은 '신속하게' 하면 좋지만 절차와 과정이 법에 어긋나지 않게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신뢰성 있는 조처를 해야 국민들이 법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며 "국민이 재판을 불신하는 상황에서 재판의 독립만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문했다.

문 전 대행은 자신의 윤석열 탄핵 재판은 '완벽'했다고 여기는 걸까. 당시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 전 대행을 포함해 헌법재판소가 얼마나 많은 불신과 의심, 비판을 받았다는 것을 벌써 잊었나.

물론 문 전 대행의 발언에는 경청할 대목은 있다. 가령 이재명 정권에 대해서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정치’에 실패해 ‘법률’을 꺼냈다. 그러므로 탄핵 뒤 들어선 새 정부가 제일 먼저 꺼내 들어야 할 것은 법률이 아닌 정치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법률가는 법적으로 처리하라”고 했다.

국민의힘을 ‘내란동조당’이라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 "일부 의원의 비위와 범죄가 드러나고 있어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가 비상계엄 해제 등에 참여했기에 정당 전체를 '내란동조당'으로 규정하는 건 지나치다고 본다"며 "헌재가 아니라 국민의 선택, 즉 선거에서 심판받을 사안"이라고 했다.

또 "지금 정치 현안의 상당수는 사실상 보수-진보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며 "정치가 이를 '진영 대결'로 몰고 가면 결국 극우와 극좌 등 양극단 세력만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앞서 지적한 대로 대통령을 탄핵한 헌재 재판관이 이 시점에 나서서 자신의 존재를 꼭 과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상식과 비상식 문제"라는 문 전 대행의 표현대로, 본인이 떠들어대는 게 '상식'인지, 참고 침묵하는 게 '상식'인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가 혹시 윤석열 탄핵 판결을 이뤄낸 자신이 우리나라를 구해냈다는 자부심에 부풀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처신은 과거 박근혜 탄핵 재판을 맡았다가 중간에 퇴임했던 박한철 헌재소장과 그 후임 이정미 권한대행의 '은둔과 침묵' 처신과 너무 비교가 된다.

내 기억으로는 이 두 사람은 당시 헌재 탄핵재판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나 강연에 나온 적이 거의 없고, 그때 재판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자신의 소회는 어떻다는 식으로 떠든 적도 없다. 특히 박한철 헌재소장은 박근혜 탄핵 결정이 있은 뒤 외부와 거의 접촉을 끊고 절에서 혼자서 수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