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40여개 국가를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들에 영향을 주는 국제 문학잡지인 <국경넘는 문학재단>이 5월호에 탈북 문인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국경넘는 문학재단>은 2012년 북한 정권이 추천한 북한작품들을 소개했다가 김氏 신격화로 일관된 황당한 수령주의문학을 세계 문인들과 독자들이 즐겨 보는 지면에 올렸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었다. 이후 <국경넘는 문학재단>은 탈북작가들이 존재하고, 또 그들의 문학이 북한문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장진성 작가 앞으로 협조를 요청해왔다.
재단은 처음에 북한 출신 망명작가들의 작품만을 엄선해서 보내줄 것을 제안해 왔다. 그러나 현재 탈북자 2만5000명 중 작가 출신 탈북자는 5명 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조선작가동맹 맹원은 일종의 명예직으로서 최소 한 권 이상의 저서출간, 또는 김정일 평가 작품이 있을 경우에만 맹원증이 수여된다. 현재 탈북자들 중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정맹원 2명, 후보맹원 1명 뿐이다.
김성민 시인(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정맹원, 그의 부친 김순석은 북한의 유명시인), 장진성 시인(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정맹원, 통일전선부 작가), 최진희 시인(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후보맹원, 평북도작가동맹 시인), 장해성(조선중앙방송위원회 라디오작가), 이진명(북한군 선전대 작가)이다. 장 시인은 이런 탈북문단현실을 설명하며 남한에 와서 책을 출간한 탈북작가들의 좋은 작품도 소개해줄 것을 제안했고, 재단은 이를 허락하여 7명의 작품을 소개했다.
<뉴포커스>한 달간의 공모를 통해 엄선된 탈북문학을 국제문학재단 앞으로 보냈고, 재단 차원에서 추가적인 원고 검토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13년 5월 호에 탈북작가 7인의 작품을 북한문학, 즉 Northkorea 문학으로 홈페이지와 지면에 소개했다. 현재 재단 홈페이지에서는 탈북문인들의 작품이 세계문인들과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다. 재단 측은 탈북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 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자평했다. 작품 원고료는 한 달 이내에 <국경넘는 문학재단>이 7인 작가들과의 이메일 교환방식을 통해 직접 전달하기로 했다.
이번에 <국경넘는 문학재단>이 번역출판한 탈북문예작품들 중 오늘 소개할 첫 문학은 시와 서정서사시이다. 김성민 시인의 서정시들과 장진성 시인의 서정 서사시이다.
김성민
'고백' 외 시 3편
고 백
(1)
떠나던 나를 위해, 아무도 울어준 이 없는 곳이 고향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내 나서 첫 걸음 익힌 곳, 못 다한 나의 사랑일지 모릅니다
(2)
미워하던 당신과 헤어지던 날
난 당신의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다면서
떠나던 그날에야 난, 당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쫓기듯 고향을 떠날 때
마음속의 흙 한 줌 고이 얹어드린 어머니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깊은 밤 뜨개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넘어져 우는 자식에겐
그리 임하시던 당신이건만
이웃집 창가의 화분 하나에도
그리 마음 쓰시던 어머니
생각하면 모른봉 기슭의 개나리가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세월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섭니다. 손수 지으신 모시적삼 차림으로
대동강 기슭에서 언제나 웃으십니다.
타향 아닌 타향에서
때 없이 불러보는 어머니
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속눈썹 가지런한 눈시울을 좁히시며
오늘도 미소하는 당신이 다가섭니다.
개명
나의 이름을 나도 헛갈리는 때가 있다.
삶이 뒤바뀔 때마다 달라져야만 했던 이름이다
개코같던 어린 날이 이름은 누군가의 이름과 비슷하다고 해서
빼앗겨버렸다. 별로 아깝지 않던 첫 번째 개명은
도망병 시절 추격자의 총구 앞에 와락 던져버렸다
아무것도 없던 타향 시절 이름만은 가지고 싶어
스스로 불렀던 이름도 있다. 그리고는 새 이름으로
새로운 삶과 악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이름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 ...
그래서 늘 하는 생각인데, 죽어서 남길 이름이
인제는 있어야 겠다.
나무
영문도 모르고 아픔에 꿈툴거리다가
문득, 부러진 나무
사라져버린 반생처럼
만질 수 없는 반분의 고통이
허공을 움켜잡고 아프게 운다
속살을 허옇게 드러내 놓고
때로 통곡하는 나무, 울며 찢기는
그 나무는 나였다. 너였다.
되돌릴 수 없는 분단의 슬픔 위에
오늘도 우는 우리의 운명이었다.
장진성
서정서사시
베개
물건을 판자도
물건을 산자도
남은 것은 목숨뿐인
평양의 시장
담배꽁초 주어모아
그 솜으로 채웠다는 이불이며
- 세수하고 가세요!
소리치며 붙들며
세숫물 파는 여인들
맹물 밖에 없는 궁핍
그 궁핍마저 팔려고
시장 밖까지 진열된
백성의 처절한 가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그 모든 이유들이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시커멓게 붙여진
살인의 포고문들이
식량을 낭비하는 자 총살!
유언비어 퍼뜨리는 자 총살!
국가재산 훔치는 자 총살!
외국문화 유포하는 자 총살!
철도질서 어기는 자 총살!
포고문의 용서란
동냥하고
통곡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는
그 뿐
이
어
서
마지막 숨들이 모인 시장이다
최후의 날들이 모인 시장이다
그래서 더 침침하고 비통하다 못해
공포까지 느껴지는 평양의 시장
진동하는 악취
기워 입은 옷들
동냥하는 때 낀 손들
고함소리 싸우는 소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 모든 것
- 저 애를 붙잡아줘요!
누군가의 부르짖음에
- 저 놈 잡아라
도둑 잡아라
여기저기 번지는
다급한 외침들
도둑 맞힌 전부가
가진 것의 전부인
텅 빈 삶들이어서
놓치지 않으리라
대신 잡아 주리라
온 시장이 들끊는데
앞에서 막아서면
왼쪽으로 피하고
그 쪽에서 기다리면
또 뒤로 돌아서며
도망치는 아이나
잡으려는 어른이나
갈팡질팡 하는 속에
마침내 군인의 억센 손이
녀석의 멱살을 틀어쥔다
하늘 향해 쳐드는
커다란 주먹도 보인다
우르르 몰려드는 시민들
저 주먹이 내려치는 곳에
뼈아픈 비명도 있으리
허나
보따리를 그러안은 채
초면이자 악연을 향해
당돌하게 소리치는 아이
- 훔친 게 아니예요!
그 말은
네가 해선 아니 될 말
물건 임자가 해야 될 말
뒤늦게 달려온 여인에게
서둘러 길 내주는 시민들
- 그거 이리 내놔
여인의 첫 마디에
틀림없는 짓!
또 거짓말까지!
사람들은 격분하고
군인은 다시 주먹을 드는데
- 때리지 말아요!
그 애는 내 아들이에요
그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여인에게 집중된다
분명 잡아달라 쫓아왔던
그 목소리의 임자
아니 그보다 더 놀랐던 것은
보따리를 헤치려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미친 듯 달려들 때
보따리를 부여잡은 모자(母子)가
서로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할 때
- 제발 이리 줘다오
보지 말고 이리 줘다오
-한번만 보게 해줘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도대체
저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보겠다는 아들이고
봐서는 안 된다는 엄마인가
시장의 사람들
밀치며 당기며
어깨들 너머로
보고 본 대로 말해주고
듣고 들은 대로 다 알게 된 물건은?
돈도 아니었다
시장에서 팔고 사는
흔한 것도 아니었다
고작 색 낡은 베개였으니
다시 봐도 누가 봐도
버려도 아깝지 않을 베개였으니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어서
아이는 훔쳐야만 했고
엄만 지금 저토록
돌려 달라 애원해야 하는가
그 베개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아이가 기어코 이빨로 물어뜯자
엄마는 기절할 듯 쓰러지며
제 가슴을 쥐어 때리는 것인가
그래봤자
길에서도 그냥 주울
베
개
인
것
을
땅바닥에 쏟아지며
흩어지는 것이란
모
래
뿐
인
것
을
하지만
오 하지만
아이는 맥없이 주저앉고
엄마는 얼굴을 감싸쥐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모자(母子)의 통곡이여
땅바닥의 모래들을 쏘아보며
아이의 울음소린 더 커지고
엄마의 어깨도 세차게 흔들리고
그렇게 알 수 없는 사연 속에서
모래를 휘 뿌리며 일어서는
아이의 처절한 부르짖음
-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이때까지 쌀 베개라 하구선
아니잖아
모래였잖아
쌀이라고 해서
굶지 않았는데!
쌀 베개라고 해서
학교에도 참고 갔었는데!
모여 섰던 가슴들을
때리는 그 절규!
쌀 베개 하나에
목숨을 베고 살아 온
아이의 슬픈 그 고발!
아이의 목소리가
이리도 슬프게 들리다니
무서운 저주처럼 들리다니
이것이 정녕
아직 세상을 못 다 산
저 꼬마의 목청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쌀 베개라 속여야만 했던
그 최후의 모성
그동안 기대왔던 믿음 앞에서
어린 삶이 무너져야만 하는
그 마지막 배고픔
매일매일 긴 밤을
아이는 그 베개를 그러안고 잤으리라
동트는 새벽까지
엄마는 그 뒷모습을 마주보며 울었으리라
아 그런데 이제는 어찌살꼬!
쌀 베게에 누워 살던 저 인생들에
내일의 아침이 모래로 하얗게 덮혀서!
(서사시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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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