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께

가까이 가기엔 먼 당신이기에 몇 줄 글로 안부(安否)를 묻습니다.

朴 의원은 70대의 연륜에도 어쩌면 그렇게 단정한 용모와 유창한 말솜씨로 세인(世人)의 이목을 사로잡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사의 슬픔을 잘 견뎌내고 대통령 비서실장, 문화체육부 장관, 대통령 공보수석, 그리고 3선 국회의원까지 승승장구한 朴 의원의 저력과 수완이야말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 비법이 정말 궁금합니다.

공자(孔子)께서는 “인간 나이 70이면 종심소욕(從心所慾) 불유구(不踰矩)”라 했습니다. 사람 나이 70이면 ‘뜻하는대로 행하여도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뜻이지요. 이런 경지는 공자같은 성현(聖賢)들이나 다다를 수 있는 깨달음이지 보통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것입니다.그런데 朴 의원은 이 경지에 다다른 듯한 착각이 듭니다. 청산유수같은 언변과 당당한 모습은 교만해 보이기도 하고 우쭐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朴 의원의 화려한 경력과 위세 이면엔 ‘玉의 티’ 같은 부끄러운 전과와 흠집도 여러 번 있었지요? 정치판 뒷골목의 지저분한 낙서도 많이 읽었겠지요. 사이버 공간에 떠도는 부정적 기사에 대해선 재론(再論)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몇 가지 궁금한 사항에 대해 朴 의원께 묻고자 합니다.

1. 노무현 정권이 파헤친 김대중 정권의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을 때 ‘단 1달러도 보낸 사실이 없다’(인터넷 <동아일보> 보도 인용)고 했는데 결국 朴 의원은 구속수감 됐습니다. 그때 수갑을 차고 교도소로 들어가면서 조지훈 선생의 시(詩) ‘낙화(落花)’의 첫구절인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를 읊으며 착잡한 심정을 술회한 바 있지요? 그때의 진짜 마음은 끝 구절인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가 아니었는지요?

落花는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 그리고 자연이 보여주는 소멸(消滅)의 섭리(攝理)를 노래한 것이라 朴 의원도 권력의 무상함과 ‘허업(虛業)의 정치’에 느낀 바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후 朴 의원은 오뚜기처럼 재기(再起), 호남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인간사(人間事)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을 실감하고 있겠지요?

2. 최근 총리 후보자 인사검증과 관련해 朴 의원이 보여준 언행이야말로 살벌함을 넘어 모골(毛骨)을 송연케 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TV조선 ‘판’에 출연한 朴 의원은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들을 비판했습니다. 특히 文 후보자에 대해선 ‘반드시 낙마시키겠다’고 호언장담에 가까운 말도 했습니다.

朴 의원이 김대중 정권의 실세로 있을 때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자질검증에서 낙마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 비추어보아 총리감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朴 의원은 능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 TV에서 본 朴 의원은 마치 낙마(落馬)를 즐기며 으스대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문창극 후보자가 언론계에 종사할 때 김대중·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지적했지요? 그렇다면 ‘建國 대통령’ 이승만과 ‘조국 근대화의 영도자’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도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사실에 대해서도 동의하는지요?

언론은 朴 의원을 ‘저격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朴 의원 역시 이에 거부감이 없는 듯한데 저격수라는 호칭은 ‘백봉신사상’을 받은 朴 의원에게는 불명예가 아니겠는지요. 신사는 총잡이가 되거나 저격 같은 몹쓸 짓을 절대로 안하는 법입니다. 저격수란 ‘은폐·엄폐된 장소에서 일반 보병보다 먼 거리의 목표물을 저격하는 병사’를 뜻합니다. 흔히 케네디를 저격한 ‘오스왈드’같은 자들을 말하지요. 朴 의원은 3選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중진 정치인이지 똘마니들이나 하는 저격수 수준의 정치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격수라는 건 일종의 평가절하이자 自己卑下(자기비하)적 표현입니다.

3. 朴 의원은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충청 출신을 총리로 발탁하려면 강창희 前 국회의장도 있지 않느냐’는 요지의 발언을 하시더군요. 이는 엄밀히 말하면 국회에 대한 모독이자 망언(妄言)입니다. 입법부의 수장(首長) 출신을 행정부의 2인자에 앉히라는 것은 아주 경솔한 언행입니다. 朴 의원의 발언은, 자기 편리한대로 내뱉는 가벼운 언행일뿐 아니라 국회의원 스스로가 국회의 권위(權威)를 훼손하는 것으로 ‘누워서 침뱉기’나 다름없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풍진 세상에 자중자애하시고 옥체건안(玉體建安)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