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패망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은 아닌지… 오늘 날 한국은 국민소득 3만 1000달러(2012년 현재 실질구매력 기준)과 인구 5000여 만의 선진 강국이 되어있다. 중국보다 네 배나 더 잘 살고 러시아보다도 2배나 더 잘사는 경제부국이고 첨단무기로 무장한 60만 大軍을 거느린 세계적인 군사강국이다. 100년 전 우리를 업신여기며 마음대로 유린하고 침탈하던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도 감히 침공할 수 없는 힘센 나라가 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100년 전 한국은 그렇지가 못하였다. 1910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韓日합방 조약에 의하여 한국인들이 ‘야만의 나라’라고 깔보던 일본에게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나라를 넘겨준 것이다.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본은 전통적 강대국인 중국이나 러시아도 제압할 만큼 신흥강국이 되어 있었고 한국은 나라의 힘이 너무나 쇠약하여 뇌사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라꼴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국왕을 비롯하여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국력을 키우고 국방을 튼튼히 하면서 국가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하려는 實存的(실존적)인 노력은 아예 없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을 하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정신은 개념조차 없었다.

朝廷(조정)의 高官大爵(고관대작)들은 거의 대부분 오로지 자신들의 보신과 영달에만 눈이 멀어있었다. 국민들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시원찮으면 국민이라도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백성들은 장구한 세월동안 보릿고개와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려온 탓인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더구나 국제정세는 약한 나라를 침탈하는 제국주의가 유행병처럼 猛威(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나 중국이 조선을 집어 삼켰을 것이다. 일본은 단지 제국주의 강풍에 떨어지는 落果(낙과)를 챙긴 것뿐이고 李完用(이완용) 일당은 賣國(매국)의 심부름꾼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者를 도와준다고 하였는데 임금이고 백성이고 ‘멘붕’ 상태에 있는데 하늘마저도 조선이 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행한 일을 당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보다는 남을 탓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잘못된 일에 대해서 타인에게 책임을 轉嫁(전가)하거나 변명을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면피적 합리화가 度(도)를 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하게 된다. 1910년 亡國(망국)에 대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특히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일본과 매국노 탓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역사적으로 보면 망국의 원인은 나라밖 보다는 나라 안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나라가 아무리 작아도, 침략적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어도, 자주적인 국가와 국민은 나라를 잘 지켜낸다.

신라는 극동의 小國이었지만 초강대국 唐(당)나라가 침탈하지 못하였다. 국왕과 백성이 일치단결하여 중국에 맞서서 당당하게 나라를 지키고 번영을 누리며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다. 스위스도 소국이지만 유럽의 어느 강대국도 침탈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히틀러의 독일도 강대국 프랑스까지 점령하면서도 스위스는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 全국토가 요새화 되어있고 국민의 국방의식이 투철한 스위스와의 전쟁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가져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한제국이 오늘 날의 한국처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국이었다면 결단코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한국을 감히 넘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도 日帝의 후견인이 되거나 수수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과 동맹을 맺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을사오적 같은 매국노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 멸망의 주된 책임은 제국주의 일본도 아니고 이완용같은 매국노도 아니고 당대의 한국인들에게 더 많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인 역사인식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