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능사는 아니다. 정치는 예측 가능한 안정성 바탕 위에서 행해져야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
정치의 계절, 20대 국회의원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기성 정치인은 물론이고 정치 신진들까지 금뱃지를 달아보려고 여의도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은 모처럼 자기 텃밭을 지키기 위하여 연말을 맞이하여 그간 뜸했던 지역구에 상주하며 지역구 행사 및 경조사에도 참석하는 등으로 지역 민심을 들으며 표심을 잡으려고 공사 다망해 보인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은 새민련 후보들에게, 새민련 텃밭인 호남은 새누리당 후보들에게는 도살장이나 다름 없는 적지(敵地)다. ​

지금까지 영남에 들어간 새민련 후보, 호남에 출사표를 던지고 들어간 새누리당 후보들 중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살아서 돌아온 경우가 거의 없었다. ​

수도권에서도 고려장 터로 불리는 곳이 몇 곳 있다. 가령 서울의 강남 부자 동네에 새민련 후보가, 반면 가난한 동네 구로공단 지역이나 신림동과 같이 변방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당을 막론하고 일부 의원들이 그 당의 유력 대선 주자나 유망 인사들에게 기존에 닦아온, 당선이 용이한 텃밭을 포기하고 사지(死地)에서 출마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나 당내 중진이 아닌 1~2선의 신진 의원들이 언론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자기 당의 대표나 거물급 인사들에게 돌팔매를 날리는 것이다.​

이런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신진 의원들은 삭풍이 부는 척박한 허허벌판의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다소 감성적인 논조로 양지/음지론을 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전만 하여도 하극상으로 차기 공천을 포기할 각오가 아닌 한 감히 발언할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신진 의원들의 주장이, 마치 자기 당을 구하기 위한 애당심의 발로이자 사심 없는 충정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말이다. 원래 지역구란 곳은, 자기가 나고 자랐거나 학교를 다녔거나 직장이든 뭐든 그 곳에 뿌리 내리고 오래 살아온 인연을 바탕으로 애착을 갖고 뽑아준 지역민들을 대표하고 그 지역의 발전과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정해준 터전이자 정치인의 뿌리인 것이다. ​

그런데 우리의 정치 풍토는, 언제부터인가 그 지역에 출마하려고 공을 들이고 텃밭을 닦아온 같은 당의 토박이 지망생의 열망을 꺾어버리고, 게다가 지역 유권자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생면 부지의 인사를, 당의 거물이라는 이유 하나로 전략 공천이란 명분하에 당의 지명에 따라서 낙하산을 투하하듯이 후보로 결정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미국처럼 정치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이다. 정치를 어린애들 땅 따먹기 놀이 정도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시하니, 유권자들 역시 입법부의 권능이나 국회의원들의 권위를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다.

​" 소는 누가 키우냐? "고 묻는 의원에게 묻고 싶다. ​

그간 키워온 내 소를 내치고 사지에 나가서 길들여지지 않은 남의 소를 키우라고 하면 그 소가 생면부지의 외지인에게 순종할까? 도살장으로 끌고 가려는 백정에게 자신들을 팔아먹는 배신을 때리지 않을까 하고 뿔로 받아버리지는 않을까? ​

중앙 무대에서 아무리 유명한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또 언젠가는 떠나갈 철새 후보자를 어느 유권자가 예쁘다고 찍어주겠나! 혹시라도 유망 정치인의 낙선을 바라거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악랄하고 정치가 비정하다.

정치인들의 이해 득실이나 농간으로 무연고 불모지로 거물 정치인을 내모는 것은,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농락하고 실추된 한국 정치판을 더욱 희화화(戱畵化)하는 것임을 새겨야 할 것이다. 변화가 능사는 아니다. 정치는 예측 가능한 안정성 바탕 위에서 행해져야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