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회의 힘이 대통령 힘보다 세다. '소수당 거부권법(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놓고는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다.
국가권력을 셋으로 쪼갠 三權分立(삼권분립)은 1787년 미국 연방헌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어 세계화되었고,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국회에 의한 헌법제정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개인의 자유가 중요시되면서 이를 위협할 수 있는 국가권력을 분산시키려는 제도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이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보완 또는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그 제도 자체로 기대하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서방국가들은 꾸준히 유지 발전시켜 정착되었으나 후진국들에게서는 정착시키기가 만만치 않다. 해서 여러 국가에서 아직도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해방 후 기존의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제를 도입하는 과정에 서양의 삼권분립 제도를 본땄으나 경험 없는 초기 정착이 쉬울 수가 없었다. 행정과 사법은 일제시대를 통해 수습의 기회가 있었으나 입법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제헌국회 구성을 보면 의석을 가진 정당이 무려 16개였다, 의석 비율로는 과반 이상의 정당은 없고 제1당이 27.5%, 제2당이 14.5%였으며, 단 1석의 의석을 얻은 정당이 무려 11개당이나 되었다. 놀랍게도 무소속이 42.5%였다. 한 마디로 중구난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언제 어디서 민주주의를 배웠던가? 삼권분립(민주공화국)의 종주국 미국에서 국제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아온 이승만이 가르친 것이라 해도 과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가 동양의 미개한 식민지가 아니라 서방세계가 나서서 지켜주고 같이 가야 할 민주주의 국가임을 인식하게 한 이가 바로 이승만 아니었던가. 그가 아니었으면 한반도가 적화되었을 것이란 추정은 정론이다. 우리가 한반도에 목화씨를 처음 들여 온 사람이 문익점이라고 배웠듯이 민주주의를 처음 도입하고 정착시킨 사람은 바로 이승만이라고 배워야 정상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만물이 바뀐다. 모양도 바뀌고 성질도 바뀐다. 전혀 바뀔 것 같지 않던 자연 현상도 바뀐다. 한반도에 예부터 이어져 오던 三寒四溫(삼한사온) 현상도 언젠가부터 모호해졌다. 우리의 삼권분립도 어느 때는 행정부(대통령) 주도로 움직이다가 지금은 국회의 힘이 대통령 힘보다 세다. 서로 힘 겨루는 듯 보이지만 대통령은 애타고 국회는 느긋하다. 애타는 쪽이 약세다. 싸움질 그만하자고 '소수당 거부권법(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놓고는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다. 다수결 원칙이 사라지니 국회의원들 기분 따라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예의도 없어지고 국가 수준은 점점 천박해져 가고 있다. 야당 지도자들이 대통령 보고 쌍스런 욕을 하고 대법원 판결에도 토를 달아 공격한다. 국민들도 마치 당연한 듯 이를 대수롭잖게 여기지만 國紀(국가기강)에 관한 문제다. 대신 대통령의 말에는 일일이 토를 단다. '진실한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평범한 말 한 마디에도 온갖 의미의 사족을 달아 너도나도 戱畫化(희화화)에 나선다. 그 말이 그렇게 우스개거리로 나돌아야 할 말인가? 그리고 행정부와 사법부의 2인자들인 총리나 법원행정처장 같은 元老를 앞에 세워 놓고 아직 볼이 뽀송뽀송한 젊은이가 국회의원이랍시고 호통 친다.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도 국회의원들 앞에서는 '도사犬 앞의 선비꼴'이다. 가히 국회의원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문득 '삼권분립이 꼭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같이 해봤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삼권분립을 꼭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국회가 대통령이나 사법부의 권능을 얕잡아 보고 자신들의 뜻대로 쥐고 흔들고자 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며 머리 속에는 議會亂政(의회난정)만 가득차 있으니 누군가는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쿠데타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월남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