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을 불신하기에 테러 정보 수집 임무를 국민안전처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군(軍)을 믿지 못하니 국방의 임무를 민방위대가 대신 담당해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화일보 1월26일자 칼럼)
-----------------------------------
지난 20일 파키스탄의 바차칸 대학에서 파키스탄 탈레반(TPP) 테러로 최소 21명의 학생과 교수가 사망했다. 파키스탄은 지난 한 해 동안만도 급진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소속원 2159명이 사살된 대표적 테러 진원지다. 14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도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사망자 수는 민간인 2명, 테러범 5명으로 비교적 적은 규모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테러가 더 충격을 주었다. 파키스탄은 테러가 ‘일상화’된 곳인 반면, 인도네시아는 202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2년 10월 발리 테러 이후 급진주의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 토벌로 테러 발생률이 낮아졌던 곳으로서, 이번 테러가 ‘IS 동진(東進)의 전초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IS 테러는 지금까지 중동과 유럽에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IS가 올해 안에 동남아지부를 건설하겠다며 아시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동남아에만 약 6000명의 IS 조직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IS의 아시아 진출과 더불어, 국내에서의 IS 테러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 군 이외에도, 20대 여성을 포함해 2명이 IS에 가담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차단됐으며, 다른 10명이 IS와 접촉을 시도하다가 적발됐다. 그리고 한국 체류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7명이 IS에 가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으며, 2010년 이후 5년간 테러단체 지지 활동 혐의로 51명의 외국인이 추방됐다. 현재 한국엔 이슬람권 57개국에서 온 15만5000명이 체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여야는 테러방지법 합의 도출에 실패하고 있다. 대(對)테러 컨트롤타워를 총리실 산하에 두는 데는 합의했으나, 테러 관련 정보 수집 권한 기관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당은 그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주자고 한 반면, 야당은 국민안전처에 주자고 하고 있다. 야당은 처음에는 인권을 명분으로 테러방지법 제정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130여 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IS 테러가 발생하자, 국민 여론에 밀려 테러방지법 제정 자체에는 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 정치사찰 경력이 있는 국정원에 힘을 실어 줄 수 없다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테러 관련 정보와 전문 인력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이 국정원이다. 또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선 국제 정보기관과의 긴밀한 정보 협력 그물망 구축이 절실하다. 지금 테러방지법 제정을 서두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테러방지법이 없는 관계로, 미국·일본 등 외국 정보기관이 한국과의 전면적 정보 교류를 꺼리고 있다. 그리고 외국 정보기관이 정보기관이 아닌 다른 한국 기관과 협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같은 정보기관 사이에서도 입수한 테러 정보 출처에 대한 보안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마당에, 비(非)정보기관을 신뢰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정원을 불신하기에 테러 정보 수집 임무를 국민안전처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군(軍)을 믿지 못하니 국방의 임무를 민방위대가 대신 담당해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테러방지법은 정치적 이해득실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입장에서 하루속히 제정돼야 한다. sjhwa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