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마각을 드러내는 이때, 우리 국민들이 쓸데없는 일로 일본과 등을 돌리려 함이 참으로 안타깝다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쇠락의 막바지를 헤매다가 1912년 중국 최초의 공화정부(중화민국)가 수립되면서 왕조의 막을 내린다.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청나라가 이렇게 망하기 직전인 1910년 조선은 일본에 합병되었다. 동양 패권을 청나라로부터 넘겨받은 일본이 만약 조선을 합병하지 않고 내버려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 스스로 독립국가로의 발판을 마련하고 오늘날 이렇게 세계 앞에 우뚝 설 수 있는 혁명이 가능했을까? 이 물음을 던져놓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일합병 외에 그 어떤 그림도 쉽사리 그려지질 않는다. 한일합병이 너무나 자연스런 역사의 순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흔히들 일본과의 합병으로 모든 것을 잃은 듯이 말하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잠시 잃은 것은 국호(國號)요 영원히 얻은 것은 깊은 잠에서 깬 것이다.'

중국 손아귀에 있을 때는 자치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줌으로 그냥 굴종만 하면 되었으나 일제하에서는 일본(인)과의 직접적인 경쟁이 생겼다. 관원이나 사원이 되려면 일본인과 겨뤄야 한다. 돈을 버는 방법도 달랐다. 평야에서 싼 값에 쌀을 거둬 배에 싣고 일본 본토로 가서 비싼 값에 파는 방법도 목격했다. 이전에 알고 있던 보부상 같은 조선 상단(商團)과는 차원이 다른 무역이다. 백화점을 짓고 광산을 개발했다. 조선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생존경쟁은 냉혹한 것이다. 그것이 차별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두뇌가 명석한 사람들은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 나중에 친일파로 몰리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는 친일(親日)로 먹고 사는 이들이 있었고, 지금은 반일(反日)로 먹고 사는 이들이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다 깨인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이란 것도 생겼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에 와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일본인들이 못 마땅한 것이다. 임금은 사이 좋게 지내라고 했지만 순종하기에는 환경도 달라져 있고 이미 머릿속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배움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자 문명의 나라 일본 본토로 유학 가는 이들이 줄을 섰다. 더러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떠난 이들도 있다. 국내에도 학교들이 세워졌다. 배움의 길이 넓어졌다. 그렇게 점차 세상을 보는 조선인들의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서 깨 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한일합병으로 개화가 빨라졌다고 양심 있는 학자들이 간혹 운을 떼면 어디서 나타난 사람들인지 벌떼처럼 달려들어 테러를 가한다. 몇몇 학자들은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고 빈 사례도 있다. 그러나 협박과 테러가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가령 촌놈이 서울로 가 공장에 취직했다고 하자. 노동력 착취에 심지어 매질까지 당해가며 기술을 익혔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나중에 번듯한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되어 있다면 배운 것은 배웠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맞기만 했다면 그가 어떻게 사장이 되어 있을까. 고생시킨 안 좋은 기억은 '그 때는 다 그랬지!'라며 담담하게 밀쳐내고, 오늘의 성공을 행운이라 여긴다면, 그리고 상대가 오히려 과거 힘들게 한 데 대해 미안해 한다면, 아, 이 얼마나 흐뭇한 상상인가! 일본인들이 그 정도의 소양은 갖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되는데….

한일합병은 지나간 역사다. 이제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는 그런 오욕의 역사를 맞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다. 여러 모로 힘을 키우고 비축해야 한다. 이제 조금 살 만해졌다고 거만스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큰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는 저만치 앞서 가고 있고, 그럼에도 예전에야 어찌했든 지금은 상당히 우호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 외에는 우리 비위 맞추려 무척 노력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우리가 일본과 등지고 살 수만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쯤은 생각해야지. 중국이 마각을 드러내는 이때, 우리 국민들이 쓸데없는 일로 일본과 등을 돌리려 함이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