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일반인과는 달리 특정 분야에서 신뢰와 권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따라서 대중 앞에서 전문지식을 언급할 때에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고, 자신의 발언이 대중을 오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양승오 박사와 차기환 변호사의 직업윤리의식

전문가는 일반인과는 달리 특정 분야에서 신뢰와 권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따라서 대중 앞에서 전문지식을 언급할 때에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고, 자신의 발언이 대중을 오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권위와 대중의 신뢰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그는 권위에 걸맞는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므로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해야 마땅하다.

조갑제 기자는 이미 양승오 박사의 직업윤리 의식 不在를 지적한 바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직업윤리 의식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양승오 박사가 천만 분의 일이란 확률을 언급한 것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과장된 수사법일 뿐이다'라는 식으로 그를 두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양승오 박사는 학자이고, 학자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은 정직성이다. 정직성을 포기한 학자의 발언은 그 목적이 아무리 거창하다 한들 정당화될 수 없다. 직업윤리를 아는 과학자라면 자신의 주장과 반대 주장에 직면했을 때 권위를 앞세워 추종자를 모으려 하기보다 과학적 증거를 모으려 할 것이다.

양승오 박사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필자는 그와 그 변호인 차기환 씨의 직업윤리 의식 수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양승오 씨는 SNS상에서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박주신 씨가 병역비리를 저지르지 않았을 가능성을 10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등으로 표현한 바 있고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음이 재판을 통해서 완전히 확인되었다. 전문가는 같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얘기할 때, 과학적 근거(학계에서 인정 받는 지식)가 빈약한 개인의 소견을 함부로 단정지어 언급해서는 안 된다. 의사의 직업윤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는 얘기했을 것이다.

"골수신호강도로 나이를 측정하는 것은 그 정확성이 낮아 실용성을 가질 정도로 일반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봤던 박주신씨의 MR영상은 원본 파일은 아니지만 30년 영상의학 경험에서 우러나온 제 직감으로는 도저히 20대 남성의 영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위의 진술을 살펴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사항도 빠짐없이 언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추종자를 모으려는 시도가 아니라면 학자의 언어는 최소한 이래야 한다.

그러나 양승오 박사는 위와 같이 솔직히 말하지 않고 문외한인 일반인들을 상대로 무려 1000만 분의 1이라는 확률을 내질러 버렸다. 골수신호강도 나이 측정이 정확성이 낮아 실용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를 단정할 때 MR영상 원본 파일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 등은 검사의 신문과정에서가 아니라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를 처음으로 언급할 때 나왔어야 할 말이다.

양승오 박사는 <노인영상학 34장>을 저술한 그리피스(Griffith) 박사에게 단 한 번의 문의도 없이 그것을 골수신호강도 나이 측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대중을 향해 제시했고 심지어는 법원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그리피스 박사는 박효종 박사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황색지방골수(골수신호강도)를 가리켜 "poor indicator of age"(나이를 판별하기에는 형편없는 지표)라고 언급함으로써 양승오의 주장을 뒤집었다. 즉 양승오의 주장은 자신이 제출한 근거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

의학지식이 빈약한 대중들은 전문가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숨기고 얘기하거나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없이 불확실한 것들을 단정적으로 얘기해도 사실 여부를 판단할 길이 없으므로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기 쉽다. 양승오 씨는 '골수신호강도'니 '극상돌기'니 하는 전문용어를 동원하여 그럴 듯한 도표를 제시하면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잘 믿는 일반 대중들의 속성을 잘 아는 것 같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양승오 재판 1심 판결문에서도 허위사실 공표가 일반인보다 전문가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양승오 박사의 직업윤리 의식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그의 변호인 차기환 씨가 그를 믿고 따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측근들을 상대할 때까지도 법리를 왜곡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재판결과에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이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감정인 6인이 작성한 박주신씨의 X-ray 사진 감정서가 양승오 측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

필자는 저러한 착각이 나타나는 이유가, 차기환 씨가 자신의 측근을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법리를 오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양승오가 유죄를 받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다른 형법상 죄와는 좀 다른 점이 있다. 형사소송에서 원칙적으로 검사가 擧證책임(입증책임)을 진다. 즉 양승오 측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검사의 책임이다. 도둑질, 강도나 살인같은 죄는 검사가 범행 증거를 찾아서 제시하면 되므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허위사실공표죄는 허위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이 걸려 있으므로 검사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혼동하기 쉽다. 양승오 측의 착각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서 나온다.

1. 양승오가 허위사실공표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검사가 진다.
2. 허위사실공표죄를 입증하려면 먼저 양승오가 제기한 의혹이 허위사실임을 보여야 한다.
3. 따라서 검사는 박주신이 병역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양승오 씨 등이 스스로 기소를 자청하여 박주신씨의 再재검을 유도하자는 계획은 위의 논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해서 양승오 측은 그들도 납득할 만큼 박주신씨의 병역비리 有無를 밝힐 책임을 검찰에게 轉嫁(전가)시킬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다.

그러나 위의 논리는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착각에 불과하다.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적용된 대법원 판례를 살펴 보면 이러한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허위사실공표죄에서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고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의 증명을 할 수 있다. 이때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단순히 소문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허위성에 관한 검사의 증명활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정도의 구체성은 갖추어야 하며, 이러한 소명자료의 제시가 없거나 제시된 소명자료의 신빙성이 탄핵된 때에는 허위사실 공표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대법원 2011.12.22, 선고, 2008도11847, 판결]

위의 발췌문을 쉽게 설명하면, 양승오 측은 박주신의 병역비리를 입증하는 소명자료를 제시할 책임이 있고 검사는 그 소명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의 증명을 할 수 있다. 즉 박주신의 병역비리 유무를 완벽히 입증해야 할 쪽은 검찰이 아니라 양승오 측이고, 검사는 양승오 박사가 제시한 근거가 부실하다는 점만 보이면 허위성 입증을 완수할 수 있다.

검찰측 3인의 감정결론이 왜 '동일인이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로 되어 있는지 이제 감이 오는가? 양승오 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검찰측 3인의 감정결론이 '동일인이다'라고 분명히 표현하지 않았으므로 검찰에게 무용지물인 반면, 양승오측 감정인들은 모두 '비동일인이다'라고 분명히 표현했으므로 양승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감정결론이라고 오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승오 측이 자신 있게 내세운 감정인 오연상 씨조차 이러한 기본적 법리도 모르고 검찰이 동일인 입증을 해야 한다는 착각 속에서 감정서를 작성했다.

판사 출신이었던 차기환 씨가 이런 기본적인 법리를 모를 수가 있을까? 필자는 이것이 참 궁금하다. 만일 이런 기본적인 법리도 몰랐다면 차기환 씨는 비판을 피할 수 없고, 알고도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양승오측 병역음모론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변호하고 있는 양승오 박사를 파멸로 몰아가는 장본인은 차기환 씨라고 볼 수밖에 없다. 後者의 경우라면 애초에 양승오 박사로 하여금 억지로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되게 만들어서 박주신씨의 再재검을 유도한다는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차기환 씨라는 결론이 나온다.

변호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변호를 받는 의뢰인들이 법리를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더 이상 무모한 행동으로 형량을 늘리는 일이 없도록 설득할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필자는 차기환 변호인의 직업윤리 의식도 양승오 박사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