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흥하게 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되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는 기여함이 클 수가 있을 듯하다.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가 '정무적 판단'으로 당선 확정권인 당 비례대표 순번 2번을 취했다. 이로서 그는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이 될 것으로 확실시 되었다. 국회의원 한 번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의도 상사병에 걸려 평생을 선거판에서 헤매고도 단 한번 입성을 못한 채 패가망신한 사람들 많다는데 참으로 재주 있는 사람이다.

그가 1940년생이라니 올해 만 76세이다. 설훈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판단력이 떨어지니 은퇴해서 쉴 나이다.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공천 받은 같은 당 중진의원의 주장이니 좀 어색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정무적 판단'은 결코 쉴 수가 없는 생명력이 있다. 대한민국을 흥하게 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되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는 기여함이 클 수가 있을 듯하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당을 포함, 새누리당과 국민의 당 모두 공천에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은 '독재적 공천'이란 말이 돌고, 국민의 당은 '패권공천'이란 말이 돌고 있다. 낙천한 자들은 당을 뛰쳐나가 다른 당으로 귀순하거나 무소속행을 택하기도 한다. 더민주당도 다를 것이 없는데 다만 '독재', '패권' 같은 비슷한 의미의 비판이 없다. 김 대표의 '정무적 판단'이란 일갈에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까지 조용해지는 듯하다. 말재주 참으로 절묘하다. 그가 이미 써 먹은 '경제민주화'란 한 마디가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면 '정무적 판단'이란 한 마디는 사람 마음을 조용하게 한다. 말 만으로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절묘하다는 것이다.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그가 오고 더민주당은 되는 집으로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다. 당을 떠났던 사람들도 더러는 후회하며 뒤돌아 보고, 얼토당토않게 새누리당에서 영광을 누리던 자가 낙천하자 귀순해 오고 있다. 언제 파탄났던 당이었던가 싶다. 가정이나 정당이나 국가나 집단의 흥망성쇠는 구성원들의 단합이 제일 중요하다. 홧김에 서방질이나 계집질 하는 집안은 볼장 다 본 것이고, 홧김에 뛰쳐나가 다른 정당으로 귀순하거나 무소속으로 헤매는 자들이 늘어나면 그 정당이 흥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더민주당은 지금 최악의 상황에서 기사회생하고 있는 셈이다.

더민주당이 잘되길 바란다. 독사처럼 웅크리고 앉아 온갖 못된 궁리나 하고 있던 자도 쳐내고, 하는 말이 시정잡배만도 못한 천박스런 자도 쳐냈다. 이를 '정무적 판단'이라 하는 데 대해 하등의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새누리당의 자중지란이 좌익에 대한 억제력을 잃어가는만큼 대신에 더민주당의 정상화로 좌익의 공격력이 완화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