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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 문화일보 논설위원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2일 위스콘신주 유세장에서 “핵 무장한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하더라도 그 지역 국가의 일일 뿐”이라며 한반도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트럼프의 발언은 6·25전쟁 직전의 ‘애치슨라인’을 연상시키는 위험한 언사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미국 극동방위선에서 한반도가 제외된 것으로 발표하자, 스탈린과 김일성이 이를 미국의 한반도 전쟁 불개입으로 오판하고 6·25 남침을 결심할 수 있었다. 이번 발언과 관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 등 한반도 관련 정책에 무지한 후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공화당 후보가 되더라도 본선 경쟁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 공화당의 많은 주요 인사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면 민주당에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의 주장이 미국 백인 중·하층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백인 중산층이 지지하는 전통적 외교노선은 고립주의 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태평양과 대서양 양대 해양으로 둘러싸여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적으며, 풍부한 물자와 광대한 영토 덕분에 자급자족 경제가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공화당이 호전적이고, 민주당이 평화적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강한데,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1980년대 네오콘이 공화당 중심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제1·2차 세계대전, 6·25전쟁, 월남전 등 거의 모든 주요 전쟁에 참전을 결심한 것은 민주당 정권이었으며, 6·25전쟁과 월남전에서의 휴전은 아이젠하워와 닉슨 공화당 정부에서 이뤄졌다.

그동안 반미주의자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를 비판해 왔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미국이 세계 무역로 보호와 같은 국제 공공재 수호와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위한 과도한 국방비 지출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반면,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은 이를 통해 무임승차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국력의 과잉팽창(overstretch)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로마제국이 망한 것도, 대영제국이 몰락한 것도 과도한 대외 팽창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만큼 과격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과도한 대외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마이클 만델바움의 ‘검소한 슈퍼파워론’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돼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론 자주국방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발생해도, 미국의 전략자산이 투입되는 것만 믿고 한가하게 지내는 모습은 미국 내에서 트럼프식 주장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또 한·미 동맹에서 한국이 일방적 수혜자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아덴만 소말리아 해적 소탕전 참여와 같이, 국제사회에서 한국군이 미군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존재’로 미국인들의 뇌리에 각인돼야 할 것이다.

sjhwang@munwh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