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밉다고 從北을 덜컥 찍는 무개념 국민들이 있는 한 언론은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한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13년 4월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심재권 의원이 김정은에게 정중한 禮(예)를 갖추지 않는다고 당시 류길재 장관을 나무라는 장면이다. 그는 류 장관을 향해 통일부 업무보고 자료를 들어 보이면서 북한 김정은의 이름 뒤에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이라는 공식 호칭이 없는 것을 지적하고는 "정중한 예를 갖추기 바란다"고 일침을 놓았다.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서울특별시 강동구(을) 주민들이 이 자를 이번 총선에서 또다시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다.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 사실, 그러나 이것이 民意다.

한편, 울산에서는 옛 통진당 출신 두 사람이 이번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통진당은 헌법재판소로부터 반국가 단체로 판결 받아 해산되었고, 이들은 통진당 이념을 버리고 전향했다는 고백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동구와 북구에서 각각 58.9%, 61.5%라는 절대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 두 사람의 당선을 두고 통진당 해산이 잘못되었다고까지 확대해석 할 필요는 없겠지만 국민들은 통진당을 적어도 그렇게 심각한 위험집단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民意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게서 정나미가 떨어진 듯하다. 동아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반성 없는 朴 대통령, 국민에 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20대 총선의 민의는 ‘박 대통령과 친박의 오만에 대한 심판이자 대통령부터 확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의 명령으로 요약된다"고 했다. 각 신문들이야말로 총선투표 전부터 反朴 행태를 보이다가 투표가 끝나고 여당의 참패가 확인된 순간부터 일제히 이와 비슷한 논조로 현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국민에게 지는 것인지 대통령 본인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나도 모르겠다. 방송카메라 앞에 서서 울먹이며 '오만하게 보여서 죄송합니다'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인지.

親朴, 非朴, 온갖 朴은 언론이 만든 분류표다. '친盧'는 분명 '노무현 정신'을 떠들고 다닌 그룹이 있지만 '박근혜 정신'을 입에 담은 사람은 없다. 박근혜는 현직 대통령이다. 굳이 따진다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현 정부의 고위 관료나 집권여당은 당연히 친박이어야 한다. 고위 관료의 경우 대통령과 정치적 이념이 맞지 않으면 임명을 사양해야 하는 것이고, 여당은 이 정권을 창출한 당사자로 소속 의원들은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협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異見이 있으면 당내에서 의견수렴을 하여 바깥으로는 딴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딴소리 하고 다니는 것을 소신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반박, 비박도 아니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소신을 가장한 해당행위자일 뿐이다. 죽은 사람의 '정신'을 팔고 다니는 무리들과 같은 선에서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정부가 잘못하는 게 있다면 내가 보건대 그 중 하나는 언론 방치다. 김대중 정권 때 문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은 보도협조가 잘 안 된다고 모 언론사를 찾아가 유리컵을 탁자에 내리친 일이 있었다. 물론 옳은 일은 아니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언론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거의 방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각 언론들이 내 놓고 있는 朴 대통령 관련 보도는 비판을 넘은 비방이나 선동 수준이다. 언론의 이러한 행태가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 民意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밉다고 從北을 덜컥 찍는 무개념 국민들이 있는 한 언론은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한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