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뤘다는데 왜 '지옥'인가? 나쁜 인간들 때문이다. 나쁜 인간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지옥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어느 시대고 어렵지 않은 시대가 있었을까? 그러나 정작 어려운 것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10년째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대 후반이라는 집계다. 3만 불 진입을 못 한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Hell(지옥) 조선'이라는 모순에 빠져 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 즉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군에 입대하여 경남 마산 인근 산 속에서 몇 주간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른 대원들과 함께 매일 아침 구보차 산 속 부를 나와 시내 변두리 자갈길을 호각소리에 맞춰 달렸다. 그 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산 수출자유지역으로 출근하는 女工들의 푸른 행렬을 보았다. 푸른색은 그 여공들의 근무복 색깔이었다. 모두들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개개인을 붙잡고 그 자리에까지 온 사연을 물어본다면 아마 눈물 흘리지 않을 이 없을 것이다.

나이는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가난한 탓에 학교를 못 가고 공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길지 않은 삶이지만 아마도 서럽고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서럽고 힘든 삶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란 게 있었다. 그 어디에도 '지옥'의 그림자는 보이질 않았다. 처지를 생각하면 눈물이야 나겠지만 희망의 불꽃이 더 강렬했을 것이다. 그래서 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왜 희망이 없어졌는가? 희망이 없으니 'Hell'이 된 것이다. 누가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갔는가?

촌놈이 직장 따라 처자식을 데리고 서울로 갔다. 지방의 14평 주공아파트 팔아 서울 가니 전셋집 얻기에도 부족했다. 그러나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아주 싼 분양가로 집을 장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주택자는 우선 청약의 자격이 주어져 거의 당첨보장이 되어 있었다. 좀 더 빨리 되느냐 늦어지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나는 전략이 부족해서인지 여러 번 청약에도 당첨에 실패하다가 무려 열여덟 번째 청약에서야 성공했다. 분당 등 신도시 조성으로 무더기 공급 때 운이 닿았던 것이다. '서울에서는 집만 있으면 산다'는 말을 드디어 실감하게 되었다. 모든 설움은 끝이었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이러한 희망이 없다. 서울에서 봉급쟁이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아파트를 장만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게 되었다. 그러니 '지옥'이 된 것이다. 아내가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 불쌍하다"고.

그럼 누가 왜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을 '지옥'이라는 모순으로 만들어 놨는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 더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왜 'Hell 조선'인가? 두 가지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풍요의 분배를 제대로 못한 것이요, 또 하나는 허황된 욕심 때문인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즉 하나는 물질적 분배 실패와 또 하나는 정신적 타락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길어질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물질적 분배 실패란 서민과 재벌식의 가르기가 아니다. 가령 회사 구조조정을 하면 급여를 줄이는 방법을 써 모두가 같이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데 사람을 쫓아내고 남은 사람들만 배 두드리고 있다. 쫓겨난 사람들은 나가서 어쩌란 말인가? 어려우면 같이 어려워야 하고 좋아지면 같이 좋아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반대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살펴보면 모든 분야의 공통된 현상이다. 구조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욕심들이 지나치다. 자기 주제를 모르는 듯하다. 우리가 일제에 부역하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팔려가던 선배 세대의 어려웠던 형편을 다 잊었다. 지금 수많은 동남아인들과 중국 조선족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들을 못하고 있다. 그들 일자리와 우리 일자리가 다른 것으로 여긴다. 너도나도 대학 나와 봉급은 적고 힘 드는 일은 거들떠 보질 않는 것이다. 부모 성함을 한자로 쓸 줄도 모르는 무식한 고학력자들이 허황된 욕심만 앞세우니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자, 그럼 어떻게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정치를 지랄같이 했기 때문이다. 반대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자들이 조국 근대화 선구자들의 노고를 깔보고, 국민들을 홀려 하늘의 별도 따다 줄 듯이 민주를 팔고 다닌 결과다. 누가 그러더라? "민주주의는 실패가 있어도 다 노출되어 교정이 가능함으로 발전한다"고? 그런데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이상하게도 잘못의 교정이 안 되는 게 문제다. 물론 거시적인 안목에서는 맞는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이 늘 백 년, 천 년 뒤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보수도 싫다, 진보도 싫다, 나는 중도다."는 말이 생겼다. 보수도 진보도 다 인간을 위한 가치관을 지닌다. 그럼 보수도 좋고 진보도 좋고 다 좋아야 하고, 그 중에 더 좋은 것을 가리려는 게 정상인데 왜 다 싫을까?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뤘다는데 왜 '지옥'인가? 나쁜 인간들 때문이다. 나쁜 인간들은 모든 것을 나쁘게 한다. 보수도 진보도, 민주도 그 무엇도 모든 것을 나쁘게 한다. 따라서 나쁜 인간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지옥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그런데 혹 우리 모두가 나쁜 인간化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옥(Hell)은 원래 나쁜 인간들이 모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