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꼬투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들이 어지럽게 깔려 있다.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묻지마 살인'을 당한 한 여성을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촛불 추모제가 열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는 추모글이 넘치고, 살해 현장 인근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는 추모글을 단 수많은 쪽지와 리본들이 달렸다고 한다. 그 중에 '살아남아 죄송해요'라는 쪽지글이 썩 맘에 들었는지 연합뉴스가 뉴스 제목으로 인용했다. '살아남아 죄송해요' 참으로 절절한 표현이다.

인터넷에서 본 현장 사진에는 누가 써 붙였는지 큼지막한 종이 한 장에 한 글자씩 '여,자,라,서, 살,해, 당,했,다'는 글을 길게 써 붙여 놨다.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를 뭔가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를 잊지 말라'는 문구의 리본을 단 조화를 누가 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나라를 지키다 죽은 국군 용사들에게는 별 관심도 없었으면서 사건으로 죽은 이에게는 이토록 요란스럽게 추모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가 보다.

사람이 죽었으니 가엾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마음이 아리다. 그런데 사고나 살인사건으로 죽은 이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붙이려는 세태가 염려스럽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국군 장병들이나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은 이에 대해서는 이렇듯 떠들썩하게 추모하는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전사한 천안함 용사들을 외면한 데 대해 불만을 가진 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화재진압에 나섰다가 불에 타 죽은 소방관을 위해서도 이런 추모행렬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사회 현상이 염려스럽다. 누가 그럴싸한 명분만 만들어 내면 추모행열이 광화문 앞으로 번질지 모른다. 아마도 꼬투리 잡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이는 있을 텐데 기발함이 좀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가해자가 정신병자라는 게 밝혀져 버린 탓일까? 아직 그런 걱정 단계는 아닌 듯하나 겉으로는 "살아남아 죄송해요"라며 한량없이 여린 태도를 보이면서 가슴속에서는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닌지 조마조마하다.

외출했다가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희생자에 대해 명목을 빈다. 결코 희생자를 모욕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런데 마치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모이는 사람들이 불안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꼬투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들이 어지럽게 깔려 있다. 비단 저 살인자뿐 아니라 저 추모행렬도 예외가 아니다. 손에는 촛불 들고 가슴 속에는 쇠파이프 든 사람들 말이다. 이를 염려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