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朝·中·東' 中에 '지금 우리 형편에 보편적 복지를 펴다가는 나라 망한다'는 단호한 사설을 낸 경우를 보지 못했다.
스위스에서 국민들의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韓貨로 환산 성인은 300만 원, 청소년은 78만 원을 매달 지급하는 기본소득 법안을 놓고 지난 5일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가 국민투표 요건인 10만 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하여 실시된 이 투표 결과 국민들의 76.9%라는 압도적인 반대로 법안이 부결됐다는 보도다. 한국인의 눈에는 이상한 투표에 이상한 결과로 보일 수도 있다.

투표에 앞서 스위스 정부와 의회가 이 법안 도입시의 위험성을 꾸준히 경고했었다고 한다. 의회가 시민단체와 영합하지 않고 계도(啓導)에 나섰다는 게 한국인의 눈에는 이채롭다. 그러나 정부와 의회가 아무리 위험성을 경고 해도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면 국민들이 이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스위스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불을 넘는다. 공돈 안 줘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공돈을 넉넉하게 주게 되면 오히려 일을 하기 싫어하는 풍조가 생길 수도 있고 다른 복지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법안 반대의 큰 이유라고 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역시 배가 불러야 품격도 생기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인가?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볼 게 아니라 이러한 법안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중요하다. 모든 산업에서 기계화·자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니 만약 실업자가 되더라도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대비책으로 나온 안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스위스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들먹이며 입방아나 찧고 있을 일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잘 살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걱정하는데, 우리는 현재도 실업자와 양극화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대비는 남의 일처럼 여기고들 있다, 말만 '개혁, 개혁' 하며 떠들고 있지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일자리 걱정이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기기도 했지만 인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970년 우리나라 총인구는 3100만 명이 채 못되었다. 그나마 저학력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2010년 인구는 약 48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상대적 고학력자들이다. 필요 일자리가 인구수만큼 늘어나지 못한 데도 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인구가 정체 내지는 감소한다고 하지만 일자리 역시 기계화·자동화 되면서 인구 감소보다 더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고임금 일자리부터 대체에 나서고 있다. 실업자 문제와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화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우리도 당연히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우리는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를 두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는 앞으로도 주요 정치쟁점으로 남아 있다. 다음 대선에서 다시 불거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실 이는 쟁점이 될 사안이 아니다. 우리 처지를 생각하면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야당에서 표몰이 선거전략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으니 양심적인 사람들 눈에는 마치 아귀(餓鬼)떼처럼 보인다.

이번 스위스의 투표 결과를 놓고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스위스 국민의 높은 경제 지력(知力)이 부럽다.'고 했다. 다른 대부분 언론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웃기는 얘기다. 스위스에서는 시민단체에서 이 법을 추진하자 정부는 물론 국회까지도 위험한 정책이라고 경고를 하고 나섰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언론과 야당은 오히려 보편적 복지를 부추겨 왔다. 내가 아는 한 대표적 언론이라는 '조·중·동' 중에 '지금 우리 형편에 보편적 복지를 펴다가는 나라 망한다'는 단호한 사설을 낸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금 스위스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그들의 '높은 경제 知力'을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국민들의 경제 지력 이전에 언론의 경제 지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알면서도 딴 전 펴는 나쁜 군상들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