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보름도 채 안 남긴 이 시점에 보수는 사분오열 되어 중심도 전략도 세우지 못하고 지리멸렬 해 있다. 이대로 가면 삼국지에 나오는,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은 노무현이 살아있는 박근혜를 이기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나라의 운명이 촌각을 다투는 엄중한 상황인데도 패배할 것이 자명한 보수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저마다의 주장의 근거는 각양각색이다. 

첫째, ‘보수 필승론’이다.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면 홍준표 후보가 당선된다’고 주장하는 어느 저명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분 말씀의 요지는 이렇다. 보수표 40%는 어디 안 간다, 집토끼가 집 나간다고 산토끼 안 된다, 유권자는 회귀 본능이 있어서 결국 제자리도 돌아온다. 그런데 이 분이 이와 같은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 때의 대선에서는 족집게처럼 적중시켜 탄성을 자아내게 했는데, 작년 4·13 총선에서도 똑같은 논리로 여당의 180승 압승을 출구조사 직전까지 한 종편방송에 나와서 주장하다가 완전히 빗나간 사실은 언급 안하시고 똑같은 논리를 이번 대선에서도 펴고 계신다. 

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 결과와 정당지지도, 수십 차례 진행된 그동안의 세대별 여론 조사를 종합할 때 문재인 후보는 40%의 고정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악전고투 끝에 있는 표, 없는 표 다 끌어 모은 표가 51.6%였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가져간 40%를 제외한 나머지 60%에서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자신들의 표를 떼어가고 나면 설사 보수 단일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무슨 수로 홍준표 후보가 40%를 얻는단 말인가? 

어느 선거에서나 필승론은 존재해 왔다. DJ 때는 전라도와 서울표만 지키면 이긴다는 ‘4자필승론’, 정주영 후보 때는 현대 직원과 그 가족, 하청업체 등 현대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몇 표씩만 가져와도 이긴다는 ‘현대필승론’이 유행하였다. 이 필승론이란 것이 남들이 들으면 그럴까 싶은데 자기 자신은 그것을 철석같이 믿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중고교 재단을 운영하던 전직 국회의원이 있었다. 평판을 크게 얻지 못해서 유권자들은 왜 또 나오는가 싶어도 자신은 선거 때만 되면 빠지지 않고 출마한다. 선거철만 되면 선거 브로커들이 달려들어 그럴 듯하게 속삭인다. “이사장님이 갖고 계신 학교가 거의 20개인데, 교직원, 학부모, 졸업생 표만 모아도 도대체 몇 표입니까?” 

‘보수가 보수 찍으면 보수 대통령 나온다’는 보수필승론이란, ‘김해 김씨 표만 모으면 김씨 대통령 나온다’, ‘여성 표만 모으면 여성 대통령 나온다’와 같이 자기만족을 줄지는 모르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기 최면 논리에 불과하다. 

둘째, ‘보수 자강론’이다.

현실적으로 보수 후보의 당선이 힘들다고 보고 힘을 길러 훗날을 기약하자는 논리다. 그리고 이번에 보수 후보가 제대로 표를 얻지 못하고 추락하면 보수진영 자체가 궤멸될 수 있다는 ‘보수궤멸론’이 ‘보수자강론’을 뒷받침하는 배경 논리이다. 1위는 못하더라도 안철수 후보를 꺾고 2위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최소한의 보수의 입지는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수 여론의 주도층 인사들께서 인터넷 방송에서 이 주장을 펴면서 ‘안철수 전략적 지지론자’를 공격하는 논리이기도 하며, 이곳의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보수가 제대로 득표를 못 하면 보수가 궤멸되어 버린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번에 안철수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은 앞으로는 보수가 아니란 말인가? 보수 궤멸론에서 궤멸이란 보수로 먹고 사는 정당, 정치인의 궤멸이지 보수 유권자가의 궤멸은 아니다. 빚내어서 선거 치르다가 15% 득표 못하면 선거 비용 보전 못 받고, 공천권 받으려는 정치인들 줄서지 않으며, 정치후원금이 모이지 않는 보수 정당이 궤멸될지는 몰라도 보수유권자가 궤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이다. 

이제 곧 종북 세력들이 물 만난 물고기마냥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날뛰고, 박 대통령이 겨우 제거한 통진당과 전교조와 민노총이 홍위병처럼 완장을 차고 설칠 코앞의 위험은 애써 외면하고 자강에 힘써 먼 훗날에 대비하자는 주장은 지극히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자강론이란 것은 항상 망조가 든 상황이면 등장하는 자기만족의 논리이자 현실외면의 논리이다. 병자호란에서 명분에 집착하여 현실을 외면하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척화파의 북벌론이란 것이 체면 깎긴 집권세력의 내부 단속용 구호에 불과하였고, 구한말 위정척사 운동이란 것도 서세동점의 거대한 시세의 흐름은 직시하지 못한 채, 현실 개혁의 주도력을 상실한 양반사대부 층이 주자학 원리주의로 복귀하려 하였던 자기 퇴행의 눈가림에 다름 아니었다. 청말의 변법자강운동이란 것도 제국주의 앞에 무력했던 이빨 빠진 호랑이, 청나라 지식인들의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지금 닥친 시험에 공부 열심히 안한 수험생이 항상 훗날을 다짐한다. 이번 시험은 이미 실패가 자명하니 내년에 심기일전,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자는 말은 현실을 외면하는 자기 합리화이며 자기기만에 불과한 공허한 궤변이다. 지금 닥친 시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수험생이 내년이라고 열심히 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셋째, 보수 지조론이다.

평생을 보수로 자처한 보수주의자로서 시세에 편승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지조를 지키는 것이 보수주의자의 면모요 훗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 자체로 뭐라 탓할 수 없으나 이 엄중한 시국에 현실 인식이 배제된 무책임한 논리이다. ‘문재인 세상이 된다고 나라가 어떻게 되기야 하겠어? 국민들 고생 좀 하고 나면 그때 정신차리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보수 지조론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결론적으로 보수 필승론, 보수 자강론, 보수 지조론은 안이한 ‘현실 안주론’에 다름 아니며 패배주의적 ‘체념론’에 다름 아니다. 

지난 4·12 재보선의 결과를 두고 여론조사의 허구성을 주장하고, 보수 필승론의 근거를 삼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필자는 여론조사에서 보수 지지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보수가 재보선에서 승리한 것은, 많은 보수 유권자들이 이미 안철수에게 전략적 투표를 하기 위해 포지션을 취한 결과이지 소위 ‘샤이 보수’가 많아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다른 선거에서는 언제든지 보수에게 표를 던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필자도 전략적 지지를 주장하지만 이번 재보선에서는 보수 후보에게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하여 당선을 도왔다. 

만사에는 정도(正道)가 있고 권도(權道)라는 것이 있다. 맹자에 있는 이야기이다. 평상시에 형수의 손목을 만지는 것은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패륜이지만, 우물에 빠져 죽게 된 형수의 손목을 잡아서 구하는 것은 권도(權道)라고. 선거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권도(權道)의 논리로서 보수의 생존을 도모해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