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댜닐 때 구로다 가쓰히로란 당시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이 쓴 ‘한국인 당신들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10대의 어린 마음에 한국을 내려다 보는 듯한 일본인의 오만한 시각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불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요즘은 나도 일본어도 하고 일본에 자주 여행도 다니지만, 나이 든 일본인들 중에 지금도 한국을 깔보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일본과 한국의 GDP가 3대 1 정도지만 당시 80년대는 15대 1쯤 되던 시절이었으니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그렇게 내려다 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지금은 산케이신문 소속인 구로다 기자가 방송에 나와 한국의 발전이 일본이 준 배상금 덕분이란 말을 해 논란이 뜨겁다. 한국인 방송 진행자는 구로다의 이 발언을 두고,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지금 상당히 모욕적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일본이 준 배상금 3억 달러(차관 2억 달러)는 한국이 경제건설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많은 필요조건 중의 하나였을 뿐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배상금을 받은 나라가 우리 나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미얀마나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받았지만, 경제건설에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하지 못한 건 고사하고 지금 미얀마나 필리핀 가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일본한데 1950년대에 거액의 배상금 받은 사실을 아냐고 물어봐라. 알기나 하는지.

미얀마는 두 차례에 걸쳐 배상금을 받았다. 1954년에 배상금으로 2억 달러, 차관으로 5000만 달러를 받았다. 1963년에는 1억4000만 달러를 추가 배상금으로 받았고 차관으로 3000만 달러를 받았다. 배상 금액을 합치면 3억4000만 달러니까, 3억 달러를 받은 한국보다 배상 금액이 더 많다.

필리핀은 1956년에 5억5000만 달러를 배상금으로, 2억5000만 달러를 차관으로 받았다. 역시 한국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이다. 인도네시아는 1958년에 배상금으로 2억2300만 달러를, 차관으로 4억 달러를 받았다.

일본이 이들 동남아 국가들에 지불한 시기가 대부분 1950년대였다. 한일 국교정상화 시점인 1960년대는 일본 경제가 훨씬 거대한 규모가 되고 난 다음인데도, 한국은 배상금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 합쳐도 5억 달러밖에 받지 못했다.

일본이 준 배상금의 가치를 애써 평가절하하고 우리 실력으로 이렇게 성장했다고 강변하는 한국인도 정직하지 못하지만, 마치 자기들이 배상금 안주었으면 한국이 경제발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이웃 나라를 대하는 스탠스를 고쳐야 한다.

배상금을 더 많이 받은 나라도 돈을 가치없이 하수구에 흘려보냈는데, 적은 돈이나마 요긴하게 잘 써서 경제건설의 토대를 만든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일본은 감사한 마음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결국 그 돈도 일본 국민의 재산이었으니까.

구로다 기자도 자신이 처음 한국에 왔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와 지금의 한국은 다른 나라란 사실도 알았으면 한다. 당신이 1980년대 초에 썼던 ‘한국인 당신들은 누구인가‘하는 책을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해봐라. 아마 반응이 그때 같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