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종편채널)이 등장한 지도 8년이 됐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兼營)이란 시대적 요청에 따라 신문이 전파 매체를 소유하게 됐다. 활자 매체인 신문의 경영난 해소와 좌경화된 공영방송의 노영화(勞營化) 방지로 여론조작을 예방하겠다는 큰 뜻이 있었지만 그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방송의 품격과 콘텐츠 산업의 육성이란 명분도 사라져가고 있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토론 프로그램 위주로 제작편성이 되다 보니 방송의 질적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자가 종편방송사의 사장으로 버젓이 앉아 있고 나아가 메인 뉴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면서 자기변명에 급급하니 방송의 공영성은 짓밟히고 개인의 사유물(私有物)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패널의 경우,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전문성을 가진 패널을 섭외, 출연시켜야 함에도 고정출연하는 함량 미달의 패널들이 약방 감초처럼 헛소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사평론가로 위장한 특정 정당의 대변자와 지역대학의 겸임·석좌·특임 등 삼류교수 나부랭이들, 정치인, 변호사 등의 명패를 달고 나와서 하는 주장이 공허할 뿐만 아니라 허황된 진영논리에 함몰돼 있다.

이런 부류들과는 다르지만 명사(名士)들 중에도 상식에 벗어난 호칭으로 듣기 거북한 장면이 자주 연출되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 하나. TV조선 시사 토크 프로그램 ‘강적들’에 출연한 박지원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 간의 호칭은 방송의 기본예의에 크게 벗어났다. 출연자는 민주 평화당 박지원 의원, 자유한국당 고문 이재오 전 의원, 전여옥 전 의원,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 등이었다. 이재오 전 의원은 박지원 의원을 형님이라 부르고 박지원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박지원이 이재오에게 ‘형님’ 소리를 듣는다면 전여옥은 이재오에겐 누이동생이 될 것이다. 전여옥은 박지원에게 오빠 또는 오라버니라고 불러야 할 것이고 이준석은 박지원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호칭의 통일성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여옥과 이준석은 공식 호칭을 부르는데 유독 이재오만 박지원에게 “형님, 형님” 하니 두 사람 간의 특수관계를 알 수가 없었다.

방송화면은 공적 장면이다. 공식 석상에선 공식직함을 부르는 것이 상식이다. 사석(私席)이라면 형님, 아우, 동생, 오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다양한 호칭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시청자 앞에선 사적 관계가 아닌 공적 관계의 사람들이 만나서 토론하는 것이다. 한때 유행한 CF ‘형님 먼저, 아우 먼저’처럼 상품광고나 개인적인 친교의 자리에서나 나누는 호칭이지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식장소에서는 형님이란 호칭은 통용되지 않는다. 조폭들의 의리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호칭을 사용하는데도 담당 PD나 사회자가 바로잡아 주지 않고 방영한 것은 성의 없는 프로그램 제작 행태이다. 특정 국회의원을 특정 프로그램에 장기간 고정출연시키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이 될 수도 있다. 제작자의 안이한 자세가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고 본다.

호칭뿐만이 아니다.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채널 모두가 시사 토크쇼를 제작·방영하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패널들을 장기간 고정적으로 불러내 편파·왜곡·억지 주장으로 여론을 오도(誤導)하고 있다. 궤변과 억지 주장으로 진영논리를 주장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요즘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 충돌은 어느 한 편의 잘잘못을 떠나 자기편을 들지 않으면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도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이 심하다. 구체적 사례 한 토막을 소개한다. TV조선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 ‘이것이 정치다’에 출연한 대구 모 사립대학교의 정치외교학과 김 모 교수와 서 모 변호사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다. 강제징용자 피해보상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두 패널이 맞붙었다. 김 모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구성한 민관공동위원회가 국내 재정으로 피해보상을 하기로 한 결정은 어디까지나 행정행위로 사법적 판단이 아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최고재판소의 최종판단이므로 일본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 모 변호사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내용이다.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수용해야만 집행이 가능한 것이다. 일본 사법기관이 수용하지 않으면 일본 국내에서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국가와 국가 간의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가?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해당 주제에 따라 전문가를 섭외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고정출연자를 정해놓고 약방 감초처럼 우려먹는 것은 아주 게으른 방송 프로그램 제작 행태이다. 미디어경영학을 전공한 서울 사립대학의 최 모 교수가 ‘지진’과 ‘태풍’에 대해서 말하고 요즘처럼 민감한 한·일 간 경제충돌에 대해서도 출연해서 전지전능한 재주를 부리는 것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다. 출연자 선정은 공정해야 한다. 그래야 공정성을 인정받는다. 특정인의 장기 고정출연과 주제와 상관없는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 또한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종편채널 출범 이후 한국방송의 타락은 참으로 심각하다. 방송 시스템의 기본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