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주장이 먹히는 이유=
남북연방제는 1960년 김일성이 내세운 이래 북한이 꾸준히 주장하여 온 바이다. 물론 그 내용은 1980년 제의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ea)’에서 수정되었고, 이어서 1991년 김일성의 신년사에서는 연방제에 대해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연방공화국의 지역적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이른 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다시 수정되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레닌의 과도적 형태로서의 연방제에서 출발해 1민족, 1국가, 2체제, 2지역 자치정부를 원칙으로 하되, 지역 자치정부들이 ‘높은 단계의 연방제’의 중앙정부가 갖는 정치, 군사, 외교권을 갖고 그 위에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남북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정하는 민족통일기구를 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연방제 안의 전제조건이 국가보안법 폐지, 모든 정당·단체 합법화 및 정치활동 보장, 주한미군 철수 등을 내걸고 있었으므로 적화통일을 위한 얄팍한 술수로 여기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 때에 이르러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하자, 국민들은 남북연방제도 가능하구나, 뭐 어렵긴 하지만 되면 좋은 거지 뭐…정도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홍콩 사태가 벌어지자 '일국양제(一國兩制)'란 어려운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보수논자들은 체제가 다른 두 나라 간의 연방제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거 어느 논문을 뒤져봐도 구체적으로 왜 불가능한지를 열거한 사례는 없다. 이를 논하자면 긴 논문이 필요할 것이나, 여기서는 간단히 그 요점만 짚기로 한다.

<1 외교∙국방의 문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교∙국방이다. 북한의 연방제는 처음에는 외교∙국방은 연방정부가 갖는다 하다가 나중에는 수정하였다.
국방을 나눠가지면 제일 큰 문제는 외부의 침략에 대해 일사불란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북예멘과 남예멘의 연방에서 보았듯이 내전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럼 남이 가질 것이냐 북이 가질 것이냐? 북은 핵을 가졌으므로 당연히 자기들이 가져야 한다고 할 것이다. 남은 이에 동의할 것인가? 만일 계엄 등 비상사태가 발생한다고 하자, 북한군이 동원되어 서울에 비상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서울의 치안을 북한군이 담당한다? 이를 한국 국민들이 동의할까?
그럼 외교권만 연방정부가 가지고 국방은 그대로 둔다 하자! 남북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엔에 호소할 수 있나? 연방정부가 되면 남북간 분쟁은 내전이므로 당연히 유엔은 개입을 거부할 것이다. 또 외교, 국방, 내치 모두가 각자라면 연방이란 껍데기이고 하나마나 한 것이다.

<2. 사법부의 문제>
지방, 고등 재판소는 지방정부에 분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사법부는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의 공민들이 국가와 법을 정확히 지키고 계급적 원쑤들의 온갖 법위반자들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도록 한다”(북한헌법 제162조)고 하며 “최고재판소는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그 휴회 중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앞에 책임진다”(제168조)고 규정한다. 당연히 북한 식 대법원은 용납할 수 없다. 삼권분립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식 대법원을 북한이 수용할까? 어림없는 얘기다. 또 국가원수를 탄핵 심판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도 수용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사법제도는 따로 놀자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북한에 투자한 기업이 지방정부, 또는 북한 정부와 분쟁이 생길 때에는 속지주의의 원칙대로 북한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면 과연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까?

<3. 연방통일헌법의 문제>
연방제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연방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국호, 영토 조항은 합의가 어렵지 않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권 조항이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은 현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조항이다. 그런데 이 자유권 조항을 연방헌법에 삽입하는데 북한이 동의할까? 그렇다고 송두리째 없애면 한국 국민들이 수용할까? 그렇다고 이 조항을 살리고 “단 북한은 이 조항을 20년간 유보한다”고 하면 북한 주민들이 이를 수용할까?

<4. 경제질서의 문제>
경제질서는 남한은 그대로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북한은 계획경제, 공산경제 체제, 토지국유제 등을 유지하는 게 이론상은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1인당 GDP 1500불 수준의 북한 경제를 한국의 3분의 1인 1만 불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도 연 10%씩 20년간 계속 성장을 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경공업을 육성해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노동집약 산업을 동남아에서 북한으로 옮기는 방법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현 중국 수준의 개혁개방을 실시하고, 개인 소유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며, 또한 임금직불제도 즉 북한에 투자한 한국기업이 근로자에게 바로 임금을 지불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할 수 있게 해야 이 정도의 성장이 가능하다. 지금의 개성공단 식의 폐쇄적 운영방식으로는 연 10%씩 20년간 연속성장은 꿈 같은 얘기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아무 구체적 실천사항이 없는 '평화경제'란 뜬구름 잡기 식의 말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5.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이와 같이 남북연방제는 북한의 체제가 어느 정도까지는 변화되어야 논의의 시작이라도 할 수 있는 사항이다. 현 시점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억지로 누더기 연방헌법을 만들어 실행하면 어떻게 되나?
경제학에는 토머스 그레샴(Thomas Gresham, 1519-1579)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법칙이 있다. 이게 똑같이 통한다.
일률적으로 교육되고, 명령에 복종만을 강조받은 집단은 사분오열된 무리를 이긴다. 즉 사상으로 세뇌된 2500만이 5200만을 이긴다. 보불전쟁(1870-1871)에서 프러시아가 선진국 프랑스를 이긴 예를 보라! 이 때도 프랑스 인구는 프러시아의 2배였지만 프러시아는 전제군주제였고 프랑스는 공화정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무리한, 그리고 시기상조의 무리한 연방제는 적화통일의 길로 간다. 게다가 이미 한국에는 동조세력들이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도 다수 국민들은 우리 인구가 북한의 2배인데 북한이 남한화되지 남한이 설마 북한화 되겠는가? 자유의 맛을 본 사람들을 북한 식으로 다스릴 수 있겠나 하고 순박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낭만적 '햇볕정책'이 실패했음에도 아직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한국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