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대(文學時代)”는 1966년 3월 부산에서 창간된 순수문예지다. 부산에서 발간됐지만 시장은 전국을 대상으로 한 잡지였다.

“문학시대”란 작명은 소설가 이주홍 선생이 했고 제자(題字)는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 선생이 썼다. 주간 이주홍 선생이 고향인 합천 해인사 아래 홍도(紅濤)여관으로 피서(避暑)가서 ‘검여’를 만나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文學時代(문학시대)”란 제호를 여러 서체로 써서 마지막 당첨된 것으로 선정했다.

발행인 추성구(秋盛龜), 주간(主幹) 이주홍(李周洪), 편집 최해군(崔海君), 김영(金榮), 영업 박광호(朴光浩) 등으로 진용을 갖추고 본격적인 발간작업에 들어갔다. 추성구 사장은 “문학시대” 창간사(創刊辭)를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ㅡ새벽의 기적(汽笛)ㅡ

문학의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다. 인간의 정신적인 파탄과 허탈과 절망에 대한 모든 병근(病根)을 찾아내고 그래서 그 치유에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문학의 사명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을 구원하는 의학도가 되고자 먼 길을 떠난다.

탄탄한 서울의 대도(大道)가 아닌 부산의 바닷길이란 점에서도 이 여로는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부담 지우고 있다. 

그러나 짙은 새벽 안개가 스무 겹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배는 기적을 울리면서 밀고 나갈 것이다. 신뢰할 만한 세력자가 못될 땐 차라리 고독 속에 내일을 회의하고 있는 환자들의 상냥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것으로서도 우리의 보람을 믿어 흔들리지 않을 생각이다.> 

 출발의 다짐과 각오는 대단했다. 잡지라면 으레 서울이어야 한다는 중앙집권적 아집과 오만함에 맞서서 항도 부산에서 “문학시대”를 창간한 것은 한국 잡지사(雜誌史)는 물론 부산 문단으로서도 대단한 용기요, 희망이었으며 도전이었다. 재정난으로 비록 7집까지로 생을 마감했지만 “문학시대”는 부산 문단사(文壇史)에 오래오래 기억될 경사였다.

창간호에 실린 내용도 서울의 “현대문학”이나 “자유문학”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향파 이주홍 주간의 한국문단에서의 영향력과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흔적이 역력했다.

창간호 필진으로는 창작 분야에서 손동인(孫東仁)의 “동심의 축제(童心祝祭)”, 오유권(吳有權)의 “머슴“, 윤정규(尹正圭)의 ”타계의 음향(他界 音響)“, 장호(章湖)의 “오징어가 된 사나이” 등이 게재됐다. 평론으로는 백철(白鐵)의 “現代文學을 위한 서론(序論)”, 이원수(李元壽)의 “아동문학(兒童文學)의 문제점(問題點)”, 이호우(李鎬雨)의 “시조단(時調壇)의 제초작업(除草作業)”. 시(詩) 분야에선 유치환(柳致環)의 “대화(對話)”, 장만영(張萬榮)의 “꽃. 독초(毒草)”, 김수돈(金洙敦)의 ”태양이 외로이 있으면서“, 최계락(崔啓洛)의 ”한일(寒日)”, 이동섭(李東燮)의 ”내재(內在)의 꽃꿈“ 등 작품이 게재됐다.

특집(特輯) “한국(韓國)의 소설(小說),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선
•원형(圓型)의 전설론(傳說論) - 정태용(鄭泰鎔)
•한국 소설(韓國 小說)의 방향(方向) - 신동한(申東漢)
•시(詩)에 접근(接近)한 소설(小說)의 두 가지 전형(典型) - 김태홍(金泰洪) 등이 참여했다.

에세이는 조연현(趙演鉉)이 “교직(敎職)의 감상(感想)”, 정비석(鄭飛石)이 “나의 출세작, 성황당(城隍堂)”에 대해 썼다. 수필은 이상노(李相魯), 김송(金松), 이영도, 이가원(李家源), 정상구(鄭相九), 허천(허천), 안춘근(安春根), 최해갑(崔海甲), 손풍산(孫楓山), 김상희(金尙禧), 문재구(文在球) 씨 등이 좋은 글을 남겼다.

연재로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 박지홍, 구우학(具羽鶴)이 참여했다. “학교대항 연작소설‘란을 마련하여 ’저 하늘에 깃발을‘을 공동제목으로 하여 전국고등학교 문학도들이 자기 학교의 명예를 걸고 문장력을 뽐내며 열띤 경연을 벌이기도 했다. 첫 회는 서울 보성고등학교의 허선 君이 나섰다. 연재소설은 강은파가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를 선보이며 관심을 끌었다.

문학 지망생들을 위한 “새밭에서”라는 코너에서는 고등학교 문학도들의 작품도 실었다. 강릉고등학교 정종명(鄭鐘明) 군의 소설 “도주(逃走)“가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을 받아 게재됐고 개천 예술제 백일장 시 부문 장원인 부산상고 이상익(李相益) 군의 시 “불꽃”도 게재됐다. 정종명은 후일 소설가로 대성하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되었고 이상익은 부산문화방송(주) 기자로 출발하여 상무이사가 되기도 했다. 

당시 지방의 문인들은 “현대문학”이나 “자유문학” 등 전국단위의 문예잡지에 작품이 게재되는 기회를 잡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서울 중심의 텃세 때문에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문학시대”가 창간되면서 서울의 기라성같은 대가들과 함께 부산의 작가들이 같은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것이었고 기쁜 소식이었다. “문학시대”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최계락, 이동섭, 윤정규, 이영도, 정상구, 허천, 최해갑, 손풍산, 김상희, 문재구 등 제씨(諸氏)가 부산 작가들이다. 

“문학시대”를 발간하기에 앞서 1965년 10월20일 광복동 “동화(東華)반점”에서 준비모임을 가졌다. 당시 필자는 모임의 성격에 대해 현장 사진을 곁들여 이렇게 적었다. 

<ㅡ산실産室의 속삭임ㅡ
잡지라면 으레 서울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습관이 들어버린 그 고질에서 뛰어나와 서울 아닌 이곳 부산에서는 문학잡지를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일까?

이런 의견을 듣고자 추성구, 이주홍, 박광호, 최해군 등 제씨들이 중심이 되어 자리를 마련했다. 10월20일 “동화반점”의 한 조용한 방인데 여기에는 시인 안장현, 김태홍, 최계락, 이민영 이동섭, 김상희 씨를 비롯해 평론의 김종출, 허창, 국문학의 박지홍, 김제원, 최해갑, 소설의 이주홍, 최해군이 참석했다. 음식상을 앞에 놓고 있는 사진이라 좀 거북은 하나 그래도 우리 “문학시대”로 보아선 귀중한 현장자료가 될 것이다.>

이렇게 준비과정을 거쳐 “문학시대”는 1966년 3월 창간호의 탄생이라는 경사를 맞았다. “문학시대” 창간과 함께 “문예 대강연회”도 3일 동안 개최됐다. 동광동 “한성여대(경성대학교전신)” 강당에서 개최된 이 행사는 문학 지망생들의 습작에 대해 문단 대가들이 직접 지도하고 부산시민들이 문학 강연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연사로는 김동리, 김남조, 전병순, 이호철, 박목월, 조병화, 한말숙, 한로단(희곡) 선생 등이 출연했다. 

교사 금숙희의 습작시 “소나타”가 조병화 선생의 지도와 추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시인 조병화는 피난수도 부산 시절 송도의 보리밭 언덕에 “패각의 집”이라는 집필실을 마련하고 시집도 내는 등 부산 르네상스에 기여하기도 한 인연이 있었다.

이렇게 출발한 “문학시대”는 7집까지 낸 뒤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문학시대“는 비록 문을 닫았지만 지방에서도 서울에 필적할만한 순수 문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남긴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부산 문단과 부산 잡지역사에 대해 천착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문학시대” 탄생 배경과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문학시대”가 부산시민과 문학인들의 기대와 희망 속에 탄생한 것은 소설가이자 아동 문학가이며 한국 만화계의 한 획을 그어 온 향파(向破) 이주홍(李周洪) 선생의 부산을 지키며 사랑한 노고의 덕분이었음을 거듭 밝히는 바이다. 

재정지원을 한 태화출판사 추성구 사장과 박광호 전무, 주간 이주홍 선생과 편집실무책임자였던 소설가 최해군 선생은 이제 고인(故人)이 되었다. 인거여문(人去餘文)이라 했던가? 사람은 가고 “문학시대“만 남아 서가(書架)를 지키며 빛바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문학시대” 발간에 공을 쏟은 분들이 부산 문단과 잡지역사에 기여한 공로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