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이병호를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에 각 처한다”
국정원장의 항변 - 판결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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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오전 10시. 서울 고등법원 312호 법정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방청석은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은 기자들로 꽉 차 있었다. 방청석의 한 쪽은 이병호 원장의 구명을 탄원한 군대동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방청석 중간쯤에 조용히 스며들 듯 가서 앉았다. 옆자리에 김 변호사가 보였다. 부산지검 차장검사 출신이었다. 검사시절 그는 이병호 국정원장 밑에서 일을 했었다. 변호사가 되어 상관이었던 국정원장을 변호하게 된 것이다. 판사들의 출입문으로 검사들이 나와 자리에 앉았다.

“왜 변호인은 변호인석에 앉지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옆에 앉은 김 변호사가 못마땅한 어조로 불평했다. 그러고 보니 변호인석이 텅 비어 있었다. 판결 선고만 듣는 상황에서는 어디에 앉아 있던지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결심공판에서 변호인이 자신의 자리에 앉지 못하게 했다면 그건 적법한 절차는 아니었다. 법정경비가 막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과 비서실장들이 차례로 나와서 무거운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구치소에서 깎은 짧은 머리의 뒷통수들이 보였다. 그중 유독 백발 사이에 누런 머리가 보이는 머리가 있었다. 불구속으로 기소된 이원종 비서실장의 뒷모습이었다. 재판장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법정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모두들 판사들이 무대 위로 올라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뒤쪽의 판사들도 마찬가지로 흥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국민의 세금 중 감추어진 부분을 지금도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 그리고 고위법관들이 특활비라는 명목으로 남용하고 있다. 법의 제단에 올려 진 것은 그 많은 사람 중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의 국정원장과 비서실장이었다. 수십 년 동안 정보기관에 숨겨놓은 그 돈을 권력자들이 먹고 마시는데 쓰고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 촛불정권은 도덕성을 주장하면서 거기에 철퇴를 내렸다. 총론에서는 바른 조치였다. 특활비뿐만 아니라 무기와 석유를 둘러싸고 그 뒤에서 거래되는 검은 돈들도 언젠가는 척결되어야 할 고질적인 비리인지도 모른다. 인권문제를 비롯해서 세상의 물결은 그래도 좋은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리가 따르고 일부 희생자가 생길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상징적인 이 사건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상대적으로 깨끗했다. 돈에 있어서만은 결벽증일 정도로 자신을 관리해 왔다. 그런 그가 국정원장의 뇌물을 받은 파렴치범이 되어 망가진 것이다. 이병호 국정원장 역시 깨끗한 인물이었다. 정보기관이 정치에 의해 망가지는 걸 뼈아프게 보아온 정보전문가출신인 그는 정보기관의 정치관여를 철저히 막은 유일한 정보기관장일지도 몰랐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돈을 지원하라고 명령했을 때 좀 더 예민한 정치적 감각이 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그 말을 따른 게 실수라면 실수였지 않을까. 정년퇴직을 하고 받은 돈을 은행에 가지고 갔을 때 은행 여직원이 펀드에 가입하라고 해서 무심히 그 말을 들었던 순진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펀드에 넣은 돈을 다 날리고 나서야 후회를 했다. 나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재판장은 정보전문가가 펀드와 예금의 차이도 모르느냐고 말하면서 비웃었다. 그의 그런 속성을 이 재판부가 알기는 불가능했다.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무너뜨리고 파괴해야 할 목적인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모략에 가까웠다. 약점을 잡은 국정원 기조실장을 이용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었다. 검찰이 만든 전체 범죄사실이 국정원 기조실장의 진술이라는 기둥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가 기조실장진술의 진실성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재판 전체의 유무죄가 갈렸다. 검찰에서 작성된 기조실장의 진술조서는 보통사람이 그냥 봐도 어떤 압력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조실장은 법정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진실이 아니었다고 폭로했었다. 국정원장을 회계관계 직원으로 보고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솔직히 후일 누가 봐도 웃을 법의 왜곡이었다. 판사들에게는 국정원장이나 장관들이나 국회의원들 모두가 회계직원으로 보인다면 그건 색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명분과 총론에 있어서 특활비의 적폐청산은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직했던 이병호 국정원장에게 역사적 적폐인 그 모든 죄의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과연 맞는지 의문이었다. 이윽고 재판장이 배석판사들을 데리고 법대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긴장된 표정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았다. 재판장은 먼저 피고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절차에 따라 형식적으로 확인했다.

“이제부터 판결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재판장이 묵직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국정원은 정치권력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그것은 국가정보기관과 정치권력의 유착이었습니다. 특정정당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면 그것은 국정원의 정치 관여이며 우리는 그런 불행을 여러 번 겪어 왔습니다. 재판장인 저는 오랫동안 관행같이 사용되어 오던 국정원 자금의 청와대 지원을 국민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안 된다고 했을 겁니다. 국민의 혈세를 국민들이 모르는 다른 곳에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국가 정보기관이 예산을 자기 돈처럼 사용해서 정치권력과 유착한 것은 도덕적 해이뿐만 아니라 위탁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해서 국가재정에 손실을 입힌 횡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이 이 사건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국정원자금은 정치권력을 타락시키고 정치권력에 대한 자금통제를 어렵게 하는 독버섯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정원자금의 남용부분에 대한 법의 준엄한 통고였다.

“용도가 특정된 특수 활동비라면 그 적합한 상대방에게 지급되어야 합니다. 그것과 무관하게 지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판부는 대통령을 특수 활동의 상대방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특수활동비는 대통령이나 국정원장이 주관적 입장에서 임의로 결정을 할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국민의 세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이나 국회만이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게 국민주권이고 재정민주주의자 법치주의일 것입니다.”

재판장은 잠시 말을 끊었다. 방청석의 기자들이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법정의 허공에서 부딪치고 들끓고 있었다.

“피고인이나 변호인들은 국정원돈이 청와대에 가는 것이 오랜 관행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영득의 의사나 범죄에 대한 고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관행은 불법적인 것으로 국정원돈과 정치권력이 야합을 막기 위해서는 청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의 본질에 관한 사법부의 결론이었다. 이어서 재판장은 각론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사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국정원장이었던 피고인 이병호는 회계관계직원책임법의 입법취지로 볼 때 회계 관계 직원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는 국정원의 업무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그 용도가 특정된 금원입니다. 그 돈을 특수 활동을 해야 할 상대방이 아닌 대통령 또는 청와대에 임의로 지급하는 것은 위탁자인 국가 나아가 국민의 의사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으며 사회통념상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피고인 이병호가 청와대에 돈을 지원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죄로 보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 횡령은 사실상 압력에 의한 소극적 가담 정도로 봅니다.”

법과 역사는 국정원 돈의 남용부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매듭을 짓고 가야 할 것이다. 추정되는 국민의 의사에 위배되는 예산의 사용을 횡령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 다음은 그에 대한 정치관여죄 판단부분이었다. 재판장이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정보기관의 정치관여라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해서 겪었습니다. 그래서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도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습니다. 국정원 기조실장인 이헌수는 당심 법정에서 ‘검찰진술은 착오에 의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던 것이고 실제로는 이병호 국정원장에게 특정 정당이 아닌 청와대의 합법적인 일반 여론조사비용이라는 취지로 보고한 것 같다’고 진술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헌수는 그렇게 진술을 번복하게 된 사유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의 말이 가슴에 와서 딱 걸리는 것 같았다. 이헌수는 법정에서 온 몸으로 절규했었다. 검사의 협박과 계속되는 고문 같은 밤샘조사를 얘기했다. 약점이 잡혀 마음에 없는 진술을 원하는 대로 해 준 사실을 말했었다. 그러다 법정에서 비로서 말한다고 한 것이다. 그만하면 들을 귀가 있다면 믿을 만도 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재판장이 그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병호의 변호인은 이헌수가 검찰 조사시 검사와 장시간 면담을 통해 진술 등에 관해 협상을 벌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나 그런 사정만으로는 이헌수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요청한 십억사천만원은 국정원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거액이었으므로 이헌수로서도 국정원장인 피고인에게 정무수석실에서 돈을 요청한 이유를 개략적으로라도 설명했으리라고 보입니다. 또한 이병호 국정원장도 그 보고를 받고 반만 지원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 재판부로서는 그 위법성의 정도가 중하고 보기 때문에 피고인 이병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판결이유의 고지가 끝이 났다. 재판장은 이렇게 선고했다.

“피고인 이병호를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에 각 처한다”

[ 2019-03-05, 10: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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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gate    2019-03-05 오후 8:34
지난 탄핵 사태 기간동안 김평우 변호사께서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법의 적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김 변호사님에 의하면 행위의 고의성이 없으면 처벌은 없다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병호 원장님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 행위인 줄 알면서 고의로 한 일도 아니고
그 행위의 결과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것도 아닌데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잉 법집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의는 아니지만 국고에 손실을 입혔으면 개인이 금전적으로 배상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징역형을 내리는 것은 정당한 법집행으로 보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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