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TV 속 정치권을 넘보는 변호사들
"아예 방송국에 붙어사는 변호사도 있어요.…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요? 법정에 나가면 ‘을’ 신세라 재미가 없다는 거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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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종편 TV를 보면 정치권 쪽을 넘보는 변호사들이 모여들어 끝없이 공허한 잡음을 일으키는 걸 보기도 한다. 더러 아는 얼굴도 보인다. 방송에 출연했던 한 후배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아예 방송국에 붙어사는 변호사도 있어요. 프로가 끝나도 사무실에 가지 않고 피디하고 술 먹으러가서 낄낄거리며 다른 프로에 출연하려고 로비를 하는 거예요. 한심해.”
  그가 혀를 차면서 덧붙였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법정에 나가면 ‘을’ 신세라 재미가 없다는 거야.”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 전 보았던 일본 드라마의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 한 곡이 세상에 알려져서 가수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이후로 오랜 세월 히트를 친 노래가 없었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그가 거리로 나섰다. 고속버스 휴게소의 공터가 그의 무대이기도 하고 장마당이나 포구의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그는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앞에는 그의 취입곡이 실린 씨디가 놓여있었다. 하루에 몇 장 팔리는 씨디 값으로 그는 낡은 여관에 묵으면서 밥을 먹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가수지만 그의 열정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는 벽지가 누렇게 바랜 곰팡내 나는 방에서 물때가 낀 거울을 보면서 노래하는 동작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있었다. 시작할 때 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노래가 고조됐을 때 표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면서 리허설을 끊임없이 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때 단 한 명의 관객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삶의 바닥을 헤매면서도 그는 자신의 노래가 든 가방을 무겁게 이끌고 삶의 지평선 저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진짜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드라마 중에는 작은 것에 충실하라고 하면서 양심을 깨워주는 내용들이 많다. 인생을 걸고 수행하는 사람 같이 초밥이나 라면국물을 만드는 장인들이 있다. 일본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 직원이 주머니에 낱말카드를 들고 거리나 버스 안에서 열심히 사람들의 말을 채취하고 밤에는 좁은 다다미방에서 그걸 성실하게 정리하는 모습은 숭고한 예배행위 같기도 했다.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의 첫 장면이었다. 미대를 졸업한 화가가 생활비를 얻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부수적인 방편으로 그려주는 것이지만 마음을 담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마음을 담는다’는 말이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일본소설과 드라마에서 장인정신을 배운다.
  
  삼십대 초 개인 변호사로 출발할 때였다. 먼저 돈만 보였다. 복잡한 전문용어를 나열하면서 의뢰인에게 높은 경지의 지식을 가진 척 하면서 교만했다. 법정이라는 무대에 서면 불만이었다. 판사가 주역이고 변호사인 나는 조역이나 엑스트라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판사 앞에서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공허한 소리를 지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변호사가 쓴 변론요지서를 봤다. 한 줄 한 줄 마음이 담긴 변호였다. 한꺼번에 다 쓰지 않고 일련번호를 붙여 테마별로 세심하게 나누어쓴 정성스런 작품이었다. 의뢰인의 삶과 고통을 담고 판사를 이끄는 예리한 법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 변호는 쓰레기같은 불량품이었다. 그 다음부터 나는 일본의 장인처럼 마음을 담고 변호사의 일을 수행하기로 했다. 사건의 본질과 법 속에 담긴 영혼이 무엇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 진술서의 한 문장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질그릇 속의 보물같이 어떤 일을 하건 그 속에 담겨있는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 2019-07-17, 16: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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