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뉴스 말미에 ‘앵커브리핑’ 코너를 통해 논평을 한다. 사실에 충실하기 보단 다분히 감상적인 표현과 주장이 많다. 지난 8일, ‘운이 좋게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라는 제목의 앵커브리핑이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 중에 화제가 됐다. 포털 사이트의 ‘많이 본 뉴스’에 오르기도 했고,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의 브리핑 내용을 SNS나 블로그 등에 퍼다 날랐다.

이 ‘앵커브리핑’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일본 경제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났다 2) 일본은 그래서 ‘한국전쟁’을 ‘신의 선물’이라 여긴다, 3) 일본은 우리 덕에 막대한 富를 축적하고서도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아주 적은 금액만 지불했다, 4) 지금의 경제보복은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이므로 가당치 않다.

지금의 경제보복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 한국전쟁까지 끌어들인 손석희 앵커의 의도는 다분히 유치하다. 마치 ‘우리가 이런 비극을 겪을 동안 너희는 좋아서 춤을 췄니?’라고 하듯, 일본을 ‘우리의 불행을 딛고 성공한 얄미운 이웃’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도입부부터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상대로 한 발언인지는 다 생략한 체 자극적인 발언만 취사선택했다.

『“운이 좋게도. 정말 운 좋게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은 지난 2005년 아소 다로 일본 총무성이 한 말입니다. 그는 지금 일본의 부총리 겸 재무상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전쟁 당시 어마어마한 전쟁 특수를 누렸습니다. 억지로 항복을 선언한 패전 이후 대공황의 위기마저 거론되었던 경제는 군수물자를 판매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까요.

그 아소 다로의 외조부이자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총리 ‘요시다 시게루’ 역시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하지요. 한국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본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 경제가 다시 부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인 입장에서 우연히 닥친 역사적 기회에 스스로 ‘운이 좋다’고 여기거나, ‘신의 선물’이라며 감사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일본이라는 ‘이웃’에 감사할 것이 없는가. 2차 세계대전에서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만들어 낼 정도의 제조 능력이 있던 ‘일본’이 있었기에, 한국군과 UN군은 일본이란 든든한 후방에서 군수 물자를 원활히 지원받을 수 있었다.

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에 몰렸던 연합군은 근거리에서 원활한 후방지원이 필요했다. 미국은 각종 전쟁 물자의 생산, 수리, 수송 등을 일본에 맡겼다. 군수물자 생산을 통해 일본 경제는 중화학 공업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런 미국의 지원과 일본의 제조 능력으로, 일본은 전쟁 내내 훌륭한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우리 덕에 너희가 발전한 줄 알아라’하는 속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보다 산업발전의 역사가 90년 이상 앞서있던 이웃 덕을 남침전쟁 때 우리도 봤다는 것을 인정해야 균형 잡힌 논평일 것이다. 戰後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고 제철, 조선, 토목건설, 기계 등으로 산업을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일본으로부터의 많은 기술적, 재정적, 人的 지원이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논평을 보면, 일본이 당시 축적한 ‘부’가 한국전쟁의 결과물이고 또 우리는 식민지배의 피해자이므로, 마치 우리가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긴다.

『그때 축적된 부는 그 극히 일부가 한일협정이라는 기울어진 협상의 결과물로 이 땅으로 들어왔고, 불과 며칠 전 우리는 일본 극우 언론의 논설위원이 뱉어낸 다음과 같은 말을 또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3억불이라는 그 금액이 지금 한국 발전의 기초가 됐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손 앵커는 65년의 한일협정의 결과물을 ‘충분치 않은 것’으로 본다. 물론 여기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961년 11월, 제6차 한일회담으로 시작해 4년에 걸친 협상 과정을 보면, 일본에 비해 국제적 지위와 외교적 능력이 현저히 열세일 수밖에 없는 신생국 ‘대한민국’ 정부가 줄기차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한 것을 알 수 있다. 61년 11월 한국 정부가 일본에 요구한 8개 조항은 총 3억 6400만 달러의 보상 요구를 담고 있다.

일본은 ‘생존자 보상 선례가 없고, 사망자 및 부상자 보상은 관련 원호법에 따라 처리했다’는 이유로 우리 측 요구안을 사실상 거절했다. 또한 1946년 기준 22억 달러의 남한 내 일본인 재산이 미 군정에 의해 몰수되어 1948년 한국 정부에 넘겨졌는데, 이를 이유로 추가적인 보상은 어렵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었다. 논리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협상이었다.

62년 협상에서는 서로 제시한 금액이 7억달러 對 7000만 달러였다. 이를 좁혀가는 협상이 계속되다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차관 1억 달러’로 타결이 된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무상보다 유상이 많아서는 안 되고 합쳐서 6억 달러를 지켜라’는 훈령을 보냈다. 이런 지난했던 협상 과정과 당시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열세적 위치 등을 다 뒤로하고 50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단순히 ‘기울어진 협상’이라 매도할 수 있는 것인가.

‘극우’라는 프레임을 씌어 부정하려 해도,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받은 3억불의 보상금이, 나머지 3억 불의 금액과 함께 대한민국 산업화의 종잣돈이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시 받은 자금이 가장 많이 투입된 곳은 포항제철이었다. 일본기업 ‘신일본제철’의 기술이전과 합쳐, 철강산업의 기틀이 잡혔고, 이것은 기계, 조선,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로 많은 자금이 투입된 곳은, 소양강 댐 건설이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토목공사였다. 이 댐 건설로 생활용수 및 농업, 상업용수 확보가 가능해졌고, 해마다 되풀이되던 홍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조선업,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사용되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이 100%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라 해도, 당시 제공받은 자금으로 지구상 최고 가난했던 나라가 이만큼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함으로써 ‘克日’했으면,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손 앵커는 여전히 ‘한번 가해자는 영원한 가해자다’라는 식의 ‘피해자 對 가해자’ 프레임으로 논평을 이어간다.

『이른바 경제보복. 보복이란 피해를 입은 사람이 행하는 마지막 수단일 터인데 그들이 입은 피해란 대체 무엇인가.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모순은 혐오의 정치적 언어를 낳고, 그들이 쏟아놓는 정치의 언어가 선량한 양국 시민들의 마음까지 갈라놓는 현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 ‘영원한 피해자’인가. 일본에 대한 끊임없는 사과 요구와 배상 요구가 당연한 것인가? 구글, 네이버 등에서 ‘과거 일본의 사과’로 검색만 해봐도,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천황, 총리, 기타 각료 등의 공식 사과 내용이 수십 건 이상 나온다.

아베 총리도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 간 합의 소식을 전하는 공동 발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죄했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얼마나 더, 어떻게 사과하면 100% 만족스런 사죄가 되는 것인지, 손석희 앵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과 경제보복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원인 제공한 것이다. ‘65년 한일협정으로 포괄적 배상이 이루어진 것’을 50여 년 넘게 인정해 온 과거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뒤집고, 결과적으로 국가 간 조약에 반하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관리를 하지 않았다. 청구권 협정 제 3조에 의거, 일본 정부가 외교적 협의 및 중재위 구성을 6개월 넘게 요구해 왔음에도 깡그리 무시해오다, 우리 기업만 ‘총알받이’가 되게 하는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조건 ‘피해자’라고?

손 앵커는 마지막에 징용 피해자를 끌어들여 ‘반일 감성팔이’의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여기, 그들이 피해자가 되는 동안 오히려 가해자가 된 사람이 있으니...1940년대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청년은 말했습니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미안합니다” 피해자이면서 졸지에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이춘실 할아버지께.』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언제까지 ‘반일 선동’에 이용할건가. 이들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우리 정부 몫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이 위원으로 참석한 ‘민관공동위원회’에서도 징용 피해자 보상은 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종결된 것으로 봤다. 다만, 당시 경제 건설에 사용하느라 피해자 구제에 소홀했던 점을 인정해 2007년 특별입법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 들어 뒤집어졌다. 강제징용 피해자가 ‘미안함’까지 느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을 만든 당사자는 일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다.

미안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며 피해자에게 던지는 앵커의 마지막 멘트는 경악스럽다.

『이춘실 할아버지께...“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다”라고 했던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을 한 마디 더 전해드립니다. “이제 일본은 살았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일본은 전혀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악질 가해자’이니,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이자, 동북아 분업구조 속에 서로 윈-윈하는 경제적 파트너쉽을 이어온 한일 관계. 손석희 앵커는 싸구려 ‘감성팔이 반일 선동’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할 좋은 관계를, 100년 전 과거로 끌고 가 파탄내려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