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 밑에서 살고 있는 고문의 피해자와 가해자. 불법감금·잠 안 재우기·폭행·협박 속에서 온몸으로 고문을 입증하여 한국의 사법절차에 큰 각성을 준 高여인의 고행(苦行) 3백일. 아직도 범인 쫓고있는 집념의 형사들은 처참·기괴한 살인현장에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1987년 1월 월간조선>
우리가 죽인 무죄인기자는 고문·무죄·원죄( 罪)사건들에 대해서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취재해 왔다. 여기서 얻은 하나의 결론은 「고문 앞엔 장사가 없다」는 것이다. 고문을 견뎌낼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단 한명, 예외가 있었다.
1967년에 부산에서 발생한 김근하(金根夏)군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조작돼 1심에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기철(金基哲)씨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도 끝내 자백을 하지 않은 ?逑?인간으로 필자의 노트에 기록돼 있다. 힘이 장사였던 金씨는 무죄로 풀려난 뒤 11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폐인처럼 살다가 지난 80년 봄에 미혼의 몸으로 40세에 외롭게 요절했다. 튼튼한 몸을 믿고 고문과 너무 용감하게 싸운 죄로 그는 일찍 죽은 셈이다. 필자는 그 1년 뒤 金씨가 최후를 마친 부산시 범천동의 산동네 외딴집을 찾았었다. 이웃사람들에 따르면 金씨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준 재판서류 보따리를 깔고 자거나, 늘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웃사람들 중엔 金씨가 감옥살이를 했다는 것만 가지? 그를 전과자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물증이 없어 풀려났지만 범인이 아닐까?』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겐 재판자료가 좋은 해명자료였기에 金씨는 그토록 애지중지해 온 모양이었다.
이 金씨의 이야기는 1982년에 극작가 윤대성(尹大星)씨에 의해 「신화 1900」이란 연극으로 각색되었다. 정신병동 안에서 일어나는 사이코 드라마, ?극중 극의 형식을 빈 연극이었다.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났으나 자기를 계속 의심하는 세상사람들의 눈 때문에 정신병자가 된 김기창(주인공)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는 정신병자들로 하여금 재판극을 벌이게 한다. 김기창은 이 재판극에서도 살인사건 피고인이 된다. 막판에 가서 김기창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관객석에선 긴장이 풀어지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당위성을 재확인하며 안도한다. 이때 무대에서는 작가와 의사가 재판극의 치료효과를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 자리에 남자 간호원이 나타난다.
『김기창의 시체를 어떻게 할까요?』 의사는 김기창이 자살한 줄 알고는 남자 간호원의 주의태만을 나무란다. 목을 맨 김기창의 시체 그림자가 무대 뒷면에 나타난다. 그 아래서 남자 간호원은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자살한 게 아닙니다. 제가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김기창에게 내린 무죄판결은 잘못 되었어요! 그는 범인임에 틀림없어요. 저는 양심을 걸고 선언합니다. 살인범은 죽어야 합니다』 이 남자 간호원은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
金根夏사건 피고인들이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고 풀려나자 『그래도 저들이 범인이다. 대한민국을 다 뒤져도 다른 범인을 잡지는 못 할 것이다』고 저주한 검사, 그들을 진범이라고 단정했던 기자들, 『그래도 저들이 범인이 아닐까』하고 흘겨본 우리사회의 수많은 눈들이, 법정이 살려준 金基哲씨를 11년간의 정신적 고문 끝에 처형해버린 것이 아닐까.
4중 복합사건의 처참과 기괴
살인범으로 몰려 무기나 사형 구형(또는 선고)을 받았다가 풀려난 사람들은 거의가 金基哲씨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따로 범인이 잡혀 누명을 완벽하게 벗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늘 꺼림칙한 시선들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런 의심에 대해 『나는 신 앞에서도 결백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진실을 입증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객관화될 수 없는, 즉 입증될 수 없는 진실은 인간사회에서는 보편화될 수가 없다.
이런 인간능력의 한계에 부딪쳐 고생하는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는 고숙종(高淑鍾)씨(51·서울 정릉동 거주)일 것이다. 후덕한 맏며느리의 인상을 지닌 高여인은 한국의 수사 및 사법계를 뒤흔든 대사건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경기도 용인에서 의사 아버지의 큰딸로 출생한 高씨는 이화여중고,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1959년에 高씨는 미8군내 은행에 취직했다. 高씨는 이때 서울의 이름난 점술가 윤경화(尹景花)씨의 집을 방문한 게 인연이 되어 중매 6일만에 尹씨의 조카 윤영배(尹泳培)씨와 결혼, 세 딸과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별탈 없이 살아왔다. 남편은 검찰청 계장, 자신은 보험회사 외무사원으로 맞벌이를 하면서 돈은 많지만 혼자인 尹景花씨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다. 그런 高씨가 1981년 8월4일에 처참한 피살체로 발견된 尹景花씨(당시 71세), 가정부 姜炅延양(당시 19세), 양딸 尹수경양(당시 6세)등 3명을 망치로 때려 죽인 피의자로 구속된 것은 8월17일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법사상 유례가 드문 복잡 기괴한 사건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 사건의 특징은 복잡성이다. 살인 현장은 복잡, 처참, 기괴한 난장판이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尹노파의 집은 연건평 60평의 2층 목조건물. 방은 20개나 됐다. 방들마다 불교, 통일교, 무속의 분위기를 풍기는 복잡한 장식물이 뒤엉켜 있었고, 가구들로 꽉 차 있었다. 처음 들어간 사람은 출구를 못 찾을 정도로 복잡했다. 어느 기자는 범인이 면식범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처음 가 본 사람은 그 집안 분위기에 압도돼 달아날 것이다』고 설명할 정도였다.
피살된 지 13일만에, 그것도 한 여름밤에 발견된 3구의 시체는 푹푹 썩고 있었다. 흘러내린 피는 시체 썩은 물과 뒤엉켜 발이 푹푹 빠지는 늪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 들어간 한 형사는 구더기 떼가 몰려들어 종아리를 물어뜯더라고 표현했다. 머리를 난타 당하고 목까지 졸린 3구의 시체들을 그 악취 속에서 제대로 감식한다는 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1, 2심 담당 鄭相明검사는 『현장조사가 부실하고 발견 뒤에 너무 흐트러져 확실한 것은 핏자국뿐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최초의 현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 그 뒤의 사실확정에 큰 어려움을 남겼다』고 말한다. 시체발견 때부터 범인은 면식범이란 소문이 돌았다. 형사들은 수사단서를 빨리 찾아 공을 세우려고 현장감식이 완결되지 않은 집안을 뒤져 복잡한 현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현장의 이 복잡성은 사건의 복잡성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세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 그 자체를 두고 말한다면 尹노파 피살사건, 고문수사와 재판을 중심으로 말할 땐 高淑鍾씨 사건, 尹노파의 예금증서 절취사건을 가리킬 땐 河형사 사건막?일컬어진다. 高씨 일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하여 이긴 손해 배상청구소송까지 친다면 4중복합사건인 셈이다. 이 사건은 그 교훈과 영향력에선 80년대 최대의 강력사건이라 할 만하다. 경찰의 고문풍토에 대해 법원이 무죄선고로써 제동을 걸어 경찰의 수사자세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고 한 형사의 파렴치한 절도행각은 국민의 분노를 샀다. 민·형사 판결 모두가 高씨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를 인정, 고문이 영원히 은폐될 수는 없다는 경종을 울린 것이 이 사건이었다. 『이제는 고문을 하라고 시켜도 못하겠다고 말하는 형사들이 많다』는 어느 수사간부의 이야기는, 高씨가 겪은 고통 덕분에 수많은 피의자들이 덜 괴롭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간의 본질은 尹노파 살해사건이고,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으므로,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더구나 일부 형사·검사들은 무죄 받고 풀려난 高씨를 아직도 의심하고 있고, 재 수사는 포기한 지 오래라 사견해결의 기약도 없다. 『법적으로는 무죄지만 하느님 앞에선 글쎄?』라는 의혹찬 눈길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사람들의 대표 격으로 高淑鍾씨의 문제를 사례로 삼아 그 의혹의 구조를 밝혀 보기로 한다.
** 고숙종씨 사건 일지
● 81. 8. 3 고씨 남편 윤영배(尹泳培)씨가 윤노파 실종신고
● 81. 8. 4 시체 발견(오후 9시)
● 81. 8. 6 경찰, 고씨를 연행
● 81. 8. 9 윤노파 장례식
● 81. 8.13 고씨 범행 자백
● 81. 8.17 경찰, 고씨를 강도살인혐의로 구속
● 81. 8.21 김기현(金基晛) 부장검사, 고씨의 자백 녹음(그레이스호텔)
● 81. 8.24 검찰 송치, 1차 신문
● 81. 8.26 2차 신문, 가족 면회
● 81. 8.28 고씨, 3차 신문부터 범행 부인 시작
● 81. 9.11 검찰, 살인혐의로 기소
● 81. 9.28 1회 공판, 고씨 범행 부인
● 81.10.12 2회 공판(사실 신문)
● 81.10.14 윤노파 예금증서 3장 제일은행 퇴계로지점서 발견
● 81.10.17 예금증서 절취범으로 하영웅(河英雄)형사 구속
● 81.10.30 재판부 현장검증
● 81.11. 2 3회 공판(증인 신문)
● 81.11. 3 고씨, 서울대병원서 신체 감정
● 81.11.16 4회 공판(증인 신문)
● 81.12. 7 5회 공판(증인 신문)
● 81.12.14 재판부, 검찰의 녹음테이프 감정
● 81.12.21 6회 공판(증인 신문)
● 82. 1.11 7회 공판(증인 신문)
● 82. 1.21 8회 사형 구형
● 82. 2. 1 1심 무죄 선고
● 82. 6.10 2심 무죄 선고
● 82. 6.17 고씨 보석 석방
● 85. 2.26 대법원 무죄 확정
● 86. 2. 3 손해배상청구소송 승소 확정
막국수집 주인으로 변신한 河형사
「河형사 사건」의 주인공 하영웅(河英雄)씨(45)는 尹노파의 예금증서를 절취한 죄로 징역 1년6개월을 복역한 뒤 출감, 지금은 서울 남산 근방에서 막국수집을 꾸려가고 있다. 河형사는 千정기, 李부영 형사와 함께 高여인의 신문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8월7일부터 24일까지 高씨를 파출소, 호텔 등지로 데리고 다니며 가혹한 조사를 한 실무자였다. 高씨로부터 최초 자백을 받아낸 공로로 하여 특진대상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 河씨였다. 현장검증 때는 高씨를 호령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장면이 보도사진으로 찍히기도 했었다. 그런 河형사가 尹노파 집에서 나온 예금증서 3개(예금액 5백50만원)를 슬쩍한 뒤 하수인을 시켜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하다가 은행측의 신고로 들통이 난 것이 「河형사 사건」이었다. 은행측이 용산서에 신고했을 때, 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수사차 출동한 것도 河형사였으니 인연치고는 기가 막히다. 경찰은 감독책임을 물어, 尹노파 사건을 해결했다고 축제 분위기 속에 있던 용산서 이상참(李尙漸)서장·김종윤(金鍾潤)수사과장을 해임, 양운석(楊雲錫)형사계장·윤동호(尹童鎬)형사반장을 파면했었다.
지난 11월 말 내가 찾아간 막국수집에서 河씨는 손님들에게 물 잔을 돌리고 있었다. 쟁반을 받쳐든 손이 아무래도 어색해 보였다. 손님의 주문에 큰 소리로 『예, 예』라고 대답하는 河씨의 모습에서 「왕년의 형사」를 찾기란 힘들었다. 악수할 때 잡은 그의 작은 손은 여자 손처럼 부드러웠다. 키가 1백65㎝쯤, 몸무게는 50여㎏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가냘픈 몸집이었다. 내가 고문 이야기를 꺼내니 河씨는 『이 몸으로 高여인 같은 거구의 사람을 어떻게 고문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청 계장의 부인을 설마 고문할 수가 있었겠느냐』고도 했다. 河씨는 『高여인은 저를 봐도 할말이 없을 겁니다』면서 高씨를 아직 의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자백한 날 아침에 高여인은 아침을 먹으면서 말하더군요. 간밤의 꿈에 할머니가 소복을 입고 나왔는데, 이제 다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고요』 河씨와 함께 高씨를 신문했던 千정기 형사(용산서)도 『직접 조사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감(感)』으로써 아직도 그 「믿음」은 변치 않고 있다고 했다.
어느 기자는 『당시 기자회견 때 高씨는 범행을 시인하면서 흐느꼈는데, 그 울음이 양심의 가책【?우러나온 것같이 느껴져 지금도 미심쩍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상명(鄭相明)검사는 『高씨가 金기현 부장검사 앞에서 자백한 것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어보면 말투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도 高씨를 의심하고 있는 이들의 河英雄씨도 그랬지만 이들은 高씨가 범인이 아닐 수 없는 설명은 하지 못하고, 육감을 강조하곤 했다. 이 육감이 과연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는 것인지는, 그런 느낌을 준 高여인의 상태와 그 느낌을 받아 해석한 이들의 주관적 심리상황을 아울러 살펴봐야 할 것이다.
불법감금·잠 안 재우기·물고문
당시 서울지검 북부지청 압수물 계장이었던 윤영배(尹英培)씨는 아내 高씨와는 별도로 검찰 수사관의 신문을 받았다. 7일간 구금 상태에서 혹독한 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 신문의 상황을 엿보게 하는 것은 尹씨가 「내 아내가 범인인 것 같다」는 자술서를 썼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초에 기자와 만난 尹씨는 이렇게 말했다. 『옷을 벗기고 곤봉을 끼운 뒤 무릎을 꿇게 하고 위에서 밟아대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불러주는 대로 썼을 뿐이다. 너의 아내가 같이 했다고 불었으니 너도 불라면서 조지는데 당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아내를 범인이라고 찍을 정도로 당했다면 그 아내가 남편이 검찰청계장이란 이유로 해서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高씨가 경찰에 연행된 것은 8월6일이고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은 그 달 17일이었다. 11일간 高씨는 구속영장 없이 불법감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던 것이다. 수사의 적법절차를 중시하는 외국에서는 범인여부를 물을 필요도 없이 이런 불법감금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죄가 선고된다.
高씨가 호텔 방에서 8월9일에 작성한 자백진술서에는 기재시간이 새벽 1시로 되어 있다. 신문담당자 河英雄씨에 따르면 8월13일 새벽 3시경 高씨를 신문하고 있는데 동료형사가 「패물발견」소식을 알려 왔다고 한다(검찰기록). 河씨는 법정에서 변호인의 질문에 대해서 『피고인이 참선을 해서 며칠 안 자도 괜찮다고 했습니다』고 답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高씨가 법정에서 『수사 경찰관들이 잠을 못 자게 하였다』고 한 진술은 믿을 만하고, 재판부도 그렇게 판단하였다. 잠을 안 재우면 외상은 남지 않지만 그것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더구나 高씨는 가만히 앉아서 잠을 못 잔 것이 아니었다. 8월8일과 9일 이틀만 봐도 高씨는 자필진술서를 12개나 썼다. 변호인 오희택(吳禧澤)씨의 계산에 따르면 高씨는 10여일 동안 모두 80회에 걸쳐 1백여 장의 자술서를 썼다고 한다. 자술서 1백여 장은 원고지 수백 장에 해당하므로 高씨는 단편소설을 몇 개 쓴 셈이다. 잠도 못 자고 집요한 추궁을 받아가면서 비슷한 내용의 진술서를 되풀이 되풀이 쓰는 것이 어떤 고역인가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高씨는 법정에서 이 불법감금 기간에 물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었다. 『…잠도 못 자고, 하영웅·이부영·천정기 등으로부터, 그레이스 호텔 등 수 곳에서 옷을 벗기고, 양손에 수갑을 채운 채, 목욕조에 넣어 코와 얼굴에 물을 마구 붓고, 전신을 때리고 차면서, 너는 상부로부터 정책적으로 다루라는 지시다, 순순히 자백하지 않으면 죽어서 나간다는 등 폭언과 협박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끝에 살려만 준다면 아무 것이나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인생포기의 순간에서 자백을 한 것입니다』(吳禧澤변호사의 1심 변론요지에서 인용),
1, 2, 3심 재판부는 한결같이 高씨의 이 진술을 믿을 만하다고 인정했다. 1심 판결문은 高씨에 대한 신체감정서, 진단서, 같은 방 재소자들의 증언 등을 종합 판단하여 이렇게 지적했다. 「피고인은 경찰에 연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보험회사 외무사원으로 남다른 실적을 올릴 만큼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 高씨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허리, 가슴 등엔 멍이 남아 있었다. 왼쪽 손목뼈가 빠져 있는 것을 같은 방 재소자가 맞추어 주었다고 한다. 검사와 피고인의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에서도 검사가 피고인의 왼쪽 팔에 상처가 있음을 확인한 취지의 부분이 있다. 요추부, 전흉부의 심한 통증으로 허리운동이 어려운 상태, 보행의 지장, 통증이 양쪽 대퇴부 후면 쪽으로 방사통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된다. 구치소에서 그에 대한 치료를 계속 받아왔음이 인정되고 거짓말 탐지기의 시험당시 피고인이 근육통을 호소하여 시험조건에 극히 미달된 상태였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기록 등이 있어 피고인의 진술을 뒷받침하고 있다」
「꼽추가 된」 高여인
吳禧澤변호사는 高씨가 검찰로 송치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직후 高씨를 면담했다. 『고문 받은 흔적이 완연했습니다. 허리를 못 펴 교도관의 부축을 받고 면회장에 들어왔어요. 얼굴은 부어 있었고, 팔목이 멍든 것을 확인했지요. 高씨는 넋이 나간 듯했는데 허깨비가 자주 보인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못할 짓을 했구나, 생사람을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디다. 瀏【?金기현 부장검사를 찾아가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때 서울구치소 직원으로서 수감직후 高씨를 면담했던 ㅎ씨는 『高씨가 몸을 벌벌 떨면서, 나는 안 죽였다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高씨는 검찰조사 때나 공판 때 허리를 펴지 못하고 꼽추처럼 꾸부리고 다녔다. 이에 대해 당시의 신문 담당 형사들은 『高씨가 쇼를 한 것이다. 원래 디스크를 앓아 치료를 받고 있었던 사람이다』고 했다.
吳禧澤씨는 1심의 변론요지서에서 「피고인은 누구나 보듯이 꼽추가 되었습니다. 꼽추가 아니면 저렇게 걸을 수 있나요. 성한 사람이 한번 저렇게 걸어보십시오. 꾀병은 하루 이틀이지 6개월을 앓을 수는 없습니다. 피고인이 고문을 받지 않았더라면 저런 꼽추 같은 몸으로 30분 동안에 尹노파 등 세 명을 망치로 죽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남편도 구타당하고, 피고인의 동생도 공범이라면서 녹음까지 틀어주면서 자백을 강요하였고, 죄 없는 아들 딸 4남매도 모두 불려가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 경을 친 다음 이 공개된 법정에서 어머니에 대해서 증언하면서 억울함을 주장하는 어린 심정을,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는 눈물 없이 못 볼 지경임은, 비단 이 변호인뿐이겠습니까」라고 했다. 高여인을 수사했던 어느 형사는 내가 『어떻게 여자가 세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더구나 가정부는 팔팔한 20대였는데』라고 하자 『高여인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세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필자가 다시 『고문을 받아 허리를 못 썼다는데?』라고 물으니, 『사건 이전부터 高씨는 디스크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디스크로 허리를 못 쓰는 40대 여인이 19세 처녀를 포함한 세 사람을 죽였고, 형사들은 디스크가 있는 줄 알면서도 고문을 했다는 것으로 귀착돼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