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 동안 같은 모양의 집을 같은 방법으로 짓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건축가의 간섭(?)을 받지 않은 건축의 군락을 이루어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경이로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이탈리아 반도 남동쪽 풀리아(Puglia)주의 알베로벨로(Alberobello, 사진)이다. 1천400여채의 까만 고깔모자를 하얀 벽의 트롤리(trulli)라는 집으로 가득 찬,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동네다.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버섯처럼 생긴 독특한 모습의 트롤리에서 활기찬 삶을 꾸려가고 있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 마을은 후세에 남겨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인정받아 196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고, 자연스럽게 남부 이탈리아 제일의 관광지가 된다.

트룰리는 풀리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석회암 주거지로, 선사 시대의 건축 기술이 아직 이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트룰리에는 인접 들판에서 수집한 석회암들을 거칠게 가공한 석회암 슬라브를 내어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린 지붕인 피라미드형, 원통형, 원추형 지붕이 있어 특징적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값싸고 쉬운 집 짓는 방법을 찾는다. 이 지방 어딩서나 땅을 파면 나오는 석회암 판석(板石)을 쌓아 원통형의 벽을 세우고, 그 위에 판석을 내측으로 하나씩 들여쌓으면서 원추형의 지붕을 얹는다. 다시 지붕 꼭대기에 부적 같은 돌로 장식한 후 석회유로 지붕에 문양을 그려놓고 외벽을 하얗게 칠하면 버섯처럼 생긴 집 트롤리 공사가 끝난다.

방 하나에 지붕 하나인 트롤리를 레고(Lego) 놀이처럼 하나 둘 붙여나가면 트롤리(trulli, 트롤리의 복수)가 된다. 용도와 크기에 따라 많은 조합이 가능한 편리한 구조이다. 창고, 주택, 공회당, 교회 모두가 트롤리이다. 트롤리는 상점, 식당, 호텔로 그 기능을 바꾸어 가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이름도 현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나무’인데, 라틴어로는 ‘전투의 나무’라는 완전히 상반된 뜻이다. 또 아랍어가 어원이라는 다른 해석도 있다. 남부 이탈리아는 기원전 8세기부터 이천 수백년에 걸쳐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다양한 민족이 차례로 침략과 약탈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남기고 간 곳이니, 지명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모양이다. 한가롭게 지난 역사를 곱씹어 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남부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음식으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한다. 많은 민족이 남기고 간 음식문화는 풍부한 식재료와 어울려 다양하고 독특한 맛을 제공한다. 풀리아주는 청동기 시대부터 포도주를 생산한 지역이다. 생산량이 많기도 하지만 가격에 비해 훌륭한 맛의 포도주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최고급 올리브유 생산지도 이곳이다. 고급식당으로 개조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트롤리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와인과 요리를 맞보는 호사도 누려본다.

몇 년 전 이른 4월 무척 추웠던 밤, 알베로벨로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옛모습을 유지학 있다고 자랑하는 트롤리 민박에 묵기로 한 것이다. 실내의 벽면은 온통 하얀색이고 바닥은 돌로 깔려있다. 거실, 침실, 부엌을 3개의 트롤 리가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전형적인 트롤리이다. 다락을 통해 돌로 쌓아 만든 원추형 지붕 속이 그대로 보인다.

알베로벨로의 와인

‘여름은 시원하나, 겨울에는 무척 춥습니다. 손님께서 이틀 동안 주무실 침대가 놓은 바로 이곳에서 61년 전 제가 태어났습니다.’ 민박을 운영하는 주인을 설명이다. 귀여운 고깔 지붕에 가려진 옛 농부들의 고달픈 삶을 체험한다. 인정이 깃든 따뜻한 집은 사람의 마음을 밝고 맑게 한다.

夫大珍(건축가)

건축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건축은 오랜 시간을 거쳐 공동체의 여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건축이란 약간 고루하고 따분해야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민초들의 절실한 소망과 힘겨운 삶이 묻어있는 우리의 옛 초가(草家)도, 알베로벨로의 트롤리도, 함께한 삶을 환기시키고 시대정신을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하는 훌륭한 거축이다.

옛 것을 어떻게 지키느냐는 문제는 제쳐놓고, 상품화된 건축만을 양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알베로벨로가 더욱 신기하게 보인다.

알베로벨로의 까만 돌 지붕 위로, 추억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는 초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만든 우리 옛 농촌의 아름다운 모습이 겹쳐 보인다.

글/夫大珍(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