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2000년 3월호

[인터뷰] 최고의 작곡가 金東振 - 좋은 노래 만들려면 좋은 詩 나와야…

金東振(88)씨는 이번 설문조사에서 한사코 응답을 거부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떤 분야든, 무엇을 기준으로 삼든, 「최고」란 없다는 그의 소신을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가장 노력해 썼고 가장 아끼는 곡 「가고파」가 최고의 歌曲으로 선정된 사실에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고파」 열 수 중에 전편 네 편은 열아홉에 작곡하고 나머지 후편은 나 환갑 때, 이은상씨 古稀기념 음악회에 맞춰서 완성했지. 그 많은 실향민들 앞에서 全曲을 다 연주하는데 감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 어쨌거나 내가 제일 공들여 쓴 걸 사람들도 알아주니 고맙네. 다만 더 심혈을 기울여 쓴 건 후편이라 후편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맘이 있어』

그는 오래 전부터 難聽(난청)을 앓고 있어 인터뷰는 筆談(필담)을 섞어 진행되었다.

「최고의 작곡가로 선정되셨습니다」라고 써보였으나, 익숙하다는 건지, 관심이 없다는 것인지, 담담한 반응이었다. 잠시 후 그는 소감이라기보다 自讚(자찬)에 가까운 과거사들을 풀어놓았다.

『「내마음」이라는 곡을 통절가곡으로 썼는데 詩想(시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런 식의 예술가곡은 내가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야. 만주국 건국 10주년 음악회 때, 내가 「양산도」를 오케스트라로 작곡해가지고 한국 대표로 나가서 지휘했는데 호응이 대단했지. 조선반도에 혜성이 나타났다고 그렇게 신문에 났어. 해군 음악대 있을 때, 스웨덴에 가서 「심청전」 한 장면을 연주할 때는 외국 관객들 반응이 굉장했어. 다들 내 오페라로 외국에 진출하면 성공할 거라고 했는데 아직도 공연 한 번 못 나간 게 恨이야 』

「자신의 노래를 가장 잘 소화한 성악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고의 성악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대신이었다. 그는 「가장」이라는 표현에 역시 거부감을 표하더니 간단히 답했다.

『이인범이라고 있었지. 내가 만주 있을 때 내 악보를 받아다가 한국에 퍼뜨린 사람… 가고파 全曲을 녹음하기도 했어. 팽재유, 김호용이도 잘 불렀고… 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내 노래를 잘하지』

「후배 작곡가 중에 실력이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습니까」 「최고의 작곡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역시 그는 둘러 대답했다.

『후배라기보다 내 제자 중에 이수인이라고 있는데 아주 유망했지. 그리고 대중음악 쪽이지만 정풍송이도 노래가 품위 있고 좋아』

─우리 가곡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이 시점에서 우리 가곡의 앞날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좋은 노래 만들려고 해도 좋은 詩가 없어. 현대시가 문제야. 그리고 작곡분야에서 천재가 나와야 하는데, 천재는 둘째치고 다들 현대음악, 외국음악만 하니 작곡할 사람이 있어야지. 詩도 중요하지만 선율이 더 중요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 우선 아름다운 선율이거든…』

얘기가 그의 필생의 話頭(화두)인 新唱樂(신창악) 쪽으로 흐르자 그의 말수가 많아졌다.

『지난번 이북서 농구단 따라 교예단이 왔을 때 정말 감탄했어. 전통 놀이문화를 현대적, 예술적으로 기가 막히게 발전시킨 거 아닌가. 우리는 옛날 그대로인데….우리네 문제는 국가적으로 문화정책이 뒷받침 안해준다는 거야. 생활 문제가 안되다보니 누가 신창악이니 뭐니 새로운 분야에 목매달겠나. 이태리 가곡이나 불러야 먹고 살지』

─설문에 참여한 음악인들이 생각보다 신창악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너무 어렵다고도 하셨습니다.

『예술이란 게 최고 경지에 오를 때까지 가고 또 가는 거야. 신창악이 어렵다고 하는데, 수십년 부르고 또 불러도 안될 판에 단시일 내에 그런 말 할 수 없지. 나도 작품은 있는데 연기자(성악가)가 없어서 힘들어』

『최근 근황을 좀…』 하는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엄청나게 두꺼운 악보집 한권을 올려놓았다. 「文化世界創造(문화세계 창조)」라는 제목의 칸타타(交聲曲) 악보집이었다. 완성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연주를 하지 못해 조급한 눈치였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게 중심 생각이고, 광복부터 분단조국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노래하면서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고 평화롭게 화합하자는 노래야. 베토벤이 귀가 안 들린 채로 마지막 교향곡을 완성했다는데 나한테도 이게 최후의 大作이 될 거 같애』

올해 88세, 심한 난청임에도 불구하고 작년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날아가서 「가고파」 全曲을 직접 지휘 연주할 정도로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정정함의 비결은 小食(소식)하고 하루 3천 보씩 걷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