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불안전(不安全) 자동차의 내막
같은 건수의 교통 사고에서도 왜 서울 택시는 도오꾜의 다섯 배나 되는 치사율을 내는가. 포니의 옆구리와 봉고의 정면은 얼마나 위험한가. 2만 대의 현대 스텔라 및 거화 지프차를 왜 불러들였는가. 한국 자동차의 결함, 그것을 방관하는 정부의 무능을 폭로한다.

<1984년 11월 월간조선>


한국 자동차, 정말 무죄인가

우리 나라에선 교통사고로 매일 18명이 죽고 4백19명이 다친다. 재산피해로 만도 약 6천만 원씩 날아간다. 해마다 춘천시 인구만큼 죽고, 부상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도로」라는 정글에서 「자동차」라는 맹수는 약 5만 명을 죽였고 약 1백만 명을 다치게 했다. 자동차 1만대 당 사망자수에서 한국은 일본의 25배, 미국의 17배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 국이란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듣고 있다. 사고발생률뿐만 아니다. 사고 건당 사망률 또한 「이상하게」높다.

한국은 사고 1건당 사망률(0.055명)에서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 서독의 약 1.7배다. 부상자에 대한 사망자의 비율(부상 23명에 사망자 1명)도 일본의 3.5배, 미국의 3배, 서독의 2배다. 사고 건당 사망자가 이처럼 높은 데는 승차인원이 많은데다가 우리 나라 자동차의 차체가 약하고 내부 구조가 사람을 잘 다치게 한다는 요인도 관련돼 있다. 양과 질에서 세계의 선두를 달리는 한국의 교통사고. 그 책임은 늘 운전자, 보행자, 정비사에만 돌아갔다. 치안본부의 83년 사고원인 분석에 따르면 운전자 과실 93.6%, 정비 불량 0.05%, 피해자(주로 보행자)과실 6.35%로 나타나 있다.

지난해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자동차의 결함, 즉 ┒?회사측에게 사고의 책임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 경찰에선 자동차의 결함을 원인분석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켜 놓고 있다. 교통사고 원인 조사자들은 「자동차란 기계는 원래 완전무결한 것이다」는 선입감 아래에서 그것을 다루는 사람만 추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숱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주체인 자동차를 만든 회사는 문서상으로 홀로 결백하다.

「죽일 ×은 운전자·정비사·보행자」이고 메이커는 절대로 잘못을 범할 수 없는 초월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안다. 택시의 앞자리에 타기 싫고, 부딪치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는 승용차의 몸뚱아리, 정면 충돌했다 하면 몰사, 측면 충돌했다 하면 두 동강 나는 차체, 화염에 휩싸인 자동차…. 문서상의 결백 증명과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이 불안감 사이의 거리. 그 틈새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의문이 있다. 한국의 자동차는 정말 무죄인가?

거화(巨和) 지프차 2천대 리콜 소동

미국이나 일본 같으면 온 나라가 떠들썩할 사고도 조용하게 넘어가 버리는 게 한국의 자동차업계다. 지난 5∼9월말 사이 지프차 전문 메이커인 거화(주)는 83년 1월∼84년 7월 사이에 출고, 판매된 1천9백83대의 지프차(모든 차종)를 대상으로 소환작업을 실시, 10만원 짜리 뒷바퀴 축(Rear Axle Shaft)을 바꿔주고 있다. 업계에서 리콜(Recall)이라고 불리는 이 「소환」작업으로 약 2억원이 날아간 셈이다. 문제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5월1일 오후 3시30분께 경북 구미시 사곡동 경부고속도로에서 수원 건형건설 직원 李모씨(29)는 2시간30분전에 부산의 거화(주) 공장에서 출고 받은 새 지프차를 몰고 시속 70㎞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왼쪽 뒷바퀴 쪽이 푹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타이어가 터진 줄 알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순간 지프차는 비틀거리더니 도로를 이탈, 4m 언덕 아래로 처박혔다. 李씨와 다른 승객 한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타이어 펑크가 아니었다. 왼쪽 뒷바퀴가 통째로 빠져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뒷바퀴축의 끝이 바퀴와 물리는 부분(원통형)이 있는데, 이것이 부러져 구르던 바퀴가 빠져나가 버린 것이었다. 대구지검 김천지청 정(鄭)노찬 검사의 수사 결과, 이 철제 바퀴 축은 사고 이전부터 금이 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바퀴 축을 납품한 회사는 인천에 있는 코리아 스파이서(주)였다. 미국의 데이너 사와 자본 합작, 차축·바퀴축 등을 만들고 있는 스파이서 사는 약 6백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한해 약 6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자동차 부품회사다. 거화(주)에서는 사고가 나자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 83년4∼84년8월말 사이에 출고된 지프차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소유자에게 서신, 전화 등으로 연락, 6백50대를 소환, 뒷바퀴 축을 갈아 끼웠다. 거화에서는 그래도 안심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제2차 소환 작업을 결심, 리콜의 범위를 83년1∼84년7월 출고 분으로 넓게 잡았다. 9월21일 현재까지 9백65대를 추가로 소환, 바퀴 축을 교환했다. 한 대의 사고로 약 2천 대를 소환한 것은 자동차 부품 및 완성 차 검사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었다. 철제 바퀴축의 원 소재는 주로 삼미특수강(주)에서 생산된다. 코리아 스파이서 제조 기술부 이종률 차장은 「바퀴 축 제작에는 탄소강을 쓰는데 국산은 강도에 영향을 주는 탄소 망간 등 성분의 함유율이 균일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스파이서 사의 밑에 있는 단조(鍛造) 회사에선 원 소재를 단조하여 스파이서에 납품한다. 스파이서에선 이 단조물을 가공, 조립하여 바퀴 축으로 만든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여러 번 검사가 있어야 한다. 원소재, 단조물, 가공 단계의 검사를 거쳐 스파이서가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기 직전에 정밀 검사를 또 해야 한다. 납품 받은 거화에서도 검사를 해야 하는데, 검사 장비의 부족으로 거의 육안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수사를 맡고 있는 鄭노찬 검사에 따르면 부품에 대한 개별적 검사가 없어 사고 난 바퀴 축이 납품 이전에 균열이 가 있었는지, 납품 이후 거화에서의 조립 과정에서 균열이 생겼는지 밝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련의 검사과정이 허술하여 불량품의 개입을 체크해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완성 차에 대한 출고 직전의 검사는 형식상 실시되었으나 이미 조립된 상태에서 부품 결함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화에서는 불량으로 의심이 가는 바퀴축의 대상을 완성차 출고기간을 기준, 1년6개월 분으로 넓게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일단 거화의 검사 담당자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입건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아마도 자동차의 결함으로 메이커 측이 형사입건 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한국자동차산업 구조 자체가 형사입건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경찰의 사고조사 풍토에서는 만약 문제의 거화 지프차가 출고 직후가 아니고 몇 달 뒤에 그런 사고를 냈다면 차량 결함이 아닌 정비불량으로 처리되었을 게 거의 틀림없다. 치안본부가 펴낸 84년도 상반기 교통사고 원인분석자료에도 거화 지프사고는 자동차 결함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을 정도이니까.

<사진 p267, 교환소동 빚은 거화 지프차의 뒷바퀴 축>

스텔라 볼 조인트 결함, 1천대 소환

현대자동차(주)도 지난 5월부터 「조용하게」, 말썽 많은 스텔라의 리콜작업을 또 펴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뒷바퀴 축만큼이나 안전에 중요한 볼 조인트(Ball Joint). 이 부품은 핸들의 조작을 앞바퀴에 전달하고 앞바퀴의 운동 기준점이 된다. 발이 바퀴라면 볼 조인트는 무릎 관절에 해당한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4월. 어느 스텔라 운전자는 서울강남구 개포동에서 경부고속도로 입구로 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핸들이 뻑뻑해지면서 조작이 되지 않는 데 놀랐다. 스텔라는 톨게이트 진입로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현대의 정비팀이 달려왔다. 볼 조인트는 엄지손가락 만한 쇠 볼을 소키트가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이 소키트가 깨져 있었다. 소키트가 깨지면 볼 조인트가 헐렁해져 핸들의 조작이 바퀴로 전달되지 않아 주행이 불가능해진다. 무릎 관절뼈가 으깨지는 것과 같다. 고속주행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방향이 잡히지 않아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현대 정비팀에서는 일단 볼 조인트가 깨진 것은 문제의 스텔라가 요철이 심한 길을 달리다가 충격을 받은 때문이라고 해석했지만 이미 출고된 스텔라에 대한 표본 추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결함이 발견되었다.

볼을 감싸고 있는 소키트가 너무 빨리 닳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문제의 볼 조인트는 부산에 있는 한국 센트랄(주)이 만든 것이었다. 이 회사도 종업원 2백50여 명을 데리고 있는 비교적 큰 부품회사다. 추적 조사로 의심이 가는 볼 조인트들은 지난 82년 10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자동차에선 이 로트(Lot 한 단위의 공정)의 볼 조인트를 사용한 스텔라가 83년 하반기에 출고된 1천2백여 대 임을 알아냈다. 그 가운데 약 1백 대는 이미 유럽 지역에 수출되어 있었다.

현대에선 외국 바이어에게 긴급 통지하는 한편 국내 차주들에게는 등기 편지를 보내 자동차 소환 및 부품 교환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다. 양쪽 앞바퀴의 볼 조인트 네 개를 갈아주는 데 약 3만 원이 드니까 약 3천6백만 원을 손해보게 되었다. 현대에선 볼을 감싸는 소키트 부분에 대한 열처리가 잘못되어 너무 무르게 만들어진 것이 결함의 원인인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왜 미리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란 물음에 대해서는 「부품 메이커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는 답이었다.

<사진 p268, 리콜소동을 일으킨 스텔라의 볼 조인트>

배선결함, 스텔라 1만5천대 소환

스텔라에 대한 리콜은 볼 조인트가 사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중형승용차 스텔라는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켰다. 빗물이 새어든다, 소음이 많다…. 가장 큰 파문은 불이었다. 달리던 스텔라 차 중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는 기사나 화면이 몇 번 보도되자 판매량도 떨어졌다. 현대에선 원인 조사에 나섰다. 「배터리에서 나오는 여러 가닥의 전선은 얇은 비닐로 묶여져 차체 내를 지나간다. 차체가 흔들리면 이 전선 묶음이 차체와 마찰을 일으킨다. 전선 가닥을 싼 비닐이 벗겨지고 심하면 전선도 벗겨져 버린다. 벗겨진 전선은 전도체인 차체와 닿아 합선 현상을 일으켜 불을 낸다」

대강 이런 원인을 밝혀낸 현대에서는 지난겨울 굴러다니고 있는 1만5천2백 대의 스텔라를 소환, 배터리 배선을 개선했다. 즉, 전선 묶음을 튼튼한 PVC 관으로 싸고 흔들리지 않도록 곳곳에서 고정을 시켜주었다. 합선이 일어났을 때 전류가 자동적으로 끊어지도록 퓨즈도 달아 주었다. 이 「소환 수리」는 우리 나라 자동차산업사상 최대 규모였을 것이다. 현대 측에선 「스텔라만 불이 난 게 아니고 대우에서 만든 승용차에서도 이렇게 불이 자주 났다」면서 리스트를 내 놓았다. 올해 들어 주행 중, 주차 중, 또는 충돌 사고 때 불이 난 대우승용차는 현대에서 확인한 것만도 12대란 것이었다.

이에 대해 대우에선 「우리 승용차의 화재원인은 모두 출고 후 운전자가 멋대로 연결한 전선에서 합선이 생긴 때문이다」고 했다. 충분한 사전 시험을 거치지 않고 시판된 스텔라는 이 밖에도 또 한번의 리콜을 겪었다. 앞 뒤 바퀴를 잇는 프로펠러 샤프트, 즉 차 축의 한가운데에는 센터 베아링이란 게 있다. 차 축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센터 베아링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그리스가 말썽이었다. 이 그리스는 영하 35도에 굳어져야 하는데 지난 겨울의 혹한 때문인지 영하 15도 근방에서도 얼어버렸다.

이 때문에 베아링이 제 기능(차축을 돌려주는)을 하지 못하고 차 축과 함께 따라 도는 형편이 돼버렸다. 끽끽 소리가 나고 주행에도 방해가 되었다. 차 축은 거화에 뒷바퀴 축을 납품했던 코리아 스파이서가 만든 것이었으나 센터 베아링은 다른 하청회사에서 납품한 것을 스파이서가 받아 차 축과 조립한 것이었다. 현대는 약 2천 대의 스텔라를 소환, 센터 베아링을 바꿔 주었다. 스텔라는 시판된 지 1년만에 세 차례의 소환을 당한 것이다. 이런 리콜은 사고의 위험이 있어 다급할 때 하는 것이고 소소한 말썽은 더 많았다. 문화교통의 서울1바8072 영업용 스텔라 운전사는 「여덟 달 전에 산 차인데 앞바퀴 베아링에 이상이 있어 떼 내 보았더니 베아링에 그리스가 쳐져 있지 않았다. 그대로 달리면 바퀴가 달아날 염려가 있어 베아링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운전자가 실험 대상?

현대 자동차서비스(주) 서울사업소장 김상무(金祥武)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 스텔라가 선을 뵈자마자 이걸 서로 사려고 백을 동원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서둘러 만들다가보니 배선이라든지 수밀(水密)작업에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대의 다른 실무자는 「솔직히 말해서 시험을 충분히 하지 않고 급하게 차를 시장에 내 놓다가 보니 부작용이 생긴 것 같다」고 실토했다. 그래도 현대는 84년1월에 스텔라가 포니(76년)에 이어 영국의 마이러(MIRA·유럽 공인 자동차테스트 기관) 시험에 합격, 유럽 지역에의 수출이 가능해졌고 안전성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고 대대적인 광고캠페인을 벌였다.

이어서 울산에 현대자동차 직속의 종합주행시험장(공사비 1백80억원·25만 평)을 완공했다고 선전했다. 뒤쪽으로는 「소환 수리 작업」으로 진땀을 빼면서도 앞쪽으로는 안전성 홍보 작전을 맹렬히 편 것이다. 현대 측은 종합 주행 시험장에 관한 홍보자료에서 「자동차의 신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양산하기 전 여러 단계의 시작차(試作車)에 대한 제반 성능을 엄격히 실험해야 안전한 차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 이렇게 밝혔다.

「지금까지는 3만 평 규모의 재래식 시험장으로는 직선·선회 시험로, 수밀 시험로 등 기초적인 시험밖에 할 수 없었으므로 비행장, 고속도로, 시골길로 차를 몰고 가서 하거나 외국으로 차를 보내어 테스트를 받아야만 했다. 외국에서 테스트를 받아와도 자체 내에 시험장이 없다는 사실이 국제시장에서 약점이 되었다」새 차를 개발, 시판하기 전에는 수백 대의 시작차를 충돌 시험으로 부수어야 한다. 수백만㎞의 주행시험도 해야 한다. 시설 부족으로 현대는 이런 시험을 포니나 스텔라에 대해 충분히 할 수 없었음을 스스로 털어놓고 있다.

포니와 스텔라가 합격한 캐나다나 유럽의 자동차 안전 기준은 일본·미국에 비해 느슨하다. 자동차 몇 대가 합격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굴러다니는 수십만 대의 차가 모두 안전하다는 얘기가 아님은 스텔라가 영국에서 테스트에 합격한 바로 그 시기에 국내에선 리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더구나 현대의 수출차와 국내 시판차는 안전 설계나 장비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현대 측도 실토하듯 충분한 시험을 거치지 않고 국내시장으로 쏟아놓은 자동차의 진짜 시험을 해주고 있는 것은 한국의 순진한 운전자들이다. 이 실행 시험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들을 현대(현대보다 시험 설비가 훨씬 모자라는 다른 자동차 메이커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바로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진짜 시험」에서 몇 사람의 목숨이 희생됐는지, 지금의 사고조사 제도에선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카 북」이란 미국의 자동차 편람은 자동차 구매요령의 첫 번째로 「새 모델 차를 피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새 모델의 결점이 보완되는 데는 4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일본 자동차업계에선 새 모델 차를 먼저 후진국에 수출, 결점을 관찰, 보완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대는 몇 년 전에 「브레이크 캘리퍼」라는 부품에 대해 포니의 리콜작업을 벌인 적이 있다. 제동장치의 핵심부품인 캘리퍼는 프랑스의 걸링회사가 공급하고 있었는데 균열 위험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지난 77년 정초에는 약 2백 대의 포니가 긴급 소환된 적이 있었다. 타이어를 바퀴 축에 고정시키는 네 개의 볼트가 약하게 만들어져 주행 중 볼트가 부러지면서 바퀴가 달아날 위험이 있음이 밝혀졌었다. 현대에선 E금속 회사에서 납품한 이 볼트를 끼운 포니 2백 대가 이미 시판되었음을 확인, 정초의 연휴 기간에 직원들을 동원, 포니를 모두 리콜, 사고를 막았었다.

외국에선 위험 공지(公知) 의무

위에서 예로 든 리콜 작업은 자동차의 안전성에 대한 업계, 관청, 소비자의 관심이 어떤 수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비관리 부장 정달옥(鄭達玉)씨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는 등기 우편으로 차주에게 리콜 사유를 긴급히 통지하고 라디오나 신문을 통해서 이 사실을 공지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고가 나더라도 메이커 측은 면책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 경영층에서도 광고를 내자고 하지만 실무자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내면 자동차 회사에서 잘한다고 믿어 주는 사람보다는 욕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니까요. 우리 사장께서는 그런 소비자를 계몽하는 것도 기업의 책임이라고 하십니다만…」

뒷바퀴 축, 볼 조인트, 볼트 등은 자동차의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여기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절대로 쉬쉬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콜레라나 독감의 상륙을 널리 알리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빨리, 널리 알려야 할 문제다. 인명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자동차를 「달리는 흉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자동차의 결함은 전염병과 다름이 없다. 문제의 자동차 주인에게 등기편지 보내는 것만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결함 자동차의 존재를 알아야 할 사람은 차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탑승자나 그런 「잠재적 위험물」에 접근하는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도 알 권리가 있다.

한국업계에선 그저 조용하게만 처리하고 있다. 자동차리콜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규정이 없으므로, 자동차 회사 직원이 「사실은 등기 편지를 보내는 것도 우리의 의무는 아니지만…」이라고 생색을 낼 수 있는 풍토가 돼 있다. 「자동차 결함으로 아직 사고가 난 적이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고속주행 중 갑자기 볼 조인트가 망가진 스텔라가 중앙선을 넘어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 해도, 걸레처럼 찢어진 차체 속에서 진짜 사고 원인을 밝힐 제도도, 장비도, 인력도, 의지도 없는 것이 우리 경찰이다.

경찰은 사고 원인보다는 형사상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 한국의 자동차업계는 안전성 문제에 관한 한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성역 속에 있다. 스스로 알아서 만들고, 알아서 검사하고, 결함이 있으면 알아서 리콜하면 되지 관청의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어 있다. 제도가 이러하므로 소비자들도 사고가 나면 메이커를 탓하기는커녕 「나의 숙명이다」고 체념해버리는 버릇을 갖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를 견제할 관청의 힘도, 소비자의 권리 의식도 없다면 자동차의 안전성은 기업의 윤리의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윤리가 과연 얼마나 튼튼할까? 위에서 거론한 리콜 사례는 또 우리 나라 자동차 부품 공업의 낮은 수준을 입증하고 있다. 결함 부품을 만든 회사는 모두가 한국의 대표적 부품업체인데도 그 모양이었다. 자동차 안전은 또 메이커나 부품업계만 잘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철강·고무 등 소재 공업의 수준이 함께 높아지지 않으면 불량부품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