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인조실록)을 살펴보면 1623년 인조가 반정 성공으로 광해군을 밀어내고 보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1627년 1월 17일 처음 '정묘호란'의 서막을 알리는 기록이 나온다.<(후)금나라가 침입하자 대책을 논의하다> 그리고 이틀후(19일) <강(화)도로 파천할 것을 하교하다>라며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상(임금)이 장유에게 명하여 애통한 교서를 지어서 올리도록 하였다.
   왕은 말하노라. 아! 국가에 치란흥망(治亂興亡)이 있는 것은 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된 까닭을 추구해 보면 언제고 한 사람 임금의 잘하고 잘못한 것에 연유하지 않음이 없다. 나는 이치를 환히 알 만큼 현명하지도 못하고 사물에 은택이 미칠 만큼 어질지도 못하고, 사람을 감동시킬 만큼 신의롭지도 못하고 난리를 제압할 만큼 무예롭지도 못하다. 정사를 펼치고 일을 도모하다 보면 번번이 도리에 어긋났고, 부역은 번거롭고 무거워 백성과 군병들은 피곤에 지쳐 있다. - 後略 - >
  
  아마 인조가 직접 쓴(지은) 것으로 보인다. 아랫 사람이 이런 글을 써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길게 이어지는 이 교서를 살펴보면 인조의 성품은 심지가 깊고 처신이 반듯한 반면 정국 장악력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붕당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상과 반정 주도세력들 때문에 권력이 안정되지 않은 측면이 클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927년 1월 26일, 인조는 한강을 건너 노량을 지나 양천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 김포를 거쳐 강화도로 피신하게 된다. 이를 '정묘호란'이라 하고, 이때 후금과 조선은 형제국이라는 협약을 맺었으니 '정묘조약'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형님나라로 조약은 맺었지만 명나라를 숭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으니 이후로도 후금에 쫓기는 명나라 잔존세력을 틈틈이 지원했다. 이를 후금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후금은 우선 명나라를 정벌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후금은 명나라를 몰아내고 이름을 청나라로 정하고 명실공히 중국의 새 주인이 되었다. 한숨 돌린 후 전열을 정비하여 그동안 명나라를 치는데 훼방을 놓아 발톱 밑에 가시같던 조선을 도모하기로 한다. 자기와 형제국으로 맹약까지 해 놓고도 여전히 명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청태종이 직접 용골대와 마부태 등 두 장수를 선봉장으로 하여 12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진격로 주변의 성들은 공격하지도 않고 곧바로 한성으로 직행했다. 조선 조정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1637년 1월 3일 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홍서봉 등이 오랑케 진영에 가지고 간 국서>
  
  < - 前略 - 지난날의 일에 대한 죄는 소방(小國의 다른말)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으면 정벌했다가 죄를 깨달으면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천심(天心)을 체득하여 만물을 포용하는 대국이 취하는 행동이라 할 것입니다. 만일 정묘년에 하늘을 두고 맹서한 언약을 생각하고 소방 생령의 목숨을 가엾이 여겨 소방으로 하여금 계책을 바꾸어 스스로 새롭게 하도록 용납한다면, 소방이 마음을 씻고 종사(從事)하는 것이 오늘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동안 형님國을 괴롭혀 왔으나 부디 한 번만 그 죄를 용서해 주면 앞으로는 잘 따르겠다는 간절한 읍소의 국서를 보냈다. 실록에는 그들을 여전히 '오랑캐'라고 지칭했다. 면종복배(面從腹背)는 분위기로도 느낄 수 있다. 청태종은 이 국서를 받고는 묵묵부답이었다.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짓누루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조정은 다시 국서를 써 보낸다. 11일이다.
  
  <지난번에 소방의 재신(宰臣)이 군문(軍門)에 글을 올려 품청(稟請)하였는데, 황제로부터 장차 후명(後命)이 있을 것이라고 돌아와서 말하기에, 소방의 군신(君臣)은 발돋움하고 목을 빼어 날마다 덕음(德音)을 기다렸으나 지금 열흘이 지나도록 분명한 회답이 없습니다. 이에 곤궁하고 사정이 급박하여 다시 아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황제께서는 살펴 주소서. - 後略 - >
  
  읽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참으로 구차스럽다. 그러나 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산성에는 이미 얼어죽는 군졸이 나오고 남은 식량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초조하게 기다리기를 엿새, (17일)드디어 청황제가 글을 보내왔다. 허나 믿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 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오랑캐가 황제의 글을 보냈는데 '조선국왕에게 조유(명령)하다'고 하다>
  
  <짐(朕)이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그대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고 그대 백성을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치의 곡직(曲直)을 따지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천지의 도는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화를 내리는 법이다. - 中略 -
   지금 그대가 살고 싶다면 빨리 성에서 나와 귀순하고, 싸우고 싶다면 또한 속히 일전을 벌이도록 하라. 양국의 군사가 서로 싸우다 보면 하늘이 자연 처분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숨 막히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3일 후인 20일, 청 황제의 비답이 내려왔다.
  
  <오랑캐가 답서를 보내어 '화친을 배격한 신하를 묶어 보내라' 하다>
  
  <그대가 하늘의 명을 어기고 맹세를 배반하였기에 짐이 매우 노엽게 여겨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왔으니 뜻이 용서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대가 외로운 성을 고달프게 지키며 짐이 직접 준절하게 책망한 조서(詔書)를 보고 바야흐로 죄를 뉘우칠 줄 알아 여러 번 글을 올려 면하기를 원했으므로, 짐이 넓은 도량을 베풀어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허락하는 바이다. - 中略 -
   그러나 그대가 만약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간절하게 빌고 청하더라도 짐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유시한다.>
  
  이에 이튿날(21일) 조정에서 다시 국서를 보낸다.
  
  <이홍주 등을 통해 보낸 국서>
  
  <국왕 신 성휘(姓諱/성을 밝힐수도 없는 미물)는 삼가 대청국(大淸國)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 폐하에게 글을 올립니다. 신이 하늘에 죄를 얻어 외로운 성에서 고달프게 지내면서 곧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여러 번 서소(書疏)를 올려 스스로 새롭게 되는 길을 찾았습니다만, 실제로 감히 크게 노여워하시는 하늘에 꼭 용서받으리라고 확신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은혜로운 유지(諭旨)를 받들건대 지난 날의 잘못을 모두 용서하여 추상(秋霜)같은 엄숙한 위엄을 늦추시고 양춘(陽春)같은 혜택을 베푸심으로써 장차 동방 수천 리의 백성들로 하여금 수화(水火) 가운데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니, 어찌 한 성(城)의 목숨만 연장되는 것이겠습니까. 군신 부자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보답해야 될지를 모를 것입니다. - 中略 -
   이제 폐하께서 바야흐로 군신의 대의로 한 세대를 감화시킨다면, 이와 같은 무리도 당연히 불쌍히 여겨 용서하는 가운데 포함시켜야 될 듯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폐하께서 하늘과 같은 도량으로 이미 국군(國君)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이상, 보잘것없는 이들 소신(小臣)을 곧바로 소방의 정형(政形)으로 다스리도록 회부해 주신다면, 관대한 덕이 더욱 나타날 것이기에 아울러 어리석은 견해를 진달하며 폐하의 결재를 기다립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숭덕(崇德) 모년 월 일.>
  
  세상에 이보다 구차스러울 정도로 간절한 글은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국서는 청황제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용골대(청나라 장수)가 '그대 나라가 답한 것은 황제의 글 내용과 틀리기 때문에 받지 않는다.'며 돌려 보냈다. 조정은 다시 분주해졌다. 이런 기록들이 있다
  
  <사간 이명웅이 청대하여 자신을 묶어 보낼 것을 청하다>
  <김수현 등이 결전의 내용의 글을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정부가 화친을 배척한 자에게 자수하도록 하다>
  <세자가 성을 나가겠다는 내용의 봉서를 비국(비변사)에 내리다>
  <이조참판 정온이 차자(간단한 상소)하여 자신을 묶어 보내길 청하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죽게 해 줄 것을 청하다>
  <세자를 오랑케 진영에 나가게 하도록 영을 내렸으나 묘당이 수행하지 않다>
  <전 교리 윤집과 전 수찬 오달제가 상소하여 오랑캐에게 가서 죽을 것을 청하다>
  <시강원 설서 유계의 적극 싸울 것을 청한 상소문>
  <화친 배척한 신하를 내 보내겠다는 국서>
  
  이어 1월 27일
  
  <(청)황제의 약속을 확인하려는 국서>
  
  <신은 성지를 받들고서부터 천지처럼 포용하고 덮어 주는 큰 덕에 더욱 감격하여 귀순하려는 마음이 가슴 속에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신 자신을 살펴보건대 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폐하의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게 드러남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서를 내림에 황천(皇天)을 내려다 보는 듯하여 두려운 마음을 품은 채 여러 날 머뭇거리느라 앉아서 회피하고 게을리하는 죄만 쌓게 되었습니다. 이제 듣건대 폐하께서 곧 돌아가실 것이라 하는데, 만약 일찍 스스로 나아가서 용광(龍光)을 우러러 뵙지 않는다면, 조그마한 정성도 펼 수 없게 될 것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신이 바야흐로 3백 년 동안 지켜온 종사(宗社)와 수천 리의 생령(生靈)을 폐하에게 우러러 의탁하게 되었으니 정리(情理)상 실로 애처로운 점이 있습니다. 만약 혹시라도 일이 어긋난다면 차라리 칼로 자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자(聖慈)께서는 진심에서 나오는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조지(詔旨)를 분명하게 내려 신이 안심하고 귀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소서>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皇天을 내려다 보는 듯한 두려운 마음을 안고 남한산성 문을 열고 나왔다.
  
  <삼전도에서 3배9고두례를 행하다>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가 성 밖에 와서 상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藍染衣/쪽빛 평민복))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侍從)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백관으로 뒤쳐진 자는 서문 안에 서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였다. 상이 산에서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얼마 뒤에 갑옷을 입은 청나라 군사 수백 기(騎)가 달려 왔다. 상이 이르기를,
   “이들은 뭐하는 자들인가?”
   하니, 도승지 이경직이 대답하기를,
   “이는 우리 나라에서 말하는 영접하는 자들인 듯합니다.”
   하였다. 한참 뒤에 용골대 등이 왔는데, 상(임금)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아 두 번 읍(揖)하는 예를 행하고 동서(東西)로 나누어 앉았다. 용골대 등이 위로하니, 상이 답하기를,
   “오늘의 일은 오로지 황제의 말과 두 대인이 힘써준 것만을 믿을 뿐입니다.”
   하자, 용골대가 말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시간이 이미 늦었으니 속히 갔으면 합니다.”
   하고, 마침내 말을 달려 앞에서 인도하였다. 상이 단지 삼공 및 판서·승지 각 5인, 한림(翰林)·주서(注書) 각 1인을 거느렸으며, 세자는 시강원(侍講院)·익위사(翊衛司)의 제관(諸官)을 거느리고 삼전도(三田渡)에 따라 나아갔다. 멀리 바라보니 한(汗)이 황옥(黃屋)을 펼치고 앉아 있고 갑옷과 투구 차림에 활과 칼을 휴대한 자가 방진(方陣)을 치고 좌우에 옹립(擁立)하였으며, 악기를 진열하여 연주했는데, 대략 중국 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상이 걸어서 진(陣) 앞에 이르고, 용골대 등이 상을 진문(陣門) 동쪽에 머물게 하였다. 용골대가 들어가 보고하고 나와 한의 말을 전하기를,
  
  “지난날의 일을 말하려 하면 길다. 이제 용단을 내려 왔으니 매우 다행스럽고 기쁘다.”
   하자, 상이 대답하기를,
   “천은(天恩)이 망극합니다.”
   하였다. 용골대 등이 인도하여 들어가 단(壇)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하고 상(임금)에게 자리로 나가기를 청하였는데, 청나라 사람을 시켜 여창(臚唱/큰소리로 순서를 말하다)하게 하였다. 상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三拜九敲頭禮)를 행하였다. - 後略 - >
  
  [三拜九敲頭禮 :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한 항복례로 세 번 절하면서 한 번 절할 때마다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치는 것을 세 번씩 했다. 이 때 반드시 머리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나야 한다. 청태종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다시 할 것을 요구해 인조는 사실상 수십 번 머리를 부딪쳤고 이에 인조의 이마는 피투성이가 되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
  
  이 때부터 청나라와 조선은 이전의 형님과 아우의 나라에서 황제국과 제후국으로 관계가 바뀌었다. 물론 매년 조공을 바쳐야 했다. 이 관계는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1895년까지 무려 258년간 이어져 왔다. 시모노세키조약의 제1조가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