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이미 붉게 물든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니노시마 섬(히로시마 만에 위치한 작은 섬)을 자전거로 일주하다가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육지로 나가는 선박의 출발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정확한 뱃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조그만 가게 앞에 멈춰섰다. 마지막 배편이 막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순간 우리 얼굴은 死色이 됐다.

“지름갈로 가면 뱃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한 일본인 남자가 밖으로 나와 조그마한 산에 나있는 길을 가리켰다. 해가 지고 어둠이 빠르게 내려왔다. 우리는 걱정에 휩싸였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내달렸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었던 일본인이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일정거리를 유지하면서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는 우리가 선착장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 돌아갔다. 일본인의 댓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善行)으로 우리 일행은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 경험한 일본인의 ‘오모테나시('誠心을 다해 손님을 모신다'는 의미)’였다. ‘오모테나시’는 서로 조화를 유지하며 충돌을 피하는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예절이다. 
 

‘오모테나시’는 일본인들의 삶의 방식이다. 일본인들은 감기에 걸리면 남에게 병균을 옮기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가게와 레스토랑의 점원들은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십시오)’와 함께 손님을 맞는다. 손님이 외투를 벗는 동안에는 한 손을 내밀어 동전 등이 떨어지지 않게 해준다. 가게를 떠날 대는 문 앞에 서서 손님이 視野에서 거의 사라질 때까지 인사를 한다.

일본에서는 기계에도 ‘오모테나시’ 문화가 깃들어 있다. 일본 택시는 손님이 손을 대지 않아도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흰 장갑을 낀 일본인 택시 운전사들은 웬만해서는 팁(tip)을 받지 않는다. 도로 공사 중인 곳에는 어김없이 공사장 인부의 모습을 한 표지판이 공사 중인 것을 알려준다.

일본인들은 외국인(外人, がいじん)에게 특히 친절을 베푼다. 스페인 출신 교사인 카르멘 라가스카(Carmen Lagasca)는 “일본에서 9년 살았지만 지금도 놀랄 때가 많다. 버스를 타면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이 내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떠나면서 내게 또 다시 인사를 건넨다. 나는 일본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오모테나시’ 문화는 단순히 他人에 대한 친절함을 뛰어넘는다. ‘오모테나시’ 문화는 일본인들의 모든 일상 생활에 깃들어 있으며 어린 시절 부터 습득된다. 이에 대해 히로시마 현의 오노미치에서 여행 관련 사업을 해온 ‘디스커버링크 세토우치(瀬戸内地)’의 노리코 코바야시 사장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누군가 내게 친절을 베풀면, 그에게 당연히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게 惡行을 한다 하더라도, 그에게 惡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일본인들은 어린시절부터 이 격언을 듣고 자란다. 이것이 우리 일본인들을 친절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이사오 쿠마쿠라 명예 교수는 일본인의 친절함이 다도(茶道)와 무도(武道)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오모테나시’는 영어로 ‘서비스 정신(spirit of sevice)’으로 번역된다. 다도에서는 손님의 접대를 위해 정갈한 분위기를 만든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최고의 찻잔과 꽃을 준비한다. 그리고 손님은 상대방의 이러한 배려를 마음으로 느끼고, 자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이를 통해 초대한 사람과 초대받은 사람 모두 조화와 존경심을 갖게 된다. 이처럼 서로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적(私的) 만남이 공익(公益)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다도와 유사하게 일본의 무사도는 예절을 핵심 가치로 여긴다. 중세시대 일본의 무사는 명예와 규율, 그리고 도덕을 중시했으며 무예와 다도를 삶의 근본으로 여겼다. 불가(佛家)에서 얘기하는 선(禪)의 가르침이 한 인간의 감정, 내적 평온,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경심(敵까지 포용하는 마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무사도는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으로 승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들의 친절함에는 전염성(contagious)이 있는 듯 하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 스스로가 친절하게 되어 길에서 지갑이라도 주으면 이를 경찰관에게 자연스럽게 건네게 된다.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에게 미소를 보내고,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 가게 된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절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게 된다.

일본을 찾는 방문객들이 ‘오모테나시’를 익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이를 퍼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잔잔한 물결(ripple effect)이 온 세상을 뒤덮게 되지 않을까?

[원제] The world's most polite country?
[필자] Steve John Powell and Angeles Marin Cabello
[출처] 英國 BBC 인터넷 리뷰/2016년 5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