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이 문재인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란 취지의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폭로를 보도한 SBS가 보도 하루 만에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를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SBS는 5월 2일, 간판뉴스인 오후 8시 뉴스에서 ‘단독보도’라며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날 뉴스 앵커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오늘 국무회의를 통과해 인양 고의 지연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며 “이런 가운데 해수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취지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이 나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취재한 SBS 조을선 기자는, 세월호 선체 인양이 지연된 이유를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공무원 음성은 변조 처리되었다.

<●기자: 이런 의혹을 증폭시킬 만한 발언을 해수부 공무원이 SBS 취재진에게 했습니다. 
●해수부 공무원: 솔직히 말해서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거거든요. 
●기자: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도 합니다. 
●해수부 공무원: 정권 창출되기 전에 문재인 후보한테 갖다 바치면서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해수부 제2차관, 문재인 후보가 잠깐 약속했거든요.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제2차관 만들어주고, 수산 쪽. 그 다음에 해경도 (해수부에) 집어넣고. 이런 게 있어요.>


SBS, 해당 기사 삭제… 보도한 기자, "멘트 직접 딴 거 맞아"

SBS의 특종에 해당하는 ‘단독보도’는 이날 같은 시간대에 있었던 대선 후보들의 5차 방송토론에 가려져 시청률이 높지 않았다. SBS는 다음날 오전 6시 ‘모닝와이드’ 프로그램에서 自社의 특종성 기사를 정정하고, 해당 기사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SBS는 ‘모닝와이드’에서  “기사의 원래 취지는 정치권 상황에 따라 변화해온 해수부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보도 내용에 충실히 의도를 담지 못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는 5월 3일 오전, 해당 기사를 보도한 SBS 조을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내용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물었다. 조을선 기자는 ‘말하기 곤란하다.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봐 차후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공무원의 멘트는 직접 딴 게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네’라고 답했다.

한달 전 ‘해수부의 해경 흡수’, ‘2차관직 신설’ 관련 보도 나와

SBS 보도에 대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논평을 내고, “SBS의 무책임한 태도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면서 “文 후보 선대위는 해수부 2차관 신설을 약속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朴 공보단장의 논평과 배치되는 보도가 한 달 전쯤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SBS 보도에 나온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지난 4월24일 한국일보는 인터넷판에서 <대선 앞두고 해경 부활론 부상… “다시 해수부로” “해피아 잊었나”>란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산선거대책위원장인 오거돈 씨의 발언이 실려 있다. 노무현 정부 때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그는 문재인 후보와 경남고 동문이다.  

오거돈 위원장은 지난 4월17일 부산에서 열린 해양수산정책 토론회에서 “해수부 기능을 획기적으로 보강해야 한다”며 “해경을 해수부로 가져오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말을 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에 앞서 뉴스핌이란 인터넷 매체는 지난 4월14일, <해수부, 세월호 인양 중에 때 아닌 “2차관 신설” 추진>이란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해양수산부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해수부가 정권 교체기를 맞아 2차관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조직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해수부가 정권 교체기에 조직 확대를 준비하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해양수산부 기능 및 역할 강화 공약이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월 부산을 방문해 “강력한 해수부 부활”을 천명했다. 앞서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도 그는 "조선·해운·해양산업 전반을 관장하는 힘 있는 해수부로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달에는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해수부로서는 조직 확대의 구체적인 ‘사인’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오거돈 위원장이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이라며 해당 보도 내용도 사실상 전면 부인하고 있다.

국민의당, 오거돈 위원장 발언 담긴 동영상 공개

국민의당은 SBS 보도와 관련,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김유정 안철수 후보 선대위 대변인은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달 17일 부산일보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오거돈 위원장은 ‘후보와도 몇 번 대화했고 중앙위 정책팀에서 움직이는 것을 볼 때, 해양수산부 기능을 획기적으로 보강하겠다’고 몇 번에 걸쳐서 약속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오거돈 위원장의 발언이 담긴 동영상도 공개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어젯밤 모 언론의 보도에 나온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라며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후보와 상의해서 말했다는 오거돈 위원장의 이 발언 또한 ‘가짜 뉴스’라고 종주먹을 들이댈 것이지 묻는다. 아니면 오거돈 개인의 생각이라고 또 덮어씌우고 지나갈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과 손혜원, 박주민 의원 등은 이날 오후 SBS를 항의 방문했다. 송영길 본부장은 “(SBS가) 잘못을 인정 사과하고 오늘 저녁 사과방송을 한다고 합니다. 중앙선관위에서 허위방송 조사하기로 했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SBS에 항의 전화를 하고, SNS에서 “SBS의 방송 인가를 취소해야 한다”, “(SBS가) 관료를 매수해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 것”, “해당 공무원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면 가짜 뉴스인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자들이 이제와 공무원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김성준 SBS 보도본부장, "발제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 낳아"

이날 오후 8시, SBS의 간판뉴스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앵커이자 보도본부장인 김성준 씨가 맨 처음 등장, 5분30초 동안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성준 본부장은 “우리는 어제 8시 뉴스에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관련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이에 따라 선체 인양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한 조사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사를 방송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수부가 박근혜 前 대통령 탄핵 전까지 세월호 인양에 미온적이었다는 의혹, 탄핵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을 감지한 해수부가 인양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꿨다는 의혹을 짚으려 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분리하지 못해 발제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 문재인 후보, 시청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한편, 해양수산부 이철조 세월호인양추진단장도 SBS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하며 SBS에 법적 대응할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