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 일어났던 일이다. 하루는 퇴근했더니 네 살 먹은 아들 녀석이 이마에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 녀석은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 조금 후, 아버지께서 부르셔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셨다. 사실은 아들 녀석을 혼내다 잘못하여 이마에 상처가 났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서 생긴 밴드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필자가 퇴근하여 아들 녀석과 나누는 대화를 자신의 방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으시다가 네 살 밖에 먹지 않은 꼬맹이 손자가 “할아버지가 때렸다”고 하지 않고 자신을 감싸는 말에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이셨다.
세상이 험악해지면 保身을 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기업들이 자진해서 기부금을 냈다고 연신 주장하던 全經聯 부회장은 권력의 힘이 빠지는 듯 하자, 모든 일은 경제수석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말을 바꾼다. 지시를 했다는 경제수석은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발뺌한다. 이모 덕을 보아온 姨姪(이질)은 잘못은 모두 이모가 시켜서 했고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범행을 부인한다. 교육문화수석을 했다는 사람은 甥姪(생질)의 제안으로 그 자리에 갔다고 말한다. 그 甥姪은 잘못된 일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끌어대고 있다.
누구 말대로 ‘背信(배신)의 정치’인가, 背信의 계절인가. 權力은 無常하고 人間은 無力한 존재일 뿐인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나약함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희생은, 그것이 비록 小義에 그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고귀한 가치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30여 년 전, 할아버지를 보호하려던 네 살짜리 어린애의 손바닥 만 한 胸襟(흉금)이 더욱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