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고 없이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발표를 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위대한 左腕투수 클레이턴 커쇼는 눈물바다가 된 기자회견에서 名言을 남겼다.
"저는 늘 성경(신약 골로세書 3장23절) 말씀대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성경귀절의 영어 原文은 이렇다.

Whatever you do, work at it with all your heart as working for the Lord, not for human masters.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의 주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주께 최선을 다하라"로 번역된다. 사람에 충성하지 말고 야구에 충성하라는 뜻이다. 커쇼의 직업정신이 묻어 나는 말이었다. 커쇼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 메이저 야구선수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그의 전성기 때 류현진 선수가 같은 팀에서 투수로 뛰었다.

오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球場에서 커쇼의 정규시즌 마지막 홈 경기가 宿敵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을 상대로 열렸다. 5만3000명의 관중이 들어 찼다. 이 두 팀은 원래 뉴욕에 있었다.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로 치열한 승부를 펼치던 관계가 서부로 옮긴 뒤에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팀 사이의 승패는 오늘 경기 전엔 정확하게 동률이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이와 비견되는 라이벌 관계로는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있을 뿐이다.

커쇼는 2008년에 입단한 이후 올해까지 계속 18년간 다저스 유니폼만 입었다. 그가 입단할 때 있었던 선수들 중 남아 있는 다른 선수는 없다. 그의 기록은 453 경기에 출전, 222勝-96敗이다. 실점률은 2.54, 삼진은 통산 3045개.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 틀림 없고 역대 최고의 투수 리스트에 늘 오를 것이다.

그의 전성기는 2012년(14승 9패) 2013년(16승 9패) 2014년(21승 3패)이었다. 2014년엔 투수로선 드물게 내셔널 리그 최우수 선수(MVP)로 뽑혔다. 37인 그는 올해도 10승 2패를 기록, 더 뛸 수 있는 데도 깔끔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오늘 스탠드에는 부인과 세 아들과 한 딸이 모여 앉아 응원했다.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는 다저스는 커쇼의 마지막 홈 경기를 꼭 이겨 은퇴선물로 바쳐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1회 자이언츠는 1번 타자 라모스가 홈런을 쳤고 다저스는 2회말에 6번 로하스 선수가 홈런을 쳐 1-1로 만들었으나 자이언츠는 3회에 1점을 추가, 2-1로 앞서갔다. 은퇴경기가 커쇼의 패전으로 끝나면 모양이 좋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감돌았다. 로버츠 감독이 피로해지는 커쇼를 언제 모양 좋게 교체하느냐가 관전 포인트였는데 5회 초 기회가 왔다. 커쇼가 자이언츠의 강타자 데버스를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잡자 말자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와 포옹을 했다. 이때 로버츠 감독은 "위대한 업적을 축하한다"고 했고 커쇼는 "너무 졸전을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쳤고 커쇼도 동료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마운드를 내려와 더그 아웃으로 들어가서도 모든 선수들과 포옹을 했다. 박수가 계속되자 바깥으로 나와서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인사를 했다. 이를 지켜보며 눈물 짓는 커쇼의 가족, 동료선수와 관중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너무나 인간적인 스포츠인 야구가 아니면 좀처럼 만들 수 없는 뭉클한 장면이었다.

그런 感傷과는 별도로 이 경기는 다저스가 이겨야 드라마가 완성되는 구조였다. 나도 다저스가 진다면 뭔가 찜찜한 은퇴경기가 될 것인데 하는 걱정이 생겼다. 5회 말, 오타니 선수가 팬들이 꼭 해 달라는 그 일을 해냈다. 투 아웃에 투 스트라이크, 주자는 1, 2루. 오타니는 좀 높게 들어온 로비 레이 투수의 강속구를 밀어쳤다. 왼쪽으로 날아간 공은 펜스를 살짝 넘어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370 피트 쓰리 런 홈런, 4-2로 역전한 것이다. 중계방송하던 김형준 해설위원은 커쇼의 시대가 끝나고 오타니의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하는 한 방이라고 했다.

올해 오타니가 친 52개의 홈런을 다 기억하는 나도 가장 상징적이고 역사적이고 극적인 홈런이라고 평가한다. 오타니는 작년에 이어 50개 이상 홈런을 기록하고 있고, 타점은 98, 득점은 메이저 리그 전체 1위인 139점, 장타율과 OPS는 내서녈 리그 1위, 투수로 나와서는 1승 1패에 삼진 50개 이상을 잡았다. 작년은 홈런과 도루로 50-50을, 올해는 홈런과 탈삼진으로 50-50 클럽을 만들었다. 메이저 리그 역사상 첫 기록들이다. 김형준 씨는 이로써 올해 내셔널 리그 MVP도 오타니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올해 31세인 오타니는 네번째 MVP 수상 선수가 된다.

오타니의 홈런에 이어 요사이 잘 나가는 무키 베츠 선수가 홈런을 쳐 5-2로 만들었다가 결국 6-3으로 다저스가 이겼다. 커쇼는 오타니 덕분에 패전 투수를 면하고 은퇴경기의 추억을 어떤 찜찜함도 없이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커쇼는 경기가 끝난 뒤 철학자 같은 소감을 피력했다.
"다저스의 문화는 내가 오기 훨씬 전에 굳어진 것입니다. 야구가 잔인한 것은 나의 경력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지만 게임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야구가 특정 선수를 필수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점, 이게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저스 역사의 일부가 된 데 대하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메이저 리그의 역사는 너무나 깊고 커서 나 같은 존재는 한 부품일 뿐'이란 이야기인데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야구는 인생이다.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고 버티어내는 쪽이 이긴다. 요기 베라 선수의 명언은 그런 뜻이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의 戰國시대를 끝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긴 말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야구장과 戰場, 그리고 생활戰線에서 이기는 원리는 통한다. 견디어 내면 기회가 온다. 단, 커쇼가 말했듯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하나님이나 야구 그 자체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뛸 때.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잊어라, 게임을 즐겨라, 그리고 팬들을 즐겁게 만들어라."
요기 베라는 "야구는 90%가 멘탈이고 10%만이 피지컬이다"는 말도 했다. 오늘의 멋진 경기도 세 시간짜리 심리극이었다. 나도 오늘 경기를 가끔 추억하면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커쇼는 이혼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하여 스트라이크 아웃을 시켰을 때 한 번 당 100달러를 내어 기금을 만든 적도 있다. 2011년에 메이저 리그 선수들이 주는 선수상을 받았을 때는 상금 26만 달러를 자선사업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