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삶터로 생각

4500년 전의 나일강- 뗏목을 탄 노예들이 강물처럼 채석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광택 있는 갈색 피부, 코는 납작하고 입술은 두터웠으며 눈빛은 고통으로 물들어 있었다. 감독자의 채찍이 휘파람을 불고 불볕은 등을 태워도 그들은 어깨를 파고드는 가죽끈을 당겨야 했다. 채석장에서 피라미드 공사장까지는 4차선의 화강암 고속도로. 롤러 위에 미끄럼 판, 그 위에 몇 t이나 되는 화강암, 끊임없이 윤활유(올리브油)를 부어가며 10만 노예들은 석재를 끌었다.

채찍과 질병으로 노예들이 죽어가는 것과 비례해서 피라미드는 우량아처럼 성장해 갔다. 밑변둘레는 920m에 육박. 평균 2.5t의 화강암은 230만 개에 달했다. 높이는 147m로 치솟았고,  무게는 590만t을 넘어선다. 문화정신의 관점에서 파라오의 불손을 설명하는 학자가 있다. 인류문화는 그 발흥기에 하늘로 치솟는 장대한 아름다움을 사랑하였다. 기자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제4왕조 시대에도 이런 문화정신이 지배하는 발흥기였다. 학자들은 인정한다. 그러나 국민의 일상생활과 왕권의 富(부)를 희생하면서까지 편집광적으로 공사에 몰입한 파라오의 정신상태를 설명하기엔 충분치 못하다.

드러커(Peter Drucker)는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 Guidelines to Our Changing Society》에서 ‘우주개발은 현대의 피라미드, 해양개발은 현대의 쟁기다’고 갈파했다. 고대 이집트 민족은 20세기 인류가 우주개발에 홀린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들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이 상징적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가장 중요한 쟁기(농업)를 희생하면서도? 파라오들은 즉위하자마자 그의 무덤공사에 착수한다. 공사자금을 마련키 위해 그들은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가 가진 모든 생산력을 동원했다. 쿠푸왕의 한 딸은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매춘부 노릇도 삼가지 않았다. 이 왕녀는 온갖 남성들과 상대하고 화대 대신 화강암 石材를 하나씩 받아 자신의 피라미드를 마련했다고 헤로도토스는 쓰고 있다.

피라미드 건축의 이유를 우리는 그들의 신앙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영혼 불멸이라 믿었다. 영혼 불멸은 그러나 육체가 보존되고 살았을 때와 같은 생활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이집트인들은 육체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미라를 만들었고 영혼의 삶터로써 피라미드를 쌓았다. 신앙의 힘은 정치적·도덕적인 이성의 소리를 외면한다. 제4왕조 피라미드 규모는 신앙적 필요성의 한도를 초과하는 것이었다. 피라미드 건축의 부담은 후손에게 돌려지고 이것 때문에 古王國(고왕국)이 제6왕조를 끝으로 붕괴하자 이 役事의 전통도 종말을 고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제11 대대 병사들이 기자 大피라미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피라미드가 어떻게 건축됐는가. 이 의문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독일 고고학자 렙시우스(Karl Richard Lepsius, 1810~1884)는 맨 처음 이 의문에 도전한 학자다. 그의 학설은 漸增理論(점증이론)이라 불린다. 파라오는 즉위하여 처음엔 핵심부를 들어 올린다. 이어 그 바깥에 화강암을 나이테식으로 둘러 祭壇式(제단식) 건물을 만든다. 그가 죽으면 후계자가 바깥을 마감하여 매끈한 직각3면체로 완성시킨다는 설명이다. 中世의 아라비아인들은 기자의 피라미드를 살피고 표면처리의 우수함에 감탄하는 기록을 남겼다. ‘바늘도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측량결과에 따르면 두 석재 사이의 틈은 평균 0.5mm. 즉 2.5t의 화강암을 깎았을 때 생긴 오차가 0.254mm란 계산이다. 이 현미경적인 정밀기술이야 말로 불가사의가 아니겠는가.

밝혀낸 構造·축조법…40년 동안 80개나 조사

피라미드는 돌로 쓴 기하학이다. 이 건축에 동원된 石材기술은 인류가 도달한 최고 수준이었다. 정확한 설계, 두부같이 자르고 정확한 톱니바퀴처럼 꼭 맞춘 石材다듬기, 과학적인 중량경감 장치, 경사각도의 감각-. 이런 사실 때문에 外境(외경)의 인간이 만들어 놓고 갔다는 낭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을 지경이다. 피라미드 밑변의 길이는 각각 230.252m, 230.454m, 230.391m, 230.357m. 최단과 최장의 차이는 20cm에 불과하다. 밑변의 4각은 90도를 기준으로 했는데 지각변동으로 변화가 있지만 오차는 소수점 이하. 모서리 경사각도는 51도52분. 현대 측량법으로 오차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네 변이 일치한다.

헤로도토스는 채석장에서 공사장까지 화강암 돌을 까는 데 10만 명이 10년 동안 일했고 쿠푸왕 피라미드 건축엔 또 20년이 소모됐다고 기록했다. 기중기가 없었던 이때 석재는 어떻게 맞춰졌을까. 가장 합리적 설명은 흙을 피라미드 높이만큼 비스듬히 쌓아 올려가며 이 비탈을 따라 석재를 끌어 올렸다 했다.

피라미드를 해부하기 위해 가장 깊은 메스를 가한 학자는 영국의 플린더스 피트리(Flinders Petrie, 1853~1942)였다. 그는 27세에 이집트로 건너가 40년 동안 피라미드 연구에 종사했다. 80여 개의 피라미드에 그의 손때가 남아있다. 그는 피라미드 입구를 찾지 못해 지하 갱도를 뚫고 묘실로 들어간 학자였다. 수천 년 전 도굴꾼들이 먼저 다년간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지만 또 어떤 피라미드 내부에선 미라를 발견,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했다가 아연실색하기도. 측정결과가 중세로 나오자 그는 이 시체가 도굴하러 들어갔다가 출구가 막혀 스스로 미라가 돼버린 아랍인임을 알게 된다.

피트리는 '현대 이집트학의 아버지'라 불렸으며 1923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투탕카멘 왕릉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가 그에게 師事(사사)하기도 했다.

한 피라미드에선 지하수를 만나 헤엄치면서 2주일 동안 측량에 종사했고 뻘구덩에서 목만 내놓고 스케치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는 1883년 《기자의 피라미드와 신전(The pyramids and temples of Gizeh)》이란 책으로 발표됐다. 여기에 실린 피라미드의 구조와 측량값은 1925년 이집트 정부가 최신 장비를 동원, 조사할 때까지 가장 믿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피트리는 이 조사에서 쿠푸왕 피라미드가 두 번 설계변경된 것임을 확인했다. 미라를 안치하는 玄室(현실)은 당초 지하에 둘 계획이었다. 이 지하 玄室이 완성되기 직전 현실을 지상 20m에 두기로 설계변경 된다. 이 현실이 완성되고 내부장식을 할 때쯤 또 계획이 바뀌어져 현실은 지상 50m에 안치하는 것으로 설계된다.

이런 설계변경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도굴단에 대비한 위장전술이었을 것이다. 피라미드 설계자는 이 밖에도 온갖 묘수를 동원, 도둑떼를 막아보려 했다. 입구를 비밀로 봉하고 통로를 세 가닥으로 갈랐으며 요소요소에 함정을 두었다. 수십 t의 화강암이 회랑을 틀어막고 파수병이 눈을 번득여도 이 피라미드는 건축 후 수 10년 안에 털려버렸다. 그 보화는 투탕카멘 왕릉의 몇 배에 달했을 것이다. 대대로 도굴을 밥벌이 수단으로 삼아온 도굴족에게 피라미드는 우스개에 불과했다.

피트리는 쿠푸왕 피라미드의 玄室로 통하는 회랑 일부가 쌓아올린 석벽을 굴착하는 식으로 뚫었음도 확인했다. 즉 피라미드를 뚫어 계단식으로 통로를 내는 어려운 작업을 했다는 증거였다. 대회랑은 장엄하다. 길이 46.6m 높이 8.5m. 이 대회랑 입구는 수백t의 화강암으로 막혀 있다. 여기 한 가지 수수께끼가 남는다. 쿠푸왕을 현실에 안치한 다음 참례자들은 이 회랑을 통해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아 입구 밀봉작업을 대회랑에서 한 인부들은 어디로 탈출했을까? 피트리는 그 구멍을 발견할 수 없었다. 미라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을까? 피라미드를 둘러싼 숱한 의문 중의 하나다.

(‘피라미드 解剖’ 편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