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 왕릉서 殉葬屍발견…죽음의 길 기꺼이 택한 듯

사막. 점점이 오아시스. 白熱의 모래밭을 뚫고 오아시스를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 그 하류의 수메르 왕국. 왕궁은 죽은 듯 조용하다. 수메르 우르 왕조의 여왕이 죽은 것이다. 밀실에서 한 시녀가 몸단장을 하고 있다. 허둥거린다. 장례식에 참가할 사람이 몰려드는 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온다. ‘빨리 빨리…’ 독촉하는 소리가 밖에서 다급하다. 銀製(은제) 리본을 달 겨를도 없다. 시녀는 양털로 짠 진홍색 치마 호주머니에 리본을 넣고 총총걸음으로 달려 나간다. 군중 속으로 빨려든 이 시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5000년 뒤인 1922년.

우르 발굴 현장에서 레오나르드 울리 경(오른쪽)과 로렌스.

1922~1934년 大英 박물관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은 古都 우르(지금의 이라크 소재)를 발굴했다. 영국발굴단장 레오나르드 울리(Sir Leonard Woolley)는 아라비아의 로렌스(T. E. Lawrence)와 함께 당시 가장 촉망받던 고고학자였다. 그는 우르 왕실 무덤에서 전율할 광경에 부딪친다. 이 무덤은 ‘거대한 죽음의 구덩이(The Great Death Pit)’로 유명해졌다. 이 왕릉엔 68구의 여자시체가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여왕과 함께 殉葬된 68명의 시녀였다, 68명 중 67명은 머리에 리본을 달고 있었다. 한 시체만은 리본을 달지 않은 게 이상했다. 올라가 자세히 살펴보니 호주머니가 있었던 자리에서 금속세공품이 발견됐다. 이것으로 의문은 풀려다. 이 시녀는 리본을 달 시간도 없이 장례식에 뛰어들었고 이곳에서 죽은 것이다.

이 처참한 집단학살. 중동에 인류최고의 도시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인은 집단정신병에라도 걸렸단 말인가. 노여움을 터뜨리기 전에 이 죽음의 뜻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울리는 이 동굴에서 순장의 흔적을 잇달아 찾아냈다. 한 무덤에서 6명의 남성과 68명의 시녀 시체가 드러났다. 여성들의 해골은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운 포즈로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다리는 약긴 굽히고 손은 머리까지 단잠을 자고 있는 바로 그 자세다. 중국의 殷에서처럼 목이 잘린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울리는 이들이 학살됐다고 추정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발버둥친 자취, 고통으로 땅을 긁은 흔적 어떤 몸부림의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장에 앞서 이들을 학살, 그 시체를 줄지어 놓았다고 볼 근거도 없었다. 한 시체만이 리본을 달지 않았다는 게 이런 인위적인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엄격한 장례의식 상 한 시체만의 예외적인 패션은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망가지기 쉬운 장신구를 원형대로 무덤 안으로 운반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무덤 밖에서의 살육 가능성을 희박하게 했다.

울리 경이 '거대한 죽음의 구덩이'라고 명명한 PG1237에서 발견된 순장屍身 개념도.

울리는 이렇게 상상했다. 왕의 시체를 따라 시녀들은 진홍빛 복장으로 단장한 채 차례차례 무덤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로 굳어졌을까. 천만에 그들의 표정은 황홀한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 왕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엔 특권이었다. 그것은 행복한 내세를 약속하는 둘도 없는 패스포트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덤에서 독을 마셨다. 그리고 환각상태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石室에서 발견된 잔은 아마도 이때 사용했으리라. 이들은 분명 노예는 아니었다. 소처럼 도살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기신념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울리의 이 추정은 그 뒤 길가메시(Gilgamesh) 이야기의 발견으로 뒷받침되었다. 세계 최고의 서사시를 닮은 이 점토판은 노아의 홍수 전설의 原典(원전). 이 이야기엔 길가메시가 신하를 데리고 무덤으로 향하는 광경이 장엄하게 묘사돼 있다. 길가메시는 수메르의 실제 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수메르의 순장풍습을 극악무도한 죄악으로 규탄할 수 있을까. 시녀들에게 그 죽음은 인생최대의 쾌락이었는데도….

('죽음의 환희'편 마침)